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잖아, 남자들 처음에는 다 잘하는 거.”

헤어진 지 3년 된, 전 남자친구이자, 지금은 어줍잖은 친구로 지내고 있는 그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묘했다. 완벽히 쿨할 수 없는 느낌이랄까? 애틋함이라거나 미련이 남아있는 건 분명 아닐 텐데, 기분이 묘했다. 물론 안다. ‘남자가 처음에는 다 잘해주는 거.’가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잘해주고 있는지. 그래서 그 전 남자친구의 마음이 지금 어떠한지. 그 친구가 나와 처음 사귈 때 어땠는지, 그 기억이 이상하리만치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며칠간. 심지어 꿈에서까지 재연을 하는 바람에 꿈에서 깨고 나면 영문도 모르는 우울함이 생겼다.

전 연인과 친구로 지낸다는 건 이런 것일까? 시시때때로 공허함과 우울함이 찾아오는. 이상했다.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나와 헤어지고 난 3년동안 그에게 아무도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여자만이 알 수 있다. 놀랍고 민첩한 직감으로.

지금 만난 이 여자는 내게 처음에 해주었던 그것들을 고스란히 해주고 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자니 배도 아프고, 괜히 아쉽다는 간사함마저 생겼다.

그래, 친구로 지내지 않았다면 덜 아팠을 수 있을 텐데. 후회한다.

나를 버리고 떠난 남자는 차라리 괜찮더라.

차라리 나를 차고 난 남자는 나아! 그런데 내가 찬 남자에게 새 여자가 생긴다는 건 정말이지 기분이 더러워.  뭔가 아쉬운 거지. 여자가 이별을 고할 때에는 사실 ‘100% 혹은 그 이상 완전히, 완벽히 꼭 헤어지고 말겠어’의 개념은 아니잖아. 솔직히. 물론 다른 남자가 생기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 말이야. 그래서 난 차이는 편이 낫더라고. 어쨌든, 내가 뻥! 하고 차버렸는데, 나보다 어리고 심지어 예쁘기까지 한 지지배와 희희낙락 거리는 모습은 상당히 배도 아프고 술도 먹고 싶게 하는 심정이지. 그런데 어쩌겠어. 이럴수록 자기관리를 잘해야 돼. 없어 보이게 괜히 술 먹고 전화하거나, 지지리궁상 매달리기라도 하면 그나마 남아있던 정까지 뚝 떨어지게 하니까. – 32세 H씨

이상하지, 왜 아쉽고 우스운 꼴을 보이게 되는지.

전 남자친구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말에 맨발로 그의 집 앞에 뛰어갔다. 거기서 현재 여자친구와 마주쳤다. 전 여자친구와 현 여자친구의 불꽃 튀는 만남. 사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 배신감은 실로 더 컸다. 당당했다. 그녀는. 뭐 이런 여자가 여기에 있나 하는 그런 눈빛 수치스럽고 모욕적이었다. 나는 남자친구, 정확히 말해 구남친의 귀싸대기를 날렸다. 너 이러자고 나랑 헤어지자고 한 것이냐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연인이 같은 동네에 산다는 건, 연애 때나 좋은 것이다. 끝이 나고 나면 이렇게 예기치 않은 드라마틱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니까. – 28세 L씨

이제 전 남자친구를 완벽히 보내줘야 할 때

지금 생각해보면 왜 헤어졌는지 모르겠다. 서로에게 마음이 뜬 것도 아니었고, 다소 권태기였고 사이가 예전 같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믿음과 정이 돈독했는데. 그냥 이쯤 되면 이 연애를 마무리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설적인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도 불만이었고, 자꾸만 상대의 나쁜 점만 보이고, 모든 것이 부정적이었으니까. 그렇게 헤어졌다. 헤어진 일 년쯤 흘렀을까? 주변에게 그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사실 일 년 동안 그를 하루라도 잊은 적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게도 스치듯 연애와 남자가 있었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늘 따라다녔으니까. 그런데 그가 연애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만난 지 3개월 밖에 안된 여자와 결혼을 한단다. 어쩌겠는가? 꼴이 우스워도 그가 내게 청첩장을 보낸다면 기꺼이 갈 생각이다. 축의금도 제법 내면서. 그래야 진짜로 그를 완벽히 보내줄 수 있을 것 같기에. – 30세 L씨

서로의 본심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여자가 생긴다는 건, 이상하리만치 쿨할 수 없는 대목이다. 나도 그랬다. 괜히 배도 아프고 약도 오르고, 슬프고 우울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는 좀 특이했다. 서로의 본심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랄까? 그 남자는 어떤 여자를 만나도 정착하지 못했다. 우리의 연애가 길었고, 오랜 연애가 남긴 후유증 같은 것일 수 있는데, 만난 여자와 나를 비교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었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결론적으로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일 년 동안 연애를 더 했다. 지금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론 헤어졌다.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한번 헤어진 연인에게 제발 관심 좀 끄라고. 그건 본인 정신 건강은 물론 다음 연애에도 행복하지 않다고. 그러니, 헤어진 사람은 제발, 잘 사세요. 나도 잘 살고 있어요! 라며 딱 부러지게 아예 끝내는 편이 속 편하다고. – 30세 O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