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댕강나무

                                    이인

저 쨍쨍한 햇볕을 손에 쥐고 몸 푸는 꽃댕강나무

풀벌레 울음과 새소리를 무릎에 앉히고

일제히 트럼펫을 불고 있다

꽃그늘 아래로 돌아 나오는 선율

무당벌레는 트럼펫 소리를 집어먹고

빈 거미줄에서 침묵의 음계를 만들고 있다

수백 개의 나팔소리에 꽃들은 속수무책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접혔던 꽃모서리까지 활짝 펼쳐내고 있다

멀리 은사시나무가 일어서는 골짜기로

트럼펫 소리가 바람을 실어 나른다

땡볕에 마음 한번 내보인 적 없는 나도

사잇길 돌아 나오는 팡파르에

네발나비에게 전해 줄 축사를 쓰고 있다

ㅡ『시현실』(2019, 여름호)

출처 : 카페 ‘아름다운 시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