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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배트맨] - 오랜 세월 변화를 거듭한 '배트맨'. 이번엔 SF와 누아르 사이의 그 어디쯤에 안착하다.
13  쭈니 2022.03.03 17:48:39
조회 152 댓글 0 신고

감독 : 맷 리브스

주연 : 로버트 패틴슨, 폴 다노, 조 크라비츠, 앤디 서키스, 제프리 라이트

'배트맨'에 대한 내 애정의 역사

'배트맨'에 대한 나의 애정은 뿌리가 깊다.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슈퍼 히어로 영화의 첫 출발은 누가 뭐래도 '슈퍼맨'이다. 하지만 '슈퍼맨'이 개봉할 당시는 나는 너무 어렸고, 아직 영화의 매력에 푹 빠지기 전이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영화광의 길에 접어든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집에 처음으로 비디오비젼(TV와 비디오 플레이 일체형)이 생기면서 부터였다. 1988년의 일이다. 그리고 때마침 1990년에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이 개봉했다. [배트맨]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은 '경이롭다'였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재미를 처음 온몸으로 느낀 것이다. 그리고 1992년 개봉한 [배트맨] 2]에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날 이후 팀 버튼 감독의 나의 최애 감독이 되었고, [배트맨]에서 '캣우먼'을 연기한 미셸 파이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 여배우로 등극하였다.

나는 아직도 조엘 슈마허 감독을 싫어한다. 조엘 슈마허 감독은 팀 버튼에게 '배트맨'의 바통을 이어 받은 감독이다. 하지만 그가 발 킬머를 기용해서 만든 [배트맨 포에버], 조지 클루니로 바꾼 [배트맨과 로빈]은 너무나도 실망스러웠고, 1997년 뒤늦게 개봉한 [폴링 다운]에서 한인 비하 장면이 논란이 되면서 조엘 슈마허 감독은 내게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혀 버렸다. 하지만 '배트맨'은 이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할리우드의 천재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최고의 연기파 배우 크리스찬 베일에게 '배트맨'의 가면을 씌운 '다크 나이트 3부작'으로 '배트맨'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나는 진정으로 잭 니콜슨의 조커보다 더 강력한 조커를 상상조차 못했다. 그런데 히스 레저는 그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다크 나이트]에서 해냈다.

마블의 MCU가 전 세계 극장가를 휘어잡자 마블의 경쟁사인 DC도 자사의 슈퍼 히어로들을 따로 모아 DCEU를 만들어 냈다. 당연히 DC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배트맨'도 DCEU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벤 애플렉의 '배트맨'은 생ㄱ가보다 매력적이지 않았다. 특히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보여줬던 그 실망스러운 모습은 새로운 '배트맨'에 대한 기대를 반감시켰다. 이에 DC도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애초에 벤 애플렉 주연의 '배트맨' 솔로 영화를 기획했었지만 계획을 엎어 버리고, 맷 리브스 감독, 로버트 패틴슨으로 변경하여 DCEU와는 별개의 영화로 [더 배트맨]을 탄생시킨 것이다.

누아르 영화로 돌아오다.

솔직히 [더 배트맨]이 DCEU와 별개의 영화인 줄은 나중에 알았다. 나는 당연히 [더 배트맨]도 DCEU에 속한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이 영화는 그 어디에서도 DCEU의 아주 작은 흔적도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DCEU가 이미 폐기처분된 줄 알았던 잭 스나이더의 어두운 분위기를 다시 계승하려고 그러나?'라는 의문만 들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SF 장르일 수밖에 없었던 DCEU의 슈퍼 히어로 영화들과는 달리 [더 배트맨]은 SF 영화라고 하기엔 상당히 애매했다. 오히려 이 영화의 장르를 하나만 특정한다면 누아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미국 누아르 영화의 대표로 인식되는 영화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차이나타운]이다. 사립 탐정인 제이크 기티스(잭 니콜슨)가 어느 날 남편을 감시해달라는 한 여성의 의뢰를 받으며 추악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차이나타운]은 기본적으로 추리극을 표방하고 있지만, 선량한 얼굴 뒤에 숨겨진 더러운 비밀을 통해 인간 내면의 추악함을 관객에게 적나라하게 까발려버린 영화이다. 학창 시절 TV 앞에 쭈그리고 앉아 [차이나타운]에서 추악한 비밀들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충격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던 기억이 난다. 확실히 [차이나타운]은 [더 배트맨]과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영화이지만 누군가 내게 [더 배트맨]과 가장 비슷한 영화를 한 편만 꼽으라고 요청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차이나타운]을 선택할 것이다.

[차이나타운]과 [더 배트맨]의 공통점은 추리극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충격적인 죽음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브루스 웨인(로버트 패틴슨)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회사는 나 몰라라 하고 밤마다 '배트맨'이 되어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악을 처단한다. 그는 그것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고담의 시장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스스로를 리들러(폴 다노)라고 칭하며 '배트맨'에게 도전한다. '배트맨'은 리틀러가 남긴 단서들을 쫓겨 되고, 그 끝에서는 자신의 아버지까지 연관된 고담의 추악한 진실이 있었다. 이렇듯 [더 배트맨]은 추리극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인간 내면의 추악함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리들러, 펭귄맨, 그리고 캣우먼까지 나오는데?

[더 배트맨]를 포함하면 무려 여덟 편이 '배트맨' 단독 영화를 봤고, DCEU까지 포함한다면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 [저스티스 리그]까지 포함시켜 열 편의 '배트맨' 영화를 봤다. 그 사이 마이클 키튼, 발 킬머, 조지 클루니, 크리스찬 베일, 벤 애플렉 그리고 로버트 패틴슨까지 여섯 명의 '배트맨'을 만났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더 배트맨]은 특별히 더 낯설다. 조엘 슈마허 감독이 망쳐 버리 발 킬머와 조지 클루니의 '배트맨'은 열외로 치더라도 '배트맨'의 분위기는 캐릭터의 성격상 어두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배트맨] 이전의 영화들은 SF적 요소를 영화 속에 잘 녹여 놓았다. 어찌 되었건 '배트맨'의 정체성은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슈퍼 히어로이니까. 그러나 맷 리브스 감독과 로버트 패틴슨은 그러한 '배트맨'의 정체성을 아예 부정해 버린다. 이건 그저 추악한 진실을 파헤치는 사립탐정에게 '배트맨' 가면을 씌운 누아르 영화라고 주장한다. 그러한 주장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면 영화 속의 빌런들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더 배트맨]에 등장하는 빌런은 총 네 명이다. 그중 마피아 보스인 팔코네(존 터투로)를 제외한다면 모두 이전 '배트맨' 영화에서 한 번 이상 등장했던 캐릭터이다. [더 배트맨]의 메인 빌런인 리들러의 경우는 [배트맨 포에버]에서 녹색 쫄쫄이 의상에 빨간 머리를 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배트맨'에게 시답지 않은 수수께끼를 내던 짐 캐리의 리들러와 비교해 보면 얼마나 극과 극의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음... 조엘 슈마허 감독의 '배트맨'을 열외로 한다고 해도 크게 달리질 것은 없다.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2]에서 대니 드비토의 기괴한 연기로 사랑을 받았던 펭귄맨을 보자. 어렸을 적에 하수구에 버려졌던 펭귄맨의 기구한 사연과는 달리 [더 배트맨]의 펭귄맨(콜린 파렐)은 그저 얼굴에 흉터가 있는 팔코네의 부하일 뿐이다. SF 영화보다 갱스터 영화에 더 어울리는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트맨'의 빌런 캣우먼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캣우먼'은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2],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나왔을 정도로 '배트맨' 영화에서 사랑받는 빌런이다. 미셀 파이퍼와 앤 해서웨이라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미국 여배우에 의해 섹시하지만 위험한 팜 파탈 캐릭터의 전형으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더 배트맨]의 캣우먼(조 크라비츠)는 그저 상처받고 분노한 여성일 뿐이다. [더 배트맨]은 '배트맨' 뿐만 아니라 빌런 캐릭터까지도 현실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누아르 속 '배트맨'이 이루고자 했던 것

그렇다면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왜 맷 리브스 감독은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더 배트맨]은 애초에 벤 애플렉이 감독, 주연, 각본을 맡아 DCEU의 일환으로 3부작이 기획되었다고 한다. 벤 애플렉은 우리에게 배우로 익숙하지만, 2007년 [가라, 아이야, 가라]로 데뷔, [타운]을 거쳐 [아르고]로 2013년 제85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유능한 감독이기도 하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벤 애플렉이 하차하면서 3부작 기획은 완전히 엎어져 버렸다. 그리고 등장한 것이 맷 리브스 감독의 [더 배트맨]이다. 맷 리브스 감독은 [더 배트맨]이 DCEU와는 별개의 영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워너 브라더스는 이를 받아들였다. 도대체 왜? DCEU 편입을 포기하면서까지 워너 브라더스는 벤 애플렉의 [더 배트맨]이 아닌 맷 리브스의 [더 배트맨]을 선택한 것일까?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벤 애플렉 감독의 [더 배트맨]이 너무 형편없었던가, 맷 리브스 감독의 [더 배트맨]이 너무 완벽했던가. 일단 벤 애플렉 감독의 [더 배트맨]이 형편없었을 것 같지는 않다. 벤 애플렉 감독의 역량과 팬들의 기대를 감안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하나이다. 맷 리브스 감독의 [더 배트맨]이 워너 브라더스가 추구하는 '배트맨'의 미래와 맞아떨어진 것은 아닐까? 이미 조엘 슈마허 감독이 '배트맨' 영화를 통해 밝고 명랑한 총천연색의 화려한 '배트맨' 영화를 관객이 싫어한다는 사실을 비싼 수업료를 내고 알아낸 워너 브라더스는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보다 더 암울하고, 우울하고, 어두운 '배트맨'을 원한 것 같다. 그 결과가 SF적 요소를 쫙 뺀 누아르 '배트맨'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브루스 웨인의 트라우마는 그 어떤 '배트맨'보다 더 격렬했다. 알프레드(앤디 서키스)에 징징거리는 것을 보면 브루스 웨인은 트라우마 때문에 중2병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이 영화에서 '배트맨'은 슈퍼 히어로도 아니다. 그저 가면을 쓴 자경단에 불과하다. 그의 활약은 제임스 고든(제프리 라이트)에게만 인정을 받을 뿐, 다른 경찰들은 '배트맨'을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볼 뿐이다. 리들러가 '배트맨'을 안내한 과거의 비밀은 브루스 웨인의 추악한 가족사와 고담의 뒷골목 비리와 얽혀 있다. 재개발이라는 허울 속에 숨겨진 고담 기득권의 검은 거래. 이 모든 원죄는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인 토머스 웨인에게 있다. 이제 '배트맨'은 선택을 해야 한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해 악당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를 극복하고 영웅이 될 것인가? [더 배트맨]은 결국 추악한 가족사 위에 서있는 브루스 웨인의 선택에 집중한다.

거짓의 도시 고담. 그 위에 우뚝 선 거짓의 영웅 '배트맨'

솔직히 이러한 '배트맨'의 변신은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관객은 '배트맨'에게서 화려한 액션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스펙터클을 기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맷 리브스 감독은 그러한 것에 관심이 없다는 듯 누아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한 청년이 진실에 눈을 뜨는 과정을 그릴 뿐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악의 도시 고담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어두운 뒷면을 비춘다. 화려해 보이지만 결국 기득권의 이익 속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시민들의 희생은 당연시되는 곳. 그곳에서 고아였던 에드워드 내쉬튼은 스스로 리들러가 되어 '배트맨'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굳게 믿고 있는 정의는 과연 진실이 맞냐고.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고담의 악을 처치하기 위해 스스로 '나는 복수다'라며 자신을 소개했던 '배트맨'은 리들러가 파헤친 진실 앞에서 복수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만다.

새로웠다. 이러한 새로움은 팀 버튼의 [배트맨]을 볼 때 처음 느꼈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를 봤을 때 두 번째로 느꼈다. 맷 리브스 감독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두 거장이 이룩해 놓은 '배트맨'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훨씬 새로워야 한다는 사실을. 관객의 기대감을 무너트리더라도 그는 새로움을 선택했고, [더 배트맨]은 그의 모험 가득한 선택대로 충분히 새로웠다. 관객의 반응은 기대했던 것이 무너졌을 때 느끼는 불쾌함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펼쳐졌을 때의 흥미로움으로 나뉠 수밖에 없었는데, 일단 나는 후자에 속한다. 어찌 되었던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도 1편인 [배트맨]보다는 2편인 [배트맨 2]가 좋았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도 1편인 [배트맨 비긴즈]보다는 2편인 [다크 나이트]가 훨씬 좋았다. 최소한 [더 배트맨]도 2편을 기대해 볼만 이유가 충분하다.

일단 리들러가 투옥된 감옥에서 리들러에게 말을 거는 죄수는 조커인 듯하다. 이미 팀 버튼 감독의 조커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조커가 연일 최고 빌런을 갱신하고 있는 가운데 맷 리브스가 조커의 등장을 예고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도전이다. 팔코네가 죽은 가운데 그의 자리는 펭귄맨이 대신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2편에서는 리들러와 펭귄맨이 건재한 가운데 '배트맨' 최악의 숙적인 조커가 새롭게 합류할 것이다. 캣우먼은 '배트맨'에게 블러드 헤이븐으로 떠나겠다고 통보를 한다. 블러드 헤이븐은 '배트맨'의 사이드킥인 나이트윙의 주요 활약 무대라고 하니 2편에서 캣우먼이 나이트윙과 함께 고담으로 돌아와 '배트맨'과 팀을 이룬다면 충분히 1편을 뛰어넘는 재미를 이루어낼 수 있지 않을까? 무려 2시간 56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전혀 새로운 '배트맨'의 탄생을 지켜보고 나니 '배트맨'의 변신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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