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한다.
토끼가 속도를 낸다.
속도를 낸 만큼 토끼는 여유의 시간과 공간, 곧 느림의 시/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토끼는 그 느림의 시/공간을 잠으로 채워 버렸다.
물론 잠도 자야 한다.
그러나 토끼는 잠만 잤다.
그것이 문제였다.
토끼가 잠만 자는 사이에 거북이는 꾸준히 나아가 먼저 골인 지점에 도착했다.
결국 거북이가 이겼다.
아날로그 시대에는 거북이의 지구력이 칭송되었다.

그러나 이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디지털 시대의 버전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역시 마찬가지로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한다.
토끼가 또 속도를 낸다.
그러자 그 속도차 만큼 여유와 느림의 시/공간이 확보됐다.
이번에 토끼는 그 느림의 시/공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더 이상 토끼는 잠만 자지 않았다.
그 느림의 시/공간을 통해 한 단계 높은 가치를 꿈꿨다.

속도가 확보해 준 느림의 시/공간이야말로 상상력을 통한 새로운 가치의 창출처였다.
디지털 시대에는 지구력이 아니라 바로 그런 꿈꾸기와 상상력이 칭송받아 마땅한 것이 되었다. 

 

 

-  정진홍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