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지하철에서 한국인을 판별하는 간단한 방법이 나름대로 하나 있다.
다리를 꼬고 앉거나 양팔을 벌려서 신문 읽는 사람들이다.
일본인들은 이렇게 주변이나 이웃을 불편하게 하는 일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이것이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이른바
'메이와쿠(迷惑) 문화'의 일면이다.
전후 최대 국난(國難)이라는 3·11 대지진 상황 속에서도
일본의 이러한 국민정신은 특유의 저력을 발휘했고,
외국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했다.
실로 엄청난 공포 속에서도
실로 엄청난 공포 속에서도
일본인들은 냉정과 침착을 유지했다.
항의나 원망을 표출하지도 않았고 집단행동 또한 일으키지 않았다.
사람들은 슬퍼도 조용히 울었고 행여 기쁜 일이 생겨도
감정을 속으로 삼켰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 자발적 헌혈은 오히려 늘었다.
약탈행위는커녕 사재기도 거의 없었다.
학교 운동장에 뱀 모양으로 그려진 선(線)에 맞춰 하루 한 끼 주먹밥과
된장국을 묵묵히 기다리는 피난민 광경은 일본의 성숙한 시민문화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극단적인 대재앙의 경우 사람들의 생존전략이 경쟁에서
협동으로 바뀐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것은 무정부 상태를 가정할 때 그렇다.
하지만 일본에서 국가는 건재(健在)하다.
천재지변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의 전통적 가치관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회가 어찌 일본뿐이랴.
혹시 일본인들은 본래 그렇게 태어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평상시 철두철미한 재난대비 교육과 훈련 덕분으로 돌리는 것이
보다 상식적이다.
이처럼 환난 중에 예의 바른 일본인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요인들이 후보로 나서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국가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높은 신뢰가 아닌가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일본은
아닌 게 아니라 일본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방재(防災) 선진국이다.
이를 지원하고 보강하는 사회조직 역시 두텁고 촘촘하다.
특히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주민의 안전에 최대의 역점을 둔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잦은 나라인지라 방재의 성공이 정치의 출발이고
행정의 근본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한 편이다.
재임기간 동안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재난에 소리 없이 대비하기보다는
가시적인 단기성과나 대중영합적인 정책사업에 요란스레 몰입하는
작금의 우리나라 지자체 현실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
하지만 요 며칠 사이
일본 대지진의 성격이 천재(天災)에서 인재(人災)로 바뀌면서
사정은 점차 달라지는 분위기다.
지진이나 해일 자체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정부의 서툰 대응에 의한 '2차 재앙'이나 '2차 피해'는
마침내 일본 국민의 불만과 불안을 자극하기 시작하고 있다.
원전 설계 및 시공이 애당초 부실했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여기에 간 나오토 정부의 아마추어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사람들은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 하고 분노하고 있다.
한때 일본 국민의 시민의식을 높이 평가했던 다른 나라들이
슬슬 자국민 철수를 서두르는 가운데 도쿄에서는
생필품의 '이상(異常) 수요' 조짐에 이어 국지적 시위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감추는 정부,
감추는 정부,
속이는 정부,
무능한 정부,
무책임한 정부까지 이해하고 수용하는 착한 국민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아무리 국가 방재 시스템이 모범적이라고 해도
그것이 개인의 생존과 이익에 관련된 합리적 기대를 저버리는 한, '
모범생 일본 국민'이라는 신화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지배와 복종의 문제를 필생의 연구주제로 삼아왔던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스콧(J. Scott)에 따르면
무조건 순종하는 백성은 자고(自古)로 없다.
마치 양(羊)이 그렇듯이 말이다.
실제로 양을 치기도 하는 그에 주장에 의하면 '순한 양떼'란
지난 8000년 동안 인간이 양을 기르고 길들이는 과정에서 지어낸
희망적 관념일 뿐이다.
결국 처음부터 일본은 이상한 나라도 아니고 부러운 나라도 아니다.
일본 사람들과 비교하여 우리나라 국민은 순한 양떼의 이미지로부터
일본 사람들과 비교하여 우리나라 국민은 순한 양떼의 이미지로부터
특히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대형 재난이나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피해자들의 흥분이 들끓고
덩달아 민심의 동요 또한 유난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천성이나 민족성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고 안녕을 책임져야 할 국가가
아직도 정직·소통·능력·책임 등의 측면에서 별로
미덥지 않은 게 더 큰 이유다.
천재보다 인재가 더 다반사(茶飯事)인
후진국형 위험사회가 어찌 감히 순한 국민을 바랄 것인가.
양 떼가 착하고 거친 것은 목자(牧者)가 하기 나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