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이를 빌미로 채권자가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한다는 일종의 ‘노예 각서'를 쓰게 한 남성이 경찰에 입건됐습니다.

나중에 이 남성은 여성의 가족 신상까지 파악해 협박을 한 혐의까지 받고 있는데요.

그런데 놀라운 건 이 남성이 사채업자도 아니고 조직폭력배도 아닌, 평범한 세무 공무원이었다는 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던 건지, 뉴스따라잡기에서 따라가 봤습니다.

30대 여성 A씨가 한 남성에게 돈을 빌리면서 쓴 차용증서입니다.

천만 원을 빌리면서, 열 달 동안 매달 132만 원 씩, 연리로 따지면 38% 정도의 이자와 원금을 갚겠다고 써 있습니다.

금리도 금리지만, 이 차용증엔 일반적인 차용증에선 볼 수 없는 낯선 문구가 눈에 띕니다.

상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하루 동안 채권자 옆에서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말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녹취> A 씨(피해자/음성변조) : "받아쓰라고 해서 제가 받아쓴 거예요. ‘하루 동안 원하는 걸 들어준다.’라는 그 문구가 진짜 잠자리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돈을 빌린 여성 A씨와 돈을 빌려준 남성 B씨는 지난 2012년 업소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녹취> A 씨(피해자/음성변조) : "2012년 9월 중순에서 11월 초 사이였을 거예요, 하반기쯤에. 성매매 업소에서 직원으로 있고 손님으로 만난 거예요."

손님과 종업원으로 만난 두 사람은 여러 번 얼굴을 보며 가까워졌고, 나중에는 개인적인 고민까지 털어놓는 사이가 됐다고 합니다.

<녹취> A 씨(피해자/음성변조) : "대화 도중에 빚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얘기를 하래요, 자기한테. 도대체 얼마기에 많으냐고. 조금 비싼 원금하고 이자를 갚아가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A 씨의 고민을 들은 손님 B 씨는 차용증을 작성한 뒤 선뜻 천만 원을 빌려줬습니다.

급한 불은 껐지만, 매달 130만 원이 넘는 돈을 갚기는 쉽지 않은 일.

결국, 여성은 이자와 원금을 갚기 위해 어딘가에 또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미 작성한 차용증에는 또 다른 단서 조항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B씨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돈을 빌릴 수 없다’는 것.

결국, 두 사람은 두 번째 차용증을 쓰게 됩니다.

<녹취> A 씨(피해자/음성변조) : "첫 번째 차용증 쓰고 3~4개월 정도, 겨울쯤에 썼거든요. 그때 돈을 조금 더 빌리면서 추가 계약서를 쓴 거예요."

두 번째 차용증에는 좀 더 노골적인 단서 조항이 달립니다.

돈을 빌리는 대신 한 달에 두 번, 24시간 동안 자신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것.

<녹취> A 씨(피해자/음성변조) : "그게 이제 횟수가 많아졌죠. 돈 안 갚을 때마다 그러는 게 아니라 이제는 돈 빌려주는 조건이 성관계, 그게 된 거예요."

그렇게 A 씨는 1년 반 동안, 무려 스물여섯 차례의 성관계 요구에 응해야 했다고 했습니다.

입금이 늦을 경우, 심한 폭언을 들어야 했다고도 하는데요,

<녹취> A 씨(피해자/음성변조) : "자정까지 입금해야 해요. 거기서 1분 1초라도 늦어지면 안 돼요. ‘너는 또 네가 네 무덤을 판 거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하니까 막 화를 내면서 문자로 심한 말들을 많이 했어요."

심지어, A씨가 만남을 거부하자, 자신이 알려주지도 않은 가족들의 이름까지 들이대면서 위협을 했다고 합니다.

<녹취> A 씨(피해자/음성변조) : "저희 엄마 이름을 알고 있는 거예요. 저는 부모님 성함 얘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집이고 (뭐고) 찾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네가 말 안 한다고 내가 못 찾을 것 같으냐고."

<인터뷰> 조성길(수사관/대전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 "돈 갚지 못할 시에는 말 그대로 부모님 어디 사는지 안다. 가족들 이름을 거론하면서 협박한 거죠."

그렇다면, 상식을 벗어난 차용증에, 남의 신상 정보까지 턴 이 남성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뜻밖에도 남성 B 씨의 직업은 세무 공무원이었습니다.

상대 여성의 개인 정보는 국세청 전산망에 접속해, 무단으로 열람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습니다.

1년 6개월에 걸친 고통 속에서도, 신고를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피해 여성.

<녹취> A 씨(피해자/음성변조) : "무서웠던 게 제일 컸어요. 무섭고, 합법적인 일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잖아요. 불법적으로 일을 하는 상태에서 만난 것도 만난 거고."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정신적 고통에 결국, 성폭력 상담 센터를 찾았고, 경찰 신고까지 이뤄지게 됐습니다.

<인터뷰> 조성길(수사관/대전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 "신고는 작년 11월경에 했어요. 그전부터 피해자가 성폭력 상담 센터 상담을 했고 돈을 계속 갚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성관계 요구하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그걸 감당할 수가 없으니까"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피의자 B 씨는 A 씨와는 연인 관계였고, 성관계 강요도 없었다며, 오히려 상대가 공무원이라는 신분상의 약점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터뷰> 조성길(수사관/대전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 "피의자는 연인 관계였다, 결혼 전제로 했다는 말을 하는데 피해자는 그런 말은 터무니없는 얘기다."

취재팀은 B 씨의 주장을 좀 더 들어보기 위해 접촉을 시도해 봤는데요.

변호인 측은 현시점에서의 입장 표명을 거절했고,

<녹취> 피의자 변호사 : "사무실 직원 변호인으로서 거기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실 게 없다고 그러시네요."

B씨 또한, 사건이 종결된 이후에 얘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B씨가 피해 여성을 협박한 혐의가 어느 정도 드러난 만큼, 강요죄 등을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인터뷰> 조성길(수사관/대전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 "피의자가 카톡으로 협박한 내용을 저장해서 증거 자료를 제출했어요. 거기 내용을 보면 욕설한 부분도 있고 노예를 하라 그런 내용도 있고 심리적으로 받는 압박감은 얼마나 크겠어요. 저희가 그런 것을 협박으로 보는 거죠."

경찰은 또, 공무원인 B씨가 무단으로 신상 정보를 열람한 부분에 대해서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습니다.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