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솔이 엄마' 김보영 아나운서의 워킹맘 다이어리

프로야구 경기가 한창입니다. 요즘 야구 보는 재미에 산다는 분들도 많으시지요? 뜬금없이 무슨 야구 타령이냐고요?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몇 달 전부터 남편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TV부터 켭니다. 바로 야구중계를 보기 위해서지요. 남편은 ‘한화 이글스’의 광팬입니다. 그는 원래 오랫동안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해왔는데요, 언젠가부터 돌연 ‘한화 팬’을 자처하기 시작했습니다. 만년 꼴찌였던 한화에 ‘야신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연일 역전 드라마를 쓰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나요? 그래서 뭐가 문제냐고요? 본론은 지금부터입니다.

요즘 남편은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오직 야구에 올인 합니다. 모든 스포츠 채널을 돌려가며 각 팀의 경기를 시청하는데, 여기에 휴대전화까지 동원합니다. 이를테면 TV로는 한화-삼성의 경기를, 휴대전화로는 롯데-넥센의 중계를 보는 식이지요. 반면 저는 야구에 별 흥미가 없습니다. 한번은 저도 야구에 관심을 좀 가져볼까 해서 남편에게 “볼넷이면 아웃이냐?”는 다소 원초적인 질문을 했다가, ‘세상에 뭐 이런 무식하고 어이없는 여편네가 있느냐’는 투의 타박을 들었습니다. 참나, 야구에 관심이 없으면 모를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저녁 시간 내내 남편이 야구와의 깊은 소통에 빠져있는 사이, 저는 잔반들이 흩어진 식탁을 닦으며 아이들의 대거리를 해주느라 파김치가 됩니다.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아이들은 끊임없이 같이 놀자며 보채지만 남편의  눈은 TV화면에만 꽂혀있습니다. 이쯤되면 저도 슬슬 부아가 치밉니다.

어디선가 “온종일 밖에서 일하고 집에 온 남편이 야구 좀 보겠다는데, 그것도 이해 못해주느냐!”는 질타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요, 사실 하루 종일 일한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저녁 메뉴. 솜씨는 없지만 정성은 가득하다. ⓒ김보영

여기서 잠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의 오늘 하루 일과를 소개할까 합니다. 아침 여섯시 삼십분, (어제 늦도록 혼자 야구중계를 본) 남편이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는 사이 저는 남편이 먹을 베이글을 굽고 아이들에게 줄 냉동 블루베리를 갈았습니다. 그리고나서 어제 미처 마무리 하지 못한 설거지를 하고, 솔이가 받아온 통지표에 학부모란을 채운다음 아이 숙제를 점검했지요. 남편이 집을 나선 뒤 저는 두 아이를 씻기고, 입히고, 먹인 다음에야 비로소 출근 준비를 하고 아이들을 차에 태워 각각 학교와 어린이집에 내려준 다음, 서둘러 여의도로 달려갔습니다. 생방송 뉴스를 하고 나서는 강연과 관련한 미팅이 있었는데요, 오늘은 솔이가 다섯 시까지 미술학원에 가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때문에 미팅 중간 중간 휴대전화를 열어 시간을 확인해야만 했지요. 아마 일하는 엄마라면 이런 저의 행동에 무척 공감하실 줄 압니다. 무사히 시간에 맞춰 큰 아이를 미술학원에 데려다줬으니 이제 둘째가 있는 어린이집으로 갈 차롑니다. 아이를 데리고 슈퍼에 들러 저녁 찬거리를 사고 집에 들어와 어질러진 거실을 대강 정리하고나서 밥을 지었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꽁치구이와 소시지 볶음, 그리고 미역국입니다. 쌀을 씻어 불에 안치고 꽁치에 칼집을 내고 있는데 어느새 진이가 곁으로 와서 같이 놀자며 보챕니다. 엄마 밥해야 되니 TV 좀 보고 있으라며, 아침에도 보여준 호비(애니메이션 캐릭터 이름)를 또 틉니다. ‘아이에게 이렇게 TV만 계속 보여줘도 괜찮은 걸까’ 하는 죄책감은 옵션입니다. 얼추 식탁을 차려 배가 고픈 아이들부터 밥을 먹이고 나니, 어느새 일곱 시. 저도 좀 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남편은 오늘도 집에 들어오면 야구보느라 바쁠 게 분명합니다.

자, 이제 제가 남편의 야구사랑에 어깃장을 놓는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시나요? 부부가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한 것은 같은데, 왜 밥을 하는 것도, 설거지를 하는 것도 모두 아내의 몫이어야 하는 걸까요. 남편은 어쩌다 아이라도 재운 날이면 온갖 생색을 내며 좋은 아빠가 되는데, 어째서 몇 달 만에 한 번, 회식 때문에 늦은 엄마는 죄인이 되어야 하느냐, 이 말입니다.

야구로 시작된 이야기가 조금 거창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남편 분들이 꼭 알아줘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비록 아이를 열 달 동안 품고 낳은 것은 엄마이지만, 키우는 것은 아빠도 함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하는 아내가 밖에서도 당당하려면, 집안에서 가사 노동을 하느라 파김치가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제가 아무리 ‘야구 무식자’라 해도, 야구경기가 월요일마다 쉬는 것쯤은 압니다. 더블헤더(야구 경기가 우천 등으로 순연되었을 경우, 그 다음 날에 하루 두 경기를 몰아서 하는 제도)를 피하는 것도 선수들의 피로도가 높으면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 아닌가요?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과 집, 두 곳에서 모두 프로 선수로 뛰기란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의 역할을 분담해 주세요. ‘세계 평화’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의 저녁 메뉴. 솜씨는 없지만 정성은 가득하다.

*칼럼니스트 김보영은 두 딸 솔이와 진이의 엄마이자 국회방송 아나운서로 <투데이 의정뉴스>, <TV, 도서관에 가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육아서 <대한민국 대표엄마 11인의 자녀교육법>을 내고 워킹맘을 위한 강연 및 기고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워킹맘 다이어리에 하고 싶은 이야기나 조언, 다루었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메일(bbopd@naver.com)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