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별하는 법을 모르는데 이별하고 있다 / 김정한 

 

첫눈이 내렸다. 첫눈치고 폭설이 내려 도심의 길들이 질척거리고, 눈발에 무거워진 가로수가 휘어진다. 단풍이 흩어지기 전에 느닷없이 찾아온 겨울 손님, 첫눈은 온전히 겨울을 물어다 놓았다. 이별을 미루던 가을은 야금야금 서슬 퍼런 발걸음으로 점령하는 겨울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춥게 웅크리며 추락하던 낙엽도 흩날리며 산으로 돌아갔다. 취하여 비틀대는 고독이 첫눈과 함께 배달되었다. 기척도 없이 누가 내 안을 왔다 간 듯 소란하다. 나는 이별하는 법을 모르는데 이별하고 있다. 흔들리는 동공에 잡힌 세상은 온통 무채색 밭이다. 세상은 색 고운 수채화의 옷을 벗어던지고 결 고운 수묵화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가을은 꺼지기 전의 마지막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형형색색의 사연들을 다 토해내지 못하고 쓸쓸하게 떠났다. 미처 떨어지지 못한 붉은 잎이 애잔하다. 이렇게 불쑥 무엇 하나 내 가슴에서 빠져 나가니,  세상 한 곳이 환하다. 곧 동토의 빙하 같은 색을 머금은 채 푸른 안개로 덮힐 것이다. 시간은 존재감을 드러내며 세상을 뒤흔들 것이다. 누구에게는 결실로, 누구에게는 상실로, 각자의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 머지않아 가슴을 후려치는 삭풍과 눈보라가 몰아칠 것이고. 흐드러지듯 흰 날갯짓으로 시선을 강탈할, 눈의 춤도 보게 되리라.  

 

김정한 신작 산문집 [나는 이별하는 법을 모르는데 이별하고 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