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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우스] - 다수자에 대항하는 소수자의 생존법... 다수자에 편입되거나, 다수자보다 강해지거나.
13  쭈니 2022.03.31 11: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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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다니엘 에스피노사

주연 : 자레드 레토, 맷 스미스, 아드리아 아르호나

현대 사회에서 소수자는 배척과 무시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가?

최근 장애인 단체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동권을 쟁취하기 위해 출근길 지하철에서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 단체의 절박함을 나는 이해한다. 나의 절친한 친구의 큰 형이 소아마비로 인한 하반신 불구이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막냇동생의 친구들을 반겨주던 형. 하지만 친구의 가족은 장애가 있는 맏아들로 인하여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결혼을 하려고 해도 형제 중 장애인이 있다는 이유로 상대 집안의 반대가 심했고, 결국 친구도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장애인 아들이 혼자 자립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혼자 준비해야 했다. 결국 친구의 아버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집 근처에 작은 가게를 준비해 주셨고, 그곳은 지금까지 형의 일터가 되었다. 이렇게 장애인 가족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동안 국가는 장애인 직업 훈련 정도만 지원해 줬다. 그 직업 훈련이라는 것도 도장 만드는 기술 등 지금은 쓸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민주주의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 다수결의 원칙으로 인하여 작동되는 민주주의 사회는 다수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다수가 확실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감세 정책을 주장하는 보수당에 투표하는 것을 보면 꼭 다수결의 원칙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소수에 불과한 장애인은 배척되고 무시당하기 일쑤이다.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의 표를 얻지 않아도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데 별문제가 없으니 그들은 장애인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이다. 장애인 단체가 출근길 지하철에서 시위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제발 내 말을 들어 달라는 절박한 호소이다. 비장애인에게는 출근길의 불편함에 불과하지만, 장애인에게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니 그들은 욕을 먹더라도 출근길 지하철에서 시위를 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다수결의 원칙으로 인하여 작동된다고 하더라도 과연 소수자를 무시하고 배척해야만 할까?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라면 소수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논의를 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야만 한다. 지하철에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설치는 하는 것은 장애인에게는 꼭 필요한 조치이다. 그들도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일터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하지 않겠는가? '베놈'에 이은 SSU(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의 두 번째 안티 히어로 '모비우스'를 보고 나니 집 근처에 작은 가게를 얻을 수밖에 없었던 친구의 장애인 형이 떠올랐다.

두 소수자의 싸움

[모비우스]는 기본적으로 소수자의 이야기이다. 영화는 희귀 혈액병을 앓고 있는 어린 마이클 모비우스와 록시아 크라운을 보여 준다. 이 두 아이는 에밀 니콜스(자레드 해리스) 박사의 도움이 없다면 한시도 살아갈 수가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병원 밖은 다수자인 건강한 아이들의 위협이 도사라는 위험한 공간이다. 그들도 알고 있다. 결코 승산이 없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마이클은 록시아에게 '등하교 시간에는 병원 밖에 나가지 마.'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마이클의 편지가 병원 창밖으로 날아가 버리고, 록시아는 소중한 편지를 되찾기 위해 결국 병원 밖으로 나가게 된다. 그리고 편지를 빼앗아 록시아를 놀리는 건강한 아이들과 싸움을 벌인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록시아를 상대로 여러 명의 건강한 아이들이 단체로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냉혹한 사회에서 소수자가 겪어야 하는 일상적인 일이다. 다수자인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소수자에게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육체적, 언어적 폭력을 행사하여오지 않았던가.

성인이 된 마이클(자레드 레토)은 자신과 록시아가 앓고 있는 희귀 혈액병의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는다. 희귀 혈액병은 이름 그대로 희귀한 병이다. 병 자체가 소수자인 것이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이 병을 앓고 있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돈을 들여 치료제 개발에 힘쓸 것이다.(코로나19 치료제가 그랬듯이) 하지만 극소수의 사람들이 앓는 병이라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치료제 개발에 돈은 많이 들어가는데 환자가 많지 않으니 그렇게 개발된 치료제로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별로 없을 테니까. 그러니 병에 걸린 당사자인 록시아(맷 스미스)의 재정적 지원 아래 마이클이 직접 치료제 개발에 매달리는 것이다. 치료제를 개발한다면 마이클도, 록시아도 더 이상 소수자가 아닌 다수자에 편입될 수 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마이클은 다소 위험한 방법까지 동원한다.

코스타리카에 서식하는 흡혈박쥐를 이용한 마이클의 실험은 실패를 하고 만다. 마이클이 원했던 것은 희귀 혈액병을 치료하여 평범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마이클은 인간의 피를 갈구하게 되는 뱀파이어가 된다. 희귀 혈액병 환자였을 때보다 더욱 소수자가 되어 버린 것. 그런데 오히려 록시아는 이 실패작을 반긴다. 뱀파이어는 소수자이지만 오히려 다수자를 압도할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자가 다수자보다 힘이 강해지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민주주의 원칙은 무너지고, 소수자를 위해 다수자의 희생이 억지로 강요되는 독재의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모비우스]는 다수자에 편입되고자 했던 마이클과 다수자보다 강력한 힘을 얻어 다수자에 군림하고자 했던 록시아, 두 소수자의 싸움이 된다.

록시아는 매력적인 빌런이 될 수도 있었다.

자! 여기에서 우리가 한가지 생각해봐야할 것은 왜 록시아가 빌런이 되는 과정이다. [모비우스]의 러닝타임은 1시간 44분으로 최근 슈퍼 히어로 영화들 중에서는 짧은 편이고, 영화 자체가 마이클을 중심으로 진행이 되기 때문에 록시아는 자신의 캐릭터를 펼칠 기회도 제대로 얻지 못하고 그저 평범한 미치광이 빌런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내게 [모비우스]의 가장 아쉬운 부분을 한가지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당연코 록시아의 캐릭터를 좀 더 세밀하게 구축하지 못한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실 다수자에 편입하려는 마이클보다는 다수자 위에 군림하려는 록시아의 욕망이 더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권력 지향적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록시아의 욕망은 어쩌면 지극히 본능적이라 할 수 있다.

처음 마이클과 록시아의 첫 대면부터 되짚어 보자. 병원 터줏대감인 마이클에게 에밀은 새 환자인 록시아를 데려온다. 마이클에게 록시아를 잘 대해주라고 신신당부하는 에밀. 하지만 마이클은 록시아라는 이름 대신 마일로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사실 마일로는 마이클의 첫 병상 동료였다. 그러나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했고, 그 이후부터 마이클은 자신의 옆자리 병상 동료를 모두 마일로라고 부른다. 그것은 새로운 병상 동료에게 정을 주지 않겠다는 마이클의 결심임과 동시에 새로운 병상 동료에게 '어차피 넌 마일로처럼 곧 죽을 거야.'라고 경고하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곧이어 록시아의 혈액 투입 기기가 고장이 나고, 마이클이 기지를 발휘하여 록시아의 기기를 고침으로써 록시아를 구해낸다. 록시아에게 마이클은 생명의 은인이다. 그렇기에 그가 자신을 마일로라고 부르는 것을 받아들인다. 영화 후반부 '내게 이름을 준 것도 바로 너잖아.'라는 록시아의 절규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록시아에게 마이클은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마이클이 에밀의 추천으로 영재 학교에 입학했을 때 록시아의 심정은 어땠을까? 자신에게 있어서 세상의 전부와도 같은 마이클을 빼앗아간 에밀을 원망했을 것이다. 영화 후반부 록시아가 에밀을 망설임 없이 죽인 이유도 그러한 25년 전의 원망이 되살아났기 때문일 것이다. 마이클이 남기고 간 편지를 되찾기 위해 여러 명의 건강한 아이들과 싸움을 벌이는 록시아의 모습에서 마이클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다. 그런 마이클이 뱀파이어가 되었다. 마이클은 이것을 저주라고 했지만 마이클처럼 되고 싶었던 록시아에게 그것은 기회이다. '우리는 다수에 대항하는 소수야.'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밝힌 록시아. 우리가 소수자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한다면 현실에서도 록시아와 같은 빌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시사적인 캐릭터이다.


'모비우스'의 매력 어필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한다.

'스파이더맨'의 빌런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구축하는 SSU의 원대한 목표가 발표되었을 때 나는 꽤 많은 기대를 했다. 특히 SSU의 첫 주자로 '베놈'이 출격했을 때는 나의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베놈'은 15년 전, 소니가 샘 레이미 감독에게 억지를 부려서까지 [스파이더맨 3]에 포함시키고 싶어 했던 매력적인 빌런이었다. 비록 '베놈'의 영화 데뷔는 실패작이 되었지만, 소니는 기어코 '베놈'을 다시 스크린으로 불러들였고, 2018년 [베놈]에 이어 2021년 [베놈 2 : 렛 데어 비 카니지]가 개봉하며 '베놈'을 통해 성공적으로 SSU를 안착시켰다. 그리고 소니는 '베놈'에 이은 두 번째 주자로 '모비우스'를 출격시켰다.

문제는 '베놈'과는 달리 '모비우스'는 그렇게 유명한 빌런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뱀파이어라는 '모비우스'의 포지션은 웨슬리 스나입스를 주연으로 내세워 1998년부터 2004년까지 3부작으로 완성된 [블레이드]와 겹치기까지 한다. MCU에서 마허샬라 알리를 캐스팅하여 '블레이드'를 리부트 하기로 결정된 마당에 비슷한 뱀파이어 안티 히어로 '모비우스'의 등장이라니... 뭔가 미심쩍기까지 했다. 그래서일까? [모비우스]는 욕심을 낸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조커를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자레드 레토를 캐스팅한 것은 신의 한 수이다. 아직 스타급 배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연기력 만큼은 확실한 배우이기 때문이다.

자레드 레토에게 고뇌하는 뱀파이어 '모비우스'의 옷을 입힌 소니는 [모비우스]를 통해 관객에게 '모비우스'의 캐릭터 매력 어필에 최선을 다한다. 마이클에게 매력적인 동료이자 연인 마틴 밴크로프트(아드리아 아르호나)를 안겨주고,(매력적인 캐릭터에게 사랑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피에 대한 갈망을 느끼는 마이클이 절대 선을 넘지 않도록 배려한다. 그럼으로써 '모비우스'는 외형적으로는 안티 히어로이지만, 영화 자체만 놓고 본다면 일반적인 슈퍼 히어로의 역할을 한다. 안티 히어로에 대한 관객의 거부감을 최소화 시키기 위한 조치인 듯하다. ('베놈'이 선과 악의 경계를 살짝 넘었던 것과는 비교가 된다.) 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인지도가 낮은 '모비우스'의 매력을 관객에게 최대한을 어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두 개의 쿠키 영상이 이 영화의 목적을 말해준다. (결말 스포 포함)

[모비우스]가 실망스럽다고? 당연히 그럴 것이다. 영화 자체의 만듦새보다는 '모비우스'라는 새로운 캐릭터의 매력을 어필하는데 모든 러닝타임을 할애했으니까. 소수자라는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마이클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수자에 대항하려 했던 록시아는 거의 내팽개쳐졌다. 록시아가 마이클에게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것은 죽임을 당하는 마지막 순간뿐이다. [모비우스]가 만약 마이클과 록시아를 동등하게 대우해 줬다면, 그래서 록시아의 절박함에 좀 더 귀를 기울여 줬다면 [모비우스]의 만듦새는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다니엘 에스피노사 감독은 어떻게든 '모비우스'의 매력을 어필해서 성공적으로 SSU에 안착시키는 것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러니 마이클과 록시아의 마지막 대결이 그렇게 얼렁뚱땅 끝이 나버리는 것이다.

마이클이 난데없이 흡혈박쥐들을 불러들여 록시아를 처치하고 영화는 끝난다. 난데없는 장면은 또 있다. 록시아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마이클에게 자신의 피를 선사하며 자신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던 마틴이 죽지 않고 눈을 뜨는 장면이다. 마틴의 죽음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마이클의 연인으로서 마틴은 좀 더 활용 가치가 있는 캐릭터이니까. 그런데 역시나 영화는 마틴을 그대로 내버릴 생각이 없었다. 그러한 설정이 말이 안 되고, 난데없고, 뜬금없더라도 상관없다는 듯이 마틴을 되살려 놓고 영화를 끝낸다. 정말 정말 소니도, 다니엘 에스피노사 감독도, [모비우스]의 만듦새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따위로 영화를 끝내버리지. 어찌 보면 참 뻔뻔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비우스]에는 두 개의 쿠키 영상이 존재한다. 첫 번째 쿠키 영상은 [스파이더맨 : 홈커밍]의 메인 빌런 아드리안 툼즈(마이클 키튼)가 차원을 넘어 SSU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것, 두 번째 쿠키 영상은 벌처로 변한 아드리안 툼즈가 '모비우스'와 만나 팀을 이루자고 제의하는 장면이다. 솔직히 이러한 쿠키 영상도 뜬금없다. 물론 [베놈 2 : 렛 데어 비 카니지]의 쿠키 영상에서 이미 떡밥을 던져 놓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다른 차원에 있는 벌처를 소환할 줄은 몰랐다. 소니의 조급함이 엿보인다. 어쩌면 [모비우스]는 바로 이 뜬금없는 쿠키 영상을 위해 제작된 1시간 44분짜리 예고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비우스] 영화 자체에 대한 아쉬움은 많이 남지만, 앞으로 SSU를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라면 아쉬움은 꾹 참고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왜 [모비우스]를 보고 나니 SSU에 대한 기대감이 살짝 덜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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