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을 분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봄이면 씨를 심고, 여름이면 김을 매고, 가을이면 거두어 드리고 겨울이면 쉴줄아는 그러한 철이 난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렇지 못하여 봄에 가을을 거두려 한다든가, 여름에 봄을 씨뿌리려 한다든가, 가을에 겨울의 휴식을 즐기려 할 때 생길 비참한 삶의 모습이 참으로 두렵기 대문이다.
그러나, 실은 이 두려움이 내 현실이지, 이 간절한 바램이 내 현실은 아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때로는 결딜 수 없이 역겨웁고 괴롭고, 어떻게 살아야 옳은 것인지를 아는 것과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삶이 이처럼 심한 갈등을 일으킬 수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 소용돌이 속에서라도 여전히 나는 철이 난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희구를 지닐 수 있음을 나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마저도 없었다면 나는 어이 사람일 수 있었으랴 그래도 그 그루터기에 기대어 나는 내 삶을 꾸려나가면서 철이난 성숙한 사람으로 봄과 여름을 가을과 겨울을 분간하고자 꿈뜰거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또한 내가 자존심을 가지고 살기를 원한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말이지만 나는 내가 진정으로 귀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다짐한다. 그러기에 나는 나를 함부로 한수가 없다. 또한 나는 내가 나를 참으로 깨끗하게 여기기ㅐ문에 더러움에 물들 수 없다고 늘 다짐한다. 그뿐이랴 나는 내가 투명하고 영롱한 아침이슬 같다고 여기기에 흐리고 탁한 판단을 스스로 범치않으려는 의지를 지니려 한다. 더 나아가 나는 사랑받아 마땅할 만큼 그처럼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게 부어지는 사랑을 배반할 수 없다는 절실한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자존심을 가지고 살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온통 세상사람들이 나처럼 그렇게 귀하고 훌륭하고 영롱하며 사랑받을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누구나 자기의 자존심을 지닌 사람들임을 내 스스로의 인식에 바탕하여 조금도 가감없이 받아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기에 나는 못난 사람과 더불어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다행히 이 세상에 못난 사람은 없다 나는 더러운 사람과도 함께 더불어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다행히도 더러운 사람이란 없다.
나는 또한 판단이 흐리고,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과는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만 때때로 내 자존심을 잃어 내눈이 흐리어 지래만 그런 사람들이 있는 듯 착각할 뿐이다.
아, 나는 철이 난 사람으로, 그리고 참으로 자존심을 지니고,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