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돌려줄게 /박수옥

반송함 속 편지가 사라지지 않는다

우편배달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되돌아가라고 말하는 나는 기꺼이

너희를 놓아주는 중이야

겉봉에 애증이 사라진 평온의 메시지를

부담 없는 필체로 그려넣었어

형광펜의 사연처럼 서서히 소멸할

그다지 의미를 둘 게 없는 소년들의 윙크야

설익은 매실을 베어 먹은

놓아줄 것들이 즐비한 밤의 복통은 시계방향으로

배를 정성껏 문질러주는 손바닥의 애정이

아직은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하지

반송함은 쉽사리 비워지지 않는 과거의 유물들로

꽤나 어수선하지만

떫고 시큼한 매실이 입안에 굴러다니는 나의 밤은

더 이상 웃지도 울지도 않는

복통이 가라앉은 불감의 평온이야

수취인을 잘못 찾아온 구겨진 시간은 미련 없이 돌려줄게

되돌릴 과거는 반송함에 넘치게 담긴 낯익은 얼굴들이야

틀린 주소를 간직했던

동명이인의 나를 버리고 잊어주길 바래

켜켜이 먼지 쌓인 낡은 창틀은 구석으로 쏟아져 내린다

이제야 별빛이 구멍 난 벽을 통과해 쏟아져 들어오지

조금만

손바닥의 애정만큼만 남기고

모두 돌려줄게

우편배달부가 무사히 돌아와 반송함을 열면

얼굴들은 전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도 돼

멀찍이 절벽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를 사랑이라 부르자

출처 : 카페 ‘사랑의 향기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