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3학년 때던가 아버진 불쑥 날이 반짝이고 하얗게 미끈한 스케이트를 사오셨다.
이 시골바닥에서 스케이트 탈 데가 어딨느냐..구
스켓트 탄다고 돌아 댕기다 독감이라두 걸려 오면 어쩌겠냐...구
엄마의 지겹도록 긴 지청구를 들으면서도 소리 지르며 좋아하던 딸 때문에 벙글 벙글 즐거우시더니

어느 봄 날, 아버진 또 일을 내셨다.
-나와 보니라.
-왜에?
-글쎄 나오랑게
-뭔데에?
-쉿! 느이 엄마 알믄 난리난께 살짝 나오니라.
와아..
그것은 앞에 바구니가 달린 빨갛게 빛나는 이쁜 자전거였다.
그날 부터 난 우리 동네 중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 배우기를 시작했다.
아버진 뒤를 잡으시고는
-중심을 잡어라, 중심을!

그 뭔지도 모르겠는 <중심>을 잡으라 연신 소리 치셨고,
내가 <중심>을 알기까진 무릎팍이 다섯 번도 넘게 깨지고,
한차례 볼때기를 밀어내는 험한 꼴을 당한 후였으니
그때부터 내 운동신경은 젬병이었나 보다,

그러던 어느날
잊어버렸던 낯익은 신발 한짝을
마루 밑 우리 백구 잠자리에서 우연히 발견하듯
<중심>은 그렇게 낯익게 나에게 발견되어
그때부터 <중심> 잘 잡는 프로 드라이버는 집안의 온갖 심부름에
-내가 할께..
라고 큰소릴 쳤다.
띠링 띠링 경적을 울려가며 시골길을 달리는 그 기분이란...

한번은 지나가는 개구리를 피하려다 논두렁에 빠져
홈빡 진흙을 뒤집어 쓰고 홰액 고개가 돌아간 자전거를
간신히 끌고는 질질 훌쩍이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하필이면 그날,
내가 홈빡 진흙을 뒤집어 쓴
하필이면 그날,
내 멋진 자전거가 홰액- 고개가 돌아간 바로
짝사랑하던 주유소집 아들을 만나야했던 낭패를 겪기도 했다.

도시로 전학을 가면서
자전거는 주말에만 만나야하는 애뜻한 내 사랑이 되어 버렸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리는
낭만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지금...
페달을 돌리며 산들바람을 사랑하기엔 너무 늦어 버린
어떤 여자는
시절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봄을 사랑한다

- 장욱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