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소득 제대로 반영 못해… 저소득층 불만 팽배 年 4000만원 이자소득자 ‘0원’…송파 세모녀는 매달 5만 140원 재산 많아도 피부양자면 ‘면제’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사는 A씨는 월급 외에 종합과세소득이 2011년분 기준 7321만원으로 책정됐다. 보수 외 건강보험료(건보료)로 18만2710원을 냈다. A씨는 우연히 이웃에 사는 B씨가 연 6911만원의 종합과세소득을 올리지만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억울한 심정에 건강보험공단 지사를 찾아 따졌지만 규정에 따른 부과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정부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정책 백지화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지난해 A씨처럼 보험료와 관련해 건보공단에 제기된 민원은 6000만건에 이른다. 단순 계산하면 국민 한 명당 1건 이상의 민원을 제기한 셈이다. 

현행 건강보험 규정은 직장 가입자는 월급 외 소득이 7200만원을 넘으면 추가 건보료가 부과된다. 또 재산 소득이 있어도 피부양자로 올리면 건보료를 내지 않는다. 직장인이 아닌 자영업자 등 지역보험 가입자에게는 성별 연령과 집 자동차 등 재산을 기준으로 건보료를 책정한다. 생활필수품이 된 자동차는 국산차와 수입차를 가리지 않고 배기량 기준으로 부과한다. 생업을 위해 차량을 구입한 저소득층의 불만이 많은 이유다.

정부는 소득 외 부과 기준을 2000만원으로 낮추고 성별 연령, 자동차 등을 건보료 부과기준에서 제외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정책을 완성해 놓고 막판에 포기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조는 29일 입장을 내고 “현행 부과체계는 부자들에게 걷지 않는 보험료를 서민들을 쥐어짜서 재정을 충당하는 구조”라며 “19억원을 통장에 넣어두고 이자소득(연 4000만원)을 받는 사람은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소득 없이 지하 월세방에 살던 ‘세 모녀’에게는 5만140원을 부과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기획단이 마련한 개선안을 즉각 시행할 것을 촉구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영세 자영업자 생계수단 등에 대한 무차별적 압류 업무 등을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도 이날 성명을 통해 “기획단의 개편안은 보완할 점도 있지만 큰 틀에서 전향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며 “돌연 논의 백지화는 황당한 정책 후퇴이며 정치적 셈법에만 치우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백지화된 것은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해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민 대변인은 일부 언론의 ‘청와대 압력설’ 보도에 대해 “청와대는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과 관련해 추진단에서 마련한 여러 모형에 대해 알고 있었고 이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복지부에서 내부적으로 충분히 검토했다”며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해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적으로 복지부 장관이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부인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정책조정회의에서 “국정과제를 포기한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한 뒤 이해를 구하는 게 국민에 대한 대통령의 도리”라고 비판했다.

조병욱·홍주형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