창가에 서서 /홍수희

바람 소리 한 점 없는 창가에 서서

귀 기울여 본다

혹여 창 밖을 떠도는 영혼

아이들 눈에는 유령이거나

때로는 초록색 괴물이거나

피노키오의 나무 코를 길게 늘이고

대부분은 거짓으로 살아온

우울한 날들을 섬뜩 느끼며

아직도 무대 위의 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탐색하려 한다

하루를 살면 열흘의 죄악

왜 나는 맑은 햇살로 웃지 못하나

여전히 나를 주시하는 눈

투명한 주위를 감싸 도는데

도무지 낡은 레이더엔 잡히지 않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슬픔 같은 것

차라리 윙윙 소리내어 흐느끼는 겨울에 서면

덕택에 내 가슴 창호지로 찢어발기고

매운 바람 부는 문턱에 서서

곡(哭)이라도 한 소절 느껴 부를 터인데

바람 한 점 없는

침묵의 관대한 겨울 한밤중

살아지는 대로 그저 살아지는

이 무위(無爲)의 사랑을 통탄하면서

비인 콩깍지처럼 자꾸 여위어 가는

내 슬픈 영혼을 들여다본다.

출처 : 카페 ‘홍수희 시인의 하이얀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