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키스

그날은 늦여름 태풍이 몹시도 와글대던 날이었지
시내버스도 끝난 그 시간 우리는 그냥 걸었지
성수동에서 청담동까지 넌 그냥 걷자 했지
따로 쓰던 우산을 던지곤 넌 담뽁 들어왔지
발목까지 빗물이 가득한 밤거릴 그렇게 그렇게 걸었지
바람에 비에 추워 떨고만 있는 널 처음 안아 주었지
가도 가도 끝이 없기를 난 그렇게 바라고 바랐었지

너의 집 앞 불꺼진 문방구 처마 밑에서 우린 꼬옥 안고 있었지
비에 바람에 홈빡 젖은 우리의 몸에선 아지랭이가 피어올랐었지
들어가기 싫다며 아침까지 이렇게 있자며 넌 그렇게 졸라대었지
그렇게 그렇게 난 행복하기만 했던 순간이었지

처음이란 새벽에 내린 첫 눈마냥 그렇게 찾아오더라
처음이란 가위에 눌려 벌떡 일어나던 새벽 마냥 그렇게 찾아오더라
처음이란 그래서 가슴이 터질 듯하면서도 너무 아프더라

어툰 내 입술을 달래며 나무같은 내 목을 잡아주며 넌 키스했지
여름 오이향이 나던 너의 입술에 하마트면 난 울 뻔했지
우산도 바람에 날려가버리고 새벽 비바람은 우릴 한참을 때렸었지

눈물을 흘리며 넌 헤어지자고 했지
여름 오이향에 아직 취해있던 내 앞에서 넌 헤어지자고 했지
태풍을 뚫고 여기까지 왔는데 넌 헤어지자고 했지
다시 입술을 내미는 널 밀치고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지
그래야 그래야 널 미워하지 않을것 같은 알량한 자존심에 그냥 뛰었지

눈물도 안나더라 몇년을 눈물 한번 나지도 않더라
보고 싶지도 않더라 몇년을 한번도 보고 싶지도 않더라
그런데 비만 오면 바람이 불면 항상 울고 있더라, 4년이 지났어도 항상 울고 있더라
그날 뛰어가는 내 등 뒤로 나에게 소리쳤던 너의 말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서

처음은 두렵다

...1991년 8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