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일대에서 시작된 복합상가의 붐, 그 초기에 나는 두산타워에서 숙녀화 장사를 한 적이 있다.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점포 분양 받기에 실패하고 이미 분양된 점포를 사서 일년 반 정도 장사를 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약간의 손해를 감수한 채 팔았다. 내가 준 프리미엄을 다 받지는 못했지만 본전 생각에 그 때 빠져 나오지 않았다면 피해는 더욱 컸을 것이다.

얼마 전 두산타워는 최초의 임대분양 기간이 끝나서 내부를 뜯어고친 다음 재 분양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원래의 피분양자들이 기득권을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멋도 모르고 재 분양 직전 막대한 권리금을 주고 점포를 산 사람들은 그야말로 피해가 막심할 것이다.
세간에 너무도 많은 거품이 낀 채로 잘못 알려졌던 동대문 복합상가에 대한 얘기는 다시 할 기회가 있을 것이고, 내가 장사할 당시 한 편의 경험으로 돌아가서......

계절별 상품의 출시는 관심 없는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예를 들어 가을이다 싶으면 이미 판매업체들은 가을상품 세일에 들어간다. 특히 우리처럼 사계절이 있는 나라는 제조업체나 판매업체가 긴장을 늦출 여유가 전혀 없다.
짧은 가을, 아무리 늦어도 10월 말쯤 되면 겨울상품 출시 준비가 완료되고 각 매장은 이미 겨울로 접어든다. 그리고 1월 초 중순까지는 겨울상품의 재고를 적정수준 이하까지 떨어뜨려야 한다.
숙녀화도 겨울 상품의 매출단위가 큰 편이다. 아무래도 살이 더 많이 보이는 샌들보다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가 가격이 훨씬 비싸니까......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로 장사가 좀 되려면 각 계절마다 기후가 해당 계절다워야 한다. 즉, 여름은 더워야 하고 겨울은 추워야 한다.
당시 겨울은 2년 연속 평년보다 따뜻했다. 당연히 부츠는 잘 팔리지 않았고, 상인들마다 겨울상품을 빨리 빼기 위해 일찌감치 혈안이 되어 이윤을 점점 줄여야 했다.
그냥 뒀다가 내년에 팔면 될 것 같지만 대부분 장사하는 사람들에겐 그런 여유가 없다. 어떻게든 현금을 만들어야 매 달 고정비용을 충당하고 봄 신상품을 늦지 않게 준비할 수 있다. 재고를 보관할 창고도 없을뿐더러 특히나 해마다 유행과 패턴이 변화하는 패션상품의 경우 내년을 기약한다는 것처럼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 없다.

모두가 상품을 빨리 빼려고 혈안이 되는 것은 모두가 보편적 타이밍을 맹신하기 때문이다.
적정 마진 이하로 판매를 할지언정 재고가 시기에 맞게 줄어드는 것이 그들에겐 더 큰 위안이고 안심이 된다.
남들이 다 싸게 파는데 나만 적정 마진을 고수한다면 나의 판매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나 또한 가격적으로 그들과 적절히 밸런스를 맞추어야 했다. 대신 다른 가게에 부츠가 점점 줄어드는 동안에도 내 가게에는 항상 갖가지 부츠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계속 생산을 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봄 상품으로 교체를 하는 2월에도 나는 부츠를 생산했다. 계속 생산을 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계속 팔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 유독 나만 부츠를 다른 해보다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팔 수 있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다른 사람들이 팔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긴 하지만 2월에도 부츠를 찾는 손님은 있었고, 예를 들어 500명의 손님이 300개의 가게에서 상품을 고를 때 내가 팔 수 있는 확률(1.66명)을 따지는 것보다 단 열 명의 손님이라도 모두 내 가게로 오도록 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계산이라는 생각에 그런 모험을 한 것이다.
처음 주변의 상인들은 나를 걱정했다.
"경험이 적어서......"
"장사를 아직 몰라서......"
그러나 나는 그 해 늦겨울 그들의 4~5배가 되는 매출을 올렸다.

보편적 타이밍을 파악하라. 그리고 그에 따르라. 그러나 맹신하지는 말라. 경우에 따라 보편적 타이밍을 역으로 이용하면 남다른 이익을 취할 수 있다.
남들과 똑같이 하면 남들과 똑같이 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