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눈물이 내 살 속에 박힌 쓸쓸한 여진(餘震) 

                                      / 김정한

여름 비치곤 사납습니다. 하늘이 구멍 뚫린 듯 물통으로 들이붓는 듯 매섭게 쏟아집니다. 두려움이 느껴질 만큼. 새벽에 느끼는 자연의 공포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기다림이 길어서인가 문득문득 다가서는 헛헛함이 두렵습니다. 얼마를 더 견뎌야 할까요? 무언가를 기다리는 동안 오래전에 본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대사가 생각납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당신의 마음으로부터 지울 순 있지만 사랑은 지워지지 않아요.

얼마나 더 울어야 할까요? 눈이 늘 젖어 있어 울지 않는 낙타, 일생에 단 한 번 울다 죽는 가시나무 새, 하루를 살기 위해 물속에서 천 일을 견디다, 삼천 송이 꽃을 피우다 하루 만에 죽는 호텔펠리니아 꽃, 백 년에 단 한번 꽃을 피우는 용설란, 그게 그들의 운명이라면, 나의 운명은 또 무엇일까요. 늘 눈이 젖어있는 낙타일까요, 일생에 단 한 번 울다 죽는 가시나무 새일까요. 하루를 살기 위해 물속에서 천 일을 견디다 꽃을 피우다 하루 만에 죽는 호텔펠리니아 꽃일까요, 백 년을 기다려 단 한 번 꽃으로 피어나는 용설란일까요. 

애정이 아니라 믿었던 것들이 샘물처럼 솟아나 생채기를 냅니다. 뇌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몸은 그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심장까지 비틀거리네요. 어느 날 저녁은 당신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 후 당신의 슬픈 눈물이 내 살 속에 박힙니다. 이제는 내가 먼저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이 쓸쓸한 여진이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당신 때문에 울고 나니 한 계절만 있네요. 당신 때문에 울고 나니 한 밤만 있네요. 그리고 그 안에는 덩그렇게 울고 있는 내가 있네요. 영혼과 육신을 번갈아가며 거센 바람이 몰아칩니다. 나도 휘청 거리 고세상도 흔들립니다. 놀랍게도 곧 별빛이 내렸고 난 습관처럼 연어샐러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내 곁에는 한 계절만 있고 기나긴 밤만 있네요. 내 그리움은 한 걸음 두 걸음 걷다가 산을 넘었습니다. 내 기다림은 한 걸음 두 걸음 걷다가 강을 건넜습니다. 그리움과 기다림이 한 걸음 두 걸음 걷다가 그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돌아갈 곳을 잃어버렸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그리움이 줄어들까요?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외로움이 줄어들까요?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모든 것에 담담해질까? 글썽이는 눈동자, 침묵에도 저 혼자 흔들립니다. 시인 프레벨은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죠. "세 개의 성냥 하나씩 긋는다 어둠 속에서 / 처음 것은 네 얼굴을 빠짐없이 보기 위해 / 다음은 네 눈을 보기 위해 /마지막 것은 너의 입술을 보기 위해 남은 어둠은 지금의 모든 것을 추억하기 위해서 / 너를 꼭 안으면서." 그래요. 사랑은 거룩한 축원이에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명한 이름 하나, 잠들기 직전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선명한 이름 하나, 그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만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됩니다. 또 하나가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최고의 행동을 이끌어 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순수한 천사가 되죠. 서로의 날개 반쪽으로 온 힘을 다해 날 수 있는 것, 그것은 서로에게 몰입하며 미쳐야 가능하니까요.   

과연 모든 걸 걸만큼 사랑에 미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나는 또 어디에 속할까요? 하늘에도 지상에도 꽃이 만발하네요. 정작 나는 몇 번의 꽃을 피웠고 앞으로 얼마를 더 피울까요. 노란 꽃일까요, 빨간 꽃일까요, 아니면 검은 꽃일까요.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그때는 언제일까요? 그 비밀의 문을 여는 마스터 키는 누가 쥐고 있을까요? 애정문제에 주절대다가 또 이렇게 하루를 일기장에 올려놓습니다. 세상을 배회하다 돌아온 먼지 가득한 영혼을 깨끗이 털고 햇볕에 말립니다. 묵은 것들, 억지로 들러붙은 것들을 끄집어내어도 끝이 없네요. 까맣게 얼룩진 것들, 찌그러진 것들, 깨져버린 것들을 다 불러 모으니 반듯한 것 하나 없어 마음이 아릿하네요. 메타쉐콰이아 숲길을 혼자 걷던 날을 생각하니 물안개로 젖듯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숲이 뿜어대는 들숨 날숨을 있는 그대로 빨아들이는 내 몸이 날아갈 듯 가볍습니다.

나이 탓인지 집착도 떨어지고 모든 것에 너그러워집니다. 이제는 사랑하는 것도 순례 같아 죄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숲 속의 나무처럼 몸도 마음도 편안히 늙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버거울 만큼 사무치도록 붉게 물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나부끼는 그리움도 적당한 곳에서 멈추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상의 외로움도 이제는 멈추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갈망하는 그곳에 닿지 않는다면, 당신이 갈망하는 이곳에도 닿지 않을 테니까요. 욕망에 눈멀지 않으면서도 소중한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윤리적인 순례자가 되고 싶습니다.

김정한 신작 산문집 [나는 아직 괜찮습니다 p104-108]   

나는 아직 괜찮습니다 <김정한> 저

미래북, 2018년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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