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는 선물 / 김정한

티브이 프로 '복면가왕' 에출연한 어린 가수가 이런 말을 했다. 가면을 쓰고 치마를 입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어 출연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곳에서는 80 평생을 유명 정치인의 아내로만 살다가 노부부의 금혼식에 맞춰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고. 그것도 나를 위한 선물이라 하니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연 나는 나를 칭찬하고 용기를 주고 위로하기 위해 나에게 선물한 적이 있던가? 그동안 가족을 포함한 고마운 사람에게 선물을 하면서도 정작 나에게 선물한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선물을 주면서 살았다. 받는 것보다 늘 주는 것에 익숙해있었다. 물론 일에 지쳐 사람에 시달려 홧김에 내 것을 샀던 기억은 있지만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꼬리표로 무엇을 산적은 없었으니까. 어쩌다가 가족의 물건에 끼워서 샀다. 그것도 할인 매대에서 50% 세일하는 걸로. 그렇게 습관처럼 길들여져 있었다. 반평생을 살면서도 단 한 번도 나를 축하하기 위해 나에게 선물을 준 적이 없었으니까. 하다못해 장미꽃 한 송이도 온전히 나를 위해 준 적이 없으니까. 선물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주어야 하고 나는 누군가에게 받아야 하는 걸로만 생각했으니까. 생각해보면 참 서글픈 인생이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교사로 첫출발을 했을 때도 스스로를 축하해보지 못했고 직장을 그만두고 나왔을 때도 진심으로 위로해 본 적이 없었고 작가의 길로 들으면서도 나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내지 못했다. 무엇이 나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쉼 없이 달리게 했을까. 그렇다고 대단한 그 무엇도 손에 쥐지 못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번 생일날에는 나는 아무에게,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생일 축하해'라는 문자메시지도 생일이 한참 지난 뒤에 받았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하였고 심지어 잘못 살아왔다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그렇다고 꼭 받아야 할 선물을 못 받아 어린애처럼 울 수도 없지만 밀려드는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깊은 후회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가장 축하해주고 위로해주고 칭찬해주어야 할 첫 번째 누군가는 '자신'이다. 영어로 선물 ‘Present’는 현재라는 뜻도 있다. 지금 여기, 오늘은 가장 확실한 내 것이고 가장 소중한 선물을 할 '누군가'도 나이어야 한다. 오늘 선물하지 않으면 선물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왜? 내일은 없을 수도 있으니까. 지금까지 나는 나에게만은 늘 내일 내일 하며 미뤘다. 나를 위한 물품을 사는 것도 맨 마지막이었다. 지금부터는 안 그럴 거다. 나 먼저, 내 것 먼저 챙길 거다. 똑같은 후회를 두 번 하지 않기 위해서. 잘못 살았던 어제의 그늘을 오늘로 끌어당겨, 내일을 망치고 싶지 않으니까. 어제는 후회했지만 오늘 제대로 살아 환한 내일을 맞이하고 싶으니까. 앞으로 나에게 주는 선물은 한 끼의 식사든, 한 켤례의 구두 든 그 누구에게 주는 선물보다 값진 것으로 할 것이다.  

나는 아직 젊고 여전히 챙겨야 할 선물이 많다. 물론 앞으로도 그들에게 마음을 담아 정성껏 선물을 준비할 것이다. 다만 우선순위를 나에게 맞춘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선물을 하던 내가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분수에 넘쳐 너무 부담스럽거나 선물하고 나서 후회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정직하지 못한 선물이 된다. 앞으로 그런 선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기뻐하면서 살아가는 것만큼 큰 행복은 없다. 나를 칭찬하며 위로하는 선물을 오늘부터 실천하련다. 지금까지 선물 한 번 주지 못한 나에게 잘 살아줘서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선물을 하련다. 비록 수 십만 원짜리 운동화, 향수가 아니어도 괜찮다. 내가 좋아하는 메밀국수에 아메리카노 한잔에 마카롱이면 충분하다. 내 마음이 이끄는 곳을 찾아 진심으로 나를 축하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련다. 작지만 행복한 사치를 누리련다. 열심히 달려온 나에게 선물하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위해 보상하련다. 기꺼이.

#. 이 글은 김정한 신작 수필 [ 고마운 당신을 만났습니다 ]에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