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당신을 만났습니다 / 김정한

여름이 뜨겁다. 더하여 세상이 뜨겁다. 수직으로 내리꽂는 햇빛, 낮은 매미소리, 그리고 푸른 나무들은 여름을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그 중에서 하나를 말하라 하면 단연 뜨거움이다. 세상 모든 것들에는 본질과 주변 요소가 있다. 아주 작은 생명체, 사소한 물건들에도 본질이 숨겨져 있다. 그렇다면, 사람을 아름답게 해주는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살면서 가장 기본이 되고 최고의 덕목이라 할 수 있는 겸손이다. 겸손(謙遜)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이다. 겸손에는 나와 타자가 공존한다. 타자를 존중하면서 나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겸손한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특별하다. 파란색 안경을 쓰면 세상이 파랗게 보이지만 겸손의 안경을 쓰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고은 시인의 시에서도 겸손을 찾아볼 수가 있다. “그 꽃”이라는 시에 보면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세상 높은 줄 모르고 오를 때에는 높이 솟은 나무만 눈에 들어왔지, 가장 낮은 곳에 피는 풀꽃같은 것이 눈에 들어올리가 없다. 풀꽃은 내려올 때야 눈안에 들어온다. 그것도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겸손은 시시한 것들 조차도 관심을 갖게 하여 보지 못한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겸손은 감사를 부른다. 조금만 방향을 틀어 세상을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감사가 올라온다. 이 감사는 거창한 어떤 것이 아니다. 살면서 만나는 사소한 모든 것들이다. 푹푹 찌는 감자솥 같은 여름날, 잠시 피할 한 줌의 나무그늘, 시원한 한 줄기의 소나기, 엄마 품에 심장을 포갠채 잠든 아가의 편안한 모습에서 입고리가 살짝 올라가며 미소를 짓는다.   

겸손은 사람과의 소통을 끌어낸다. 누군가의 은혜에 감사의 시선을 보내면 돌아오는 메세지도 따뜻한 감사다. 주고받는 감사에서 따뜻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여백은 있다. 그 여백을 채워줄 또 다른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겸손의 힘이다. 이솝우화의 ‘사자와 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자가 풀밭에서 잠이 들었는데 쥐 한 마리가 사자의 머리에서 놀다 코를 건드렸다. 사자가 눈을 번쩍 뜨고 쥐에게 야단을 쳤다. 쥐는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은혜는 꼭 갚는다고 애원했다. 사자는 쥐 같은 짐승이 무슨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느냐며 그냥 풀어줬다. 그 후 어느 날 쥐가 산에서 사냥꾼이 놓은 덫에 걸려 꼼짝 못하는 사자를 봤다. 자신을 놓아 준 그 사자였다. 그래서 발을 꽁꽁 묶은 밧줄을 이빨로 끊어 사자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했다. 작고 힘없는 짐승이라고 얕보았던 사자는 쥐에게 눈물을 흘리며 그가 은혜를 갚은 데에 고마워했다." 사실, 사자 입장에서 보면 잡아먹기에 너무 깨림직해 풀어준 쥐가 자신의 생명을 구했다. 비록 사자가 겸손해서 쥐를 놓아준 것은 아니지만, 이 우화를 통해 역설적으로 이 세상에는 하찮은 미물은 없다는 거다. 존재한다는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겸손은 사람을 발전시킨다. 아무리 최고라고 자부하는 사람도 겸손의 힘이 필요하다. 최고라 할지라도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이를 채우려는 노력, 그리고 모를 때 모른다고 말하며 배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는다. 겸손하다는 것은 늘 흐른다는 것이다. 흐르면서 조금씩 성장하고 발전하며 최종 목적지에 닿게 되는 것이다.  

#. 이글은 김정한 신작 에세이[ 고마운 당신을 만났습니다 ] 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