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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 - 세상에 버림받은 그들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 태어나줘서 고마워.
13  쭈니 2022.06.10 18:32:19
조회 146 댓글 0 신고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주연 :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이지은, 이주영

송강호,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다.

[브로커]를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실 고민이 컸다. 출연 배우진만 본다면 당연히 봐야 했다. 믿고 보는 연기파 배우 송강호와 대한민국 대표 꽃미남 배우 강동원이 [의형제] 이후 다시 뭉쳤고, 여기에 배두나와 이지은, 이주영까지 출연하니, 출연 배우진의 호화찬란한 이름만으로도 [브로커]는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문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다. 내가 이 감독의 영화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2005년 시사회로 본 [아무도 모른다]의 충격이 17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 생생한 것이 문제이다. [아무도 모른다]는 엄마로부터 버림을 받은 아이들이 겪는 비극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영화 후반부의 충격은 너무나 끔찍해서 그 어떤 공포 영화보다도 서늘한 후유증을 남겼다.

[브로커]의 내용은 베이비 박스에 아기를 버린 미혼모 소영(이지은)이 입양 '브로커' 상현(송강호), 동수(강동원)와 함께 입양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엄마로부터 버려진 아이라는 측면에서 [아무도 모른다]와 어느 정도 맞닿은 부분이 있다. 그래서 [브로커]를 보는 것이 꺼려졌다. 또다시 극장에서 무방비 상태로 당했던 [아무도 모른다]의 충격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로커]의 개봉 일자가 다가오면서 나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브로커]를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 고민을 단번에 해결한 것은 지난 5월 28일 막을 내린 제75회 칸영화제에서 [브로커]의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이다.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더불어 두 편의 한국 영화가 연달아 수상의 기쁨은 전해줬으니 한국 영화팬으로서 어깨가 으쓱했다.(일본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을 했지만 [브로커]는 엄연한 한국 영화이다.) 그와 동시에 나의 고민은 종지부를 찍었다. 무조건 봐야 한다. [브로커]가 [아무도 모른다]처럼 끔찍한 비극일지라도 무조건 봐야 한다. 기왕 보기로 한 만큼 개봉 당일 당장 극장으로 향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이 있듯이 또다시 고민에 빠지기 전에 얼른 봐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베이비 박스에 아기를 버린 엄마 소영

[브로커]는 비 내리는 어느 날 밤, 교회 현관의 베이비 박스 앞에 우성이라는 이름의 갓 태어난 아기를 버리는 미혼모 소영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원래는 베이비 박스 안에 아기를 넣어야 하는데, 소영은 베이비 박스 안이 아닌 베이비 박스 앞의 바닥에 아기를 내려놓는다. 이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경찰 수진(배두나)과 이 형사(이주영)는 아기를 베이비 박스 안에 넣어 준다. 그리고 아기가 베이비 박스 안에 들어오자 아기를 발견한 상현과 동수는 CCTV 기록을 지우고 아기를 상현이 집으로 데려간다. 영화 시작 몇 분 만에 [브로커]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관객에게 첫인사를 건넨 셈이다.

결국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베이비 박스에서부터이다. 베이비 박스는 버려진 아기들의 동사를 막기 위해 2009년 주사랑공동체 교회의 이종락 목사가 최초로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베이비 박스의 취지는 옳다.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기를 낳은 미혼모의 상당수가 아기를 유기했고, 그로 인하여 유기된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맞이했다. 베이비 박스는 그렇게 유기된 아기의 비극을 막기 위해 설치되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가 않다. 베이비 박스는 아기를 유기하는 무책임한 부모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오히려 아동 유기 범죄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소영과 동수는 이 문제로 말다툼을 한다. 아기를 베이비 박스에 버린 소영을 비난하는 동수에게 소영은 그러게 왜 베이비 박스를 만들었냐고 항변한다.

베이비 박스에 아기를 버리는 소영을 보며 수진은 '버릴 거면 왜 낳았냐'라며 소영을 비난한다. 결국 수진은 소영이 낙태를 하지 않은 것을 비난한 셈인데, 이 문제 역시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사회적 문제이다. 낙태를 영아 살인으로 보는 반대론과 여성의 인권 문제로 접근하는 찬성론이 대립한다. 영화에서 소영은 수진에게 항변한다. '아기를 버리는 것보다 아기를 죽이는 것이 죄가 더 가볍냐?'라고... 이렇듯 [브로커]는 소영을 통해 미혼모, 영아 유기 등 묵직한 사회적 문제를 관객 앞에 던져 놓는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풀어내는 기술

영화의 주제만 놓고 본다면 [브로커]는 한없이 무거운 영화일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하지만 웬걸... [브로커]는 결코 무겁지가 않다. 오히려 영화는 훈훈한 가족 드라마처럼 가볍게 진행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상현이 있다. 엄밀하게 따진다면 상현은 흉악한 범죄자이다. 그는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유괴하여 돈을 받고 입양을 보내는 '브로커'인데, 좋게 말해 '브로커'이지, 나쁘게 말하면 인신매매범이다. 그리고 교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동수는 상현의 공범이다. 상현과 동수의 범죄가 TV 뉴스에 나온다면 시청자들은 아마도 '어떻게 저 어린 아기를 팔아서 돈을 벌 생각을 하냐?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라고 쌍욕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수진과 이 형사도 상현과 동수를 체포하기 위해 잠복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계속해서 상현과 동수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며 관객으로 하여금 '얘네들 그렇게 나쁜 놈들 아니에요.'라고 설득한다. 사실 상현이 입양 '브로커'를 시작한 이유는 순전히 돈 때문이다. 도박빚 독촉을 받고 있는 그로서는 입양 '브로커'를 하면 한 건당 적게는 천만 원, 많게는 4천만 원까지 벌 수 있다. 이렇게 돈 때문에 입양 '브로커'가 되었지만 상현은 소영에게 우성을 친부모처럼 키워줄 사람을 꼭 찾아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그러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만약 상현의 목표가 오로지 돈이었다면 소영을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는다. 대신 까칠한 소영의 투정을 모두 받아 주고, 소영이 원하는 입양 부모를 찾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한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분명 상현과 동수는 끔찍한 범죄를 모의했지만, 그들의 여정은 훈훈하다. 상현, 동수와 함께 한 여정 속에서 소영은 가족의 끈끈한 정을 느낀다. 아마도 송강호의 연기가 칸영화제를 사로잡은 이유는 그러한 아이러니에 있지 않았을까? 끔찍한 범죄를 모의한 상현에게 느껴지는 훈훈한 아빠의 모습이라니... 상현이 친딸과 만나는 장면에서는 관객으로 하여금 상현을 측은하게 생각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러한 면에서 상현을 뒤쫓는 수진의 시선은 곧 관객의 시선이 된다. 수진 또한 상현을 몰래 미행하면서 그를 불쌍하게 쳐다본다.

엄마는 원래 자식을 위해 뭐든 하는 거란다. 그리고 아빠는...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종잡을 수가 없어진다. 소영의 영아 유기, 상현과 동수의 영아 인신매매 범죄로 모자랐는지 영화 초반 난데없이 살인 사건이 끼어드는데, 그 살인 사건의 범인은 바로 소영이다. 그녀는 조직폭력배인 우성이의 친부를 죽인 도망자 신세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를 소영이 죽인 조직폭력배의 아내가 뒤쫓으면서 영화는 스릴러의 형태까지 띤다. 이건 도저히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영화이다. 상현과 동수의 범죄는 이미 수진과 이 형사에게 포착되었다. 언제든 아기를 건네고 돈을 받는 순간이 온다면 그들은 잠복 수사 중인 수진과 이 형사에게 체포될 것이다. 소영의 상황도 녹록하지가 않다. 조직폭력배가 그녀를 뒤쫓고, 조직폭력배를 피하더라도 소영은 살인범으로 체포될 것이다. 상현과 동수, 소영과 보육원에서 합류한 여덟 살 개구쟁이 해진이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결말은 아무리 영화라고 할지라도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소영은 선택을 한다. 아니, 사실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수진과 협상하여 상현과 동수를 넘겨주고 자신은 감면받는 것. 그것이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결국 그들의 행복한 동행은 소영의 배신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상현은 이미 소영의 배신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소영의 선택은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우성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또다시 상현의 진가가 발휘된다. 친딸로부터 아빠의 역할을 거세당한 상현은 결국 소영을 위해, 그리고 우성을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한다. 그는 자신의 도박빚을 갚아줄 마지막 희망인 돈을 포기했고, 소영과 우성의 앞길에 방해물이 될 것이 뻔한 태호를 제거한다. 우성을 위해 모두를 배신한 소영처럼, 상현은 우성을 위해 모든 짐을 혼자 떠안는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 뭐든 하는 존재라면, 아빠는 자식을 위해 모든 짐을 어깨에 짊어지는 존재이다. 그 순간 상현은 소영의, 우성의 아빠가 된다.

해피엔딩이 아닌 해피엔딩

결국 그들의 여정은 체포로 끝을 맺는다. 우성이에게 진심 어린 애정을 보이던 부부에게 우성이를 넘겨주려던 동수는 수진에게 체포된다. 그리고 소영은 자수한다. 그래, 애초에 해피엔딩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들이 아무리 끈끈한 가족의 정을 보여줬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범죄자이다. 그래, 애초에 이렇게 끝날 이야기였다. 그나마 상현의 위험한 선택 덕분에 최악은 면한 것으로 만족을 하는 수밖에... 영화를 보며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랐던 나는 이 영화의 결말이 한편으로 씁쓸했다. 그들이 모텔방에서 서로에게 건넨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한마디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가슴 아프게 맴돌았다. 평소엔 별말 아니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찡하게 들리던지...

하지만 영화는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 3년 뒤, 소영은 모범수로 감형되어 출소하여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었고, 수진이 우성을 맡아 키우며 우성은 해맑은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우성에게 진심 어린 애정을 보이던 부부는 여전히 우성이에게 애정을 보낸다. 그들의 집행유예가 끝나는 순간 그들은 우성이의 부모가 될 것이다. 상현, 동수, 소영, 우성이 가족이 되어 함께 행복하게 살 수는 없었지만 영화는 나름대로 현실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결말을 그들에게 선사한다. 내가 원했던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브로커]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해피엔딩임에는 분명하다.

영화가 끝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훈훈한 열기가 느껴졌다. 미혼모, 영아 유기, 아동 인신매매 등 무거운 주제로 시작했던 영화가 훈훈한 가족 드라마로 진행되더니 결국에는 가슴 따뜻한 결말로 끝을 맺은 것이다. 확실히 거장의 영화는 다르긴 달랐다. [아무도 모른다]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모른다]와 같은 충격 요법 대신 따뜻한 감동으로 묵직한 주제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 영화를 보기 전, 볼까 말까, 고민했던 나 자신이 머쓱할 정도로 [브로커]는 훈훈하고 따뜻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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