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성 편백나무숲으로 유명한 축령산을 간다고 새벽 4시반에 일어나 아내가 깰까봐 살금살금 부엌으로 가서 찬밥을 까스렌지에 데우고 어제 남은 소고기국을 다시 끓이고 해서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으면서 가만히 생각 해 본다.

나이 70에 축령산 간다고 꼭두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먹고 등산복을 입고 아내가 준비 해 둔 계란 고구마 사과 귤등을 챙겨서 배낭에 넣고 사당역에서 7시에 출발하는 안내산악회에 끼어서 친구들 넷이서 산으로 간다. 아직은 갈 수 있는 자신감이 있으니 먼 거리를 나선다.

이게 뭘까?

곰곰히 생각 해 본다

결국 생에 대한 애착 아닌가!

더 오래 살고 더 건강하게 살려고 애를 쓰고 노력하는것이다.

감기기가 있어 기침이 나고 열이 있고 목이 간질간질 하는데도 먼 길을 나서는것은 그 정도는 자신 있다, 앞으로 몇 년은 더 산을 탈 수 있다는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다. 인간이 살아 가는것이 젊을 때는 별 생각없이 살아갈 수도 있는데 나이 들어 갈수록 좀 더 오래 좀 더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애착이 거꾸로 더 강해지는것 같다.

나는 조선일보 목요일 Essay란에 실리는 남원 도통동 성당 주임신부인 권이복신부의 글은 꼭 읽고 스크랩도 해 둔다. 이번 주의 글 제목은 '행복은 있다'이다.

권신부는 대장암 후두암 그리고 기관지암으로 고생을 많이 한다. 5년전 대장을 잘라내고 그 후유증으로 장이 협착돼 사경을 헤매기도 하고 겨우 좀 살 만 하다 했더니 이번엔 후두암. 33번의 방사선치료가 끝날 즈음 이젠 나아지나 했는데 이번에는 암이 기관지로 옮아갔다고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 권신부, 아직도 살아있어? ' 하고 놀라 묻는것 같다고 한다.

권신부는 '그래 암! 너로 인해 난 많이 아프리라. 그러나 너로 인해 나의 행복마저 빼앗기진 않으리라. 암아! 이 몹쓸놈의 암아! 사실 너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나? 이 작은 심장의 박동을 멈추게 하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니?  그래 어쩔 수 있나. 같이 살아야지. 이 몸뚱이 살아있는 그날까지는 같이 사는 수밖에. 오라 어서 와.' 하고 생에 대한 강하고도 겸허한 애착을 가진다.

권신부는 늦가을 파아란 하늘. 벌거벗은 감나무에 매달린 빠알간 홍시. 너무도 아름답다.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 참 정겹다.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행복한가. 하고 이야기 한다.

나는 오늘 축령산 자락 하늘숲길에서 금년들어 처음으로 첫눈을 맞이했다.

편백향을  맡으며 하늘에서 폴랑폴랑 내려오는 흰 눈을 바라보니 기분이 상쾌하기도 하고  살아 있다는 느낌.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눈 내리는 먼 하늘을 바라보니  한낱 먼지같은 인생이 권력 재산 지위등이 무엇이라고 아귀다툼을 하고 난리굿을 떠는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11월이 벌써 저쪽으로 넘어간다.

축령산 가는 버스속에서 가이드가 들려주는 나태주의 시가 좋다. 

( 11월 )

돌아가기엔 이미 많이 와 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