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술잔 어이 할꼬
정영희 2006.02.05 16:36:38
남은 술잔 어이 할꼬...
임께서 먼저 잠자리에 들면
저 술잔은 누가 비워야 하는지요
불혹이 넘어서야
그대의 참 모습을 보았습니다
항상 곁에 있었지만
눈뜬 장님으로 살아 온 지난 세월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어제까지도
내 생에는 낮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새파란 누이
세상 임무를 채 마치지 못한 아버지
세상에 속아 일찍 생을 버린 형님
차례로 당신 곁으로 간 뒤로 부터
임을 짝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삼경(三更)인데
당신께서
반쯤 취한 몸으로 서산 넘어가시면
마음 둘데 없는 이 사내
쓸쓸히 빈 술병만 세야겠습니다
내일 모레 헌헌장부
만월(滿月)로 태어나면
이 초라한 술벗을 알아보시겠는지요
남은 술잔 혼자 비워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