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아 너는 어디로 가느냐
방황하는 나에게는 길을 가르쳐 주렴
충무로 옛 쎄시봉
을지로 르네상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곳
나에게는 낭만과 서정이 흘러 넘치던 곳
그 구석진 그늘에서 행복을 나누고
사랑의 평화를 느꼈었다

나는 창밖에 모자를 쓴 여자를 바라보면서
홀로 그 젊은 여자가 나의 우상처럼 느꼈더니라
20세기말의 진풍경이었다
포도위에 떨어져 나뒹구는 낙엽을 밟으면서
가을의 비너스를 창으로 불러들여
어여쁜 꽃의 화환을 주고 싶었다

순수한 사랑이란 그런 것였겠지
낯선 여인에 수줍어 웃는 모습에
나도 공연히 수줍어 하던 추억의 계절
심한 바람이 짓밟고 간 언덕에 나목처럼
보고싶다 나는 멍하니 서서 웃깃을 여민다
슬픈 가락이 아니어도 홀로 눈물을 흘린다

배고픈 시절이건만
레온등불은 화려하였고
라콤파르시다 노래 한방울이면
술잔 보다 더 아롱거렸다
세상에 대한 감정은 가을날 처럼
구슬픈 나그네의 심성으로 포근히 가라앉고 말았지

눈물처럼 떨어진 낙엽 한장에
미소를 그려 그대 창가에 날려보내고 싶었던 시절
그대여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편지를 쓴다 그리움의 편지를
이제야 철이 드는 것같군
나는 시골 한 구석에서
노년의 하루를 물들여
낙엽지는 언덕길을 수없이 오르내린다
이제야 알겠노라 이별이 무엇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