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Romantic) 대신, 현실이 들어차다.
<비포 선라이즈>
유럽 횡단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
비엔나에서 꿈같은 하루를 보낸 두 사람은 6개월 후 플랫폼에서 만날 것을 약속한다.
<비포 선셋>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제시’는
파리의 오래된 서점에서 마치 운명처럼 ‘셀린느’와 만난다.
시내 곳곳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아련함을 깨닫는 두 사람.
<비포 미드나잇>
'자정 전'까지. 일출, 일몰 전까지 '특별한 한 때'를 같이하며 사랑의 감정을 키워왔던 제시와 셀린느. 배경은 비엔나-파리에 이어 '그리스'이구요.
파리에서의 마지막 이후로 9년이 흘렀습니다. 그들은 결혼을 했습니다. 쌍둥이 사랑스러운 두 딸도 있구요. '그리스'에 휴가를 왔는데, 그들의 결혼생활-과거-현재감정 등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눕니다. 아시다시피 <비포> 시리즈는 대단한 볼거리 등이 아닌, 이 '걸으면서 수많은 대화(대사) 하기'가 특징인 영화였죠. 그에 따라 호불호도 다소 나뉘는 시리즈이구요.
그들도 나이를 먹었습니다.
이전에 비해 '두근두근 설레는 감정'은 적습니다. 당연한 걸지도요. 사랑은 이루어졌고, 그들은 서로의 '배우자'입니다. 그래서 대화내용도 '못 이루어질 것 같은 사랑, 혹은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은 감정'등이 아닌, '현실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한편으론 '사랑과 전쟁'을 보는 것 같기도?
전처와의 아들을 공항에서 보내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의 10여분의 장기대화씬'은 '아, 내가 <비포>시리즈를 보고있구나!'하는 생각을 들게합니다. 저 수많은 대화(대사)를 어찌도 쉬지않고 자연스럽게 두 배우가 내뱉을 수 있는지, 정말 놀랍더군요. 대화의 내용이 그렇게 재밌거나 높은 집중도를 요하는 내용들은 아닙니다. '그들의 생활적인 내용'이지요. 그럼에도, 점점 더 'Long 대화씬'에 빠져들게하니 참 묘합니다.
셀린느와의 사랑이야기를 각각 두편의 책으로 써냈던 작가 '제시'는, 20대 청년에서 40대 아저씨로 변했습니다. 여전히 아름답지만 중년의 몸매를 뽐내는 '셀린느'는 아줌마가 다 됐구요. 그렇게 그들도 배우들도 변한만큼, 관객들도 같이 나이를 먹었습니다. 그들은 '떨리는 사랑얘기'대신, 이제 '사랑의 본질, 남녀의 차이, 결혼생활동안 아쉬웠던 부분'들을 가감없이 토로합니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감정이 격해질수록 그들의 '부부싸움'은 마치 리얼과 같이 와닿습니다.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고있습니다. 다만, 사랑의 감정과 형태가 변한 것이겠죠. 아이를 낳고 여자보다 엄마이자 부인이 된 '셀린느'는 제시에게 그런 부분을 토로하고, '제시'는 모든것을 가족에게 맞추며 살게된 자신의 한탄을 내뱉습니다. '사랑의 감정'에서 좀 더 폭넓은 '대화주제와 내용'으로 변했습니다.
누구나 풋풋한 사랑의 감정이 있었던 시절, 내가 저 사람을 못 만난다면...의 아쉬운 감정, 그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현실이 되었을때의 모습 등 <비포> 시리즈를 통해 우리는 그러한 과정들을 공유한 것이겠죠. <비포 선라이즈>나 <비포 선셋>의 여운은, 그들이 이어지지못할 것 같은, 그들이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못 만나게되면 어쩌나..의 감정이 컸을 겁니다. <비포 미드나잇>은 '그 후..'의 모습을 보여준거나 마찬가지인데, 어쩌면 '첫사랑을 다시 만났을때의 환상이 깨진 것'같은 느낌이 들지도요. 이젠 '영화보다 현실에 가까운 영화'니까요. 전 오히려 이런 부분이 좋았습니다.
다음 시리즈도 찍어주시길요,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님.
비엔나-파리에 비해 '사랑의 감정'보다 '휴양지의 느낌'이 더 큰 '그리스'이기에, 이전보다 그렇게 큰 배경적인 매력이 작용하는 것 같진않습니다. 그냥 시원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이런저런 Talk를 쏟아내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힐링의 장소가 될테니까요.
마지막을 보면서 든 생각은, '제시와 셀린느'가 60살이 되어서 <비포...>의 새 작품을 찍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왕 그들의 첫만남부터 재회, 결혼생활까지 보게된거, 노년까지 한번 같이 해보자라는 느낌일까요. 제목이 뭐가 될지도 상상해봅니다. <비포 미드나잇>은 깔끔하게 '자정'전에 약속대로 끝납니다. 아무리 지지리궁상떠는 부부싸움같은 토크라도 영화는 해피엔딩의 느낌으로 끝나겠죠? 그 느낌마저 좋았던 <비포 미드나잇 Before Midnight>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