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필요한 건

앞뒤로 배낭을 멘 작은 여행자인 나는 여행 한 달째 되던 날,

케냐와 에티오피아 국경 언저리에서 큰 배낭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 한 달간 나는 아무 무리 없이 일정을 소화했다.

한층 꼬질꼬질해진 여행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 별다른 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며칠 새에 깨달았기 때문일까.

조그마한 배낭 하나뿐이었던 나머지 한 달간의 여행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모든 것은 가벼웠고, 무엇을 잃어버릴 걱정도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여행을 떠날 땐 작은 배낭 하나에 모든 짐을 꾸린다.

여행의 짐은 그 사람이 지고 있는 삶의 짐이라던데,

어쩌면 우리는 그 무언가를 너무 복잡하게 여가고 사는 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별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은데 말이지.

그것도 여행 중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짐들은 옷가지나 화장품들이 아니라

여행 후에도 문득문득 당신을 설레게 할 노래 몇 곡,

당신의 빛나는 순간들을 담아낼 조그마한 카메라.

걸음걸음을 함께할 운동화 한 켤레,

여행지에서 만나게 될 아이들을 잡아줄 투박하지만 따뜻한 손,

새로운 친구를 만나 진심을 다해 웃어낼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게 아닐는지 모르겠다.

안시내｜알에이치코리아｜『멀리서 반짝이는 동안에』에서

출처 : 카페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