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재밌을 것 같아서 선택하고 연기를 못하면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분함을 엔진 삼아 달려간다. 거침없다기보다 겁이 없다. 조금 위험할지라도 다른 이야기를 하고픈 감독들이 김고은에게 손을 내미는 이유다.

<협녀, 칼의 기억>(이하 <협녀>)에서 와이어 액션이나 칼을 쓰는 것이 처음이었는데 몸의 선이 어색하지 않고 예쁘더라. 20대 여배우 중 당신만큼 몸 고생, 마음고생 많이 하는 영화로 필모그래피를 채운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센 영화에 특별히 끌리는 건 아니다. 좋은 부분이 보이면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생각이 그다지 깊지 않아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다.(웃음) <몬스터> 같은 경우도 ‘와, 재미있다. 해야지!’하고 시작했다. 하면서 ‘이게 보통이 아니구나’하는 걸 깨달았다. <협녀>도 이렇게까지 고생할 줄 몰랐다. 이제는 ‘이거 분명히 엄청 힘들거야’ 하는 게 조금씩 보이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도 안됐고, 시나리오가 재미있으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협녀>를 하면서 훈련을 많이 받아서 <차이나타운> 때 많이 편했다.

또래 여배우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주연급으로 성장한 셈이다. 자신만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딱히 없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물어보지도 않는다. 시나리오를 다양하게 받긴 한다. 대부분 장르적이고, 강한 영화, 센 인물이 많은 것 같긴 하다. 한국 영화계에 20대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가 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나한테만 그런 게 들어오나 싶어서 개봉작들을 눈에 불을 켜고 확인했는데 없더라.

장르 영화에서 김고은이라는 배우가 활용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생각도 든다. 중성적이고, 미성숙했던 소녀가 성장하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일단 누군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웃음) 작품을 선택할 때 그렇게 깊게 안 들어간다. 다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인다는 건 내가 갖고 있는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내가 풍기는 분위기나 느낌인 것 같다.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어떤 일을 겪으면서 사람은 변하니까 훗날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불안감을 느끼거나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싶지는 않나? 내 성격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좀 단순하다. 예민하고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불안함은 조급함에서 온다고 생각해서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지만 솔직히 부담스럽지 않다. 누군가가 내게 기대하고 있다고 해서 나를 일부러 증명해보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현장에서 연기를 못하면 스스로 열이 받으니까 열심히 하는 것, 그게 전부다.

배우의 길로 이끌었고 계속 가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얼마 살진 않았지만 연기는 살면서 제일 욕심나는 부분이다. 왜냐고 물어보면 그냥 욕심이 나서, 좋아서인 것 같다. 연기할 때 좋고 행복하다. 행복하니까 잘하고 싶고. 연기를 신들린 듯이 잘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뜻이다. 연기를 잘한다는 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잘하는 사람도 워낙 많다. 그 중에서도 전도연, 김혜수 선배 같은 배우들은 유독 특별하지 않나? ‘그들이 왜 특별할까’를 항상 생각한다. 정확한 이유는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두 분은 일단 좋은 사람들이다. 인간적으로 존경심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스스로도 배우 이전에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나의 연기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많다. 선배들은 현장에서 스태프를 대하는 것도 그렇고, 영화 자체를 사랑하는 것 같다. 배우가 아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좋은 것 중 하나도 그들이 봐주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행복해하는 것, 그게 나한테도 굉장히 큰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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