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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 놀라운 것은 이 엄청난 이야기가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13  쭈니 2021.10.22 16:39:28
조회 178 댓글 0 신고

감독 : 드니 빌뇌브

주연 : 티모시 샬라메, 레베카 퍼거슨, 오스카 아이삭

백신 휴가 날의 유일한 성과

지난 화요일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마쳤다. 언제 내 차례가 오나 조마조마하며 기다렸는데, 이제 백신을 맞았으니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백신 2차 접종이 반가웠던 또 다른 이유는 접종 다음날 회사에서 부여한 백신 휴가 때문이다. 이미 백신 1차 접종 때에도 아무런 후유증이 없이 꿀맛 같은 백신 휴가를 만끽했기에, 이번 2차 접종에 의한 백신 휴가 때에도 뭐 하며 놀까 계획을 세우느라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일단 극장에서 [듄]과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를 보기로 결심했다. [듄]의 러닝타임이 2시간 35분,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의 러닝타임이 2시간 32분임을 감안한다면 두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금방 지나갈 것이다. 기대작인 두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들뜬 기분으로 백신 휴가 날 아침을 맞이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전에 [듄]을 본 것으로 나의 백신 휴가는 끝이 났다. 오후가 되자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기 시작해서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관람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에 집에서 영화 [아이스 로드]를 보기는 했지만 두통 때문에 제대로 영화를 볼 수가 없었고, 결국 타이레놀을 챙겨 먹고 기나긴 낮잠으로 백신 휴가를 보내고 말았다. 끔찍한 두통은 백신 휴가 다음날도 이어졌다. 연차 휴가를 하루 더 낼까 고민을 했지만 결국 출근을 해야 했고, 쉴 시간도 없이 바쁘게 회사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통도 사라져 버렸다. 백신 후유증도 날려 버리는 직딩의 생존 본능이랄까.

백신 후유증으로 비록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 영화는 다음 주에 꼭 챙겨 볼 예정이다.) [듄]을 본 것만으로도 나의 백신 휴가는 보람찼다. 그만큼 [듄]은 내게 기대 이상의 영화였다. 1965년 발표된 미국 작가 프랭크 하버의 스페이스 오페라 <듄>에 대한 명성은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와 더불어 <듄>을 영화화한 1984년 [사구]에 대한 데이빗 린치 감독의 굴욕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겐 드니 빌뇌브 감독이 야심 차게 도전한 [듄]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하지만 [컨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를 통해 SF 영화에 대한 능력을 인정받은 드니 빌뇌브 감독은 우려를 종식시키고, 2편에 대한 기대로 가득 채웠다. 이제 20년 전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를 본 후 기다림의 설렘을 느꼈듯, [듄]의 후속편에 대한 기다림의 설렘을 만끽할 차례가 온 것이다.

영화에서 생략된 [듄]의 세계관

과학소설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휴고상과 네블러상을 석권한 <듄>은 영화화가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악명을 떨쳤다. 1984년 데이빗 린치 감독이 영화화에 도전했지만 방대한 원작을 2시간 16분의 러닝타임에 날림으로 욱여넣는 바람에 개봉 당시 혹독한 혹평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이다. 비록 드니 빌뇌브 감독은 2시간 35분이라는 데이빗 린치 감독보다 넉넉한 러닝타임을 확보했고, 3부작으로 기획되며 방대한 원작을 한 편의 영화 안에 욱여넣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압박감에서 해방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모든 것을 영화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는데, 놀랍게도 드니 빌뇌브 감독의 선택은 세계관의 생략이다.

영화는 우주력 10,191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거대한 사막으로 이루어진 죽음의 행성 아라키스와 아라키스에서만 생산되는 스파이스라는 물질, 그리고 아라키스의 원주민인 프레멘과 아라키스에서 스파이스를 독점적으로 생산하며 부와 권력을 얻은 하코넨 가문의 대립을 소개한다. 하지만 황제의 명으로 하코넨 가문은 아라키스에서 철수를 하게 되고, 스파이스 생산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에게 맡겨진다. [듄]은 이렇게 아라키스를 사이에 둔 하코넨 가문과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대립으로부터 영화를 시작한다. 얼핏 보면 하코넨 가문이 오랜 세월 독점해온 스파이스 생산을 아트레이데스 가문에게 빼앗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막강한 군사력을 질투한 황제의 음모이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외부와의 통신이 불가능한 아라키스에서 스파이스 생산을 빼앗겼다는 명분을 확보한 하코넨 가문의 공격에 대비해야 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스파이스라는 물질이 그토록 중요한 걸까? 영화에서는 우주 항해를 위해 스파이스가 필수적이라는 설명뿐이다. 황제가 왜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멸문지화 시키려 하는지,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하코넨 가문은 어떤 악연으로 얽혀 있는지, 의문의 집단인 베네 게세리트는 왜 제시카(레베카 퍼거슨)를 아트레이데스 가문에 출가시켜 폴(티모시 샬라메)을 태어나게 했는지, 영화에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그렇기에 한 편으로 [듄]은 굉장히 불친절한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하코넨 가문의 전쟁이라는 대립 구도 아래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장자인 폴이 영웅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단선적인 스토리 라인으로 [듄]을 받아들인다면 큰 무리가 없다. 대신 앞서 제기된 의문들은 후속편에서 차츰 풀어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을 버리면 안 될 것이다.

폴 아트레이데스의 영웅으로서의 성장담?

사실 [듄]을 그저 단순하게 폴의 영웅으로서의 성장담으로 이해한다면 영화가 너무 단순해져 버린다. 1984년 데이빗 린치 감독의 [사구]가 혹평을 받으며 흥행에 참패를 했던 이유도 원작을 과도하게 축약하며 결국엔 폴의 영웅으로서의 성장담이라는 단순한 스토리 라인으로 영화를 진행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드니 빌뇌브 감독도 데이빗 린치 감독과 비슷한 함정에 빠져 버린 것일까? 그렇게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 영화가 단순하게 폴의 영웅으로서의 성장담은 아니라는 함축적인 암시를 영화 곳곳에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폴은 꿈을 꾼다. 그 꿈속에서 아라키스 행성의 원주민인 프레멘의 한 여성과 만난다. 폴의 꿈은 일종의 예지몽인데 폴의 어머니인 제시카가 일종의 비밀 결사대인 베네 게세리트의 일원이기에 그 능력을 물려받은 것이다. 폴이 아버지인 레토(오스카 아이삭) 공작을 따라 아라키스로 떠나기 전, 제시카가 한밤중에 은밀하게 폴과 베네 게세리트의 수장인 가이우스 헬렌 모히암(샬럿 램플링)과 만남을 주선한다. 이 자리에서 가이우스 헬렌 모히암은 폴을 시험하는데, 폴은 이 시험에 합격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황제의 보좌관인 가이우스 헬렌 모히암은 황제가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몰살시키려는 계획을 미리 알고 하코넨 가문의 수장인 블라디미르(스텔란 스카스가드) 남작과 거래를 한다. 레토 공작을 죽이더라도 제시카와 폴은 살려 두라는... 그럼으로써 폴이 베네 게세리트의 일원임을 인정한 것이다.

[듄]의 모호함은 바로 베네 게세리트에게서 비롯된다. 폴은 제시카의 능력을 물려받아 예지몽을 꾸고, 목소리로 타인을 복종시킬 수도 있다. 물론 아직 그의 능력은 완벽하지 않아 훈련이 필요하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프레멘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리산 알 카이브)를 기다리고 있는데, 폴이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라고 믿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프레멘의 신앙은 아주 오래전, 베네 게세리트가 심어 놓은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모든 것은 베네 게세리트의 계획 아래 오래전부터 준비된 것이고, 대대로 여성으로 이루어진 베네 게세리트는 남성인 폴의 존재가 못마땅하지만 결국 폴을 베네 게세리트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과연 폴을 이용한 베네 게세리트의 오랜 계획은 무엇일까? 영화 후반, 폴은 자신 때문에 종교 전쟁이 일어나는 예지몽을 꾼다. 어쩌면 그 예지몽에서 베네 게세리트의 계획에 대한 답이 숨어있는지도 모르겠다.

프레멘이 막강한 이유

확실한 것은 베네 게세리트는 폴을 이용해서 황제를 중심으로 한 우주의 지배 구조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황제의 호위 군대인 사다우카에 대적할 수 있는 강력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종족이 바로 프레멘이다. 프레멘이 황제의 대항마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오랫동안 아라키스를 지배한 하코넨 가문조차 프레멘을 과소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토 공작은 알고 있었다. 아라키스에는 황제조차 파악하지 못한 수많은 프레멘이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으며, 극한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그들의 전투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하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레토 공작은 프레멘을 억압한 하코넨 가문과는 달리 자신의 수하인 던칸 아이다호(제이슨 모모아)를 선발대로 보내 프레멘과 접촉하게 했고, 프레멘의 수장인 스틸가(하비에르 바르뎀)와 평화 협정을 맺는다. 아쉽게도 하코넨 가문이 내부의 배신을 이용해서 예상보다 빨리 아라키스를 공격하는 바람에 프레멘과 손을 잡는다는 레토 공작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말이다.

프레멘이 강한 또 다른 이유는 스파이스에 있다. 영화에서는 스파이스가 단순히 우주 항해에 필수적인 물질이라고 소개하지만 프레멘에게 스파이스는 수명 연장과 각성 효과를 주는 물질이다. 영화를 보면서 [듄]의 세계관이 중동의 석유 전쟁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모래로 뒤덮인 아라키스를 중동으로, 아라키스에서만 생산되는 스파이스를 중동의 석유로 비유하면 될 것이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 석유의 중요성이 절대적이라면 [듄]의 세계관에서 스파이스가 차지하는 중요도 또한 석유와 맞먹는다. 지금은 비록 프레멘이 뿔뿔이 흩어져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그들을 한데 뭉칠 지도자가 등장한다면 프레멘은 제국의 황제조차 어쩌지 못하는 막강한 세력이 될 것이다. 베네 게세리트는 폴을 프레멘의 지도자로 등극시킬 계획을 오랫동안 세운 셈이다.

프레멘의 강력함은 무시무시한 모래 벌레에서도 알 수 있다. 스파이스를 채취하는 거대한 장비조차도 단숨에 집어삼켜 버리는 모래 벌레의 위력은 [듄]의 특별한 볼거리이다. 프레멘이면서 제국의 신하이기도 한 리에트 카인즈(샤론 던컨 브루스터)는 제시카와 폴을 안전한 곳으로 탈출시킨다. 그로 인하여 리에트는 사다우카의 공격을 받게 되지만 결국 사다우카와 함께 모래 벌레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죽은 줄 알았던 리에트가 모래 벌레를 타고 나타난다. 이는 리에트가 그 무시무시한 모래 벌레를 길들였다는 것을 뜻하는데, 모래 벌레가 프레멘의 편이라면 최소한 아라키스에서 프레멘을 당할 조직은 없다. 이거 해볼 만한 전쟁이다.

원작을 사서 읽어봐야 할까?

2시간 3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게다가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다음날이라 컨디션이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굉장히 짧게 느껴졌다. 오히려 영화가 끝나고 조금 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폴은 아라키스에 남아 프레멘과 생활하며 자신의 능력을 각성할 것이다. 그리고 예지몽에서 나타났던 프레맨 여성인 챠니(젠데이아)와의 로맨스도 펼쳐질 것이다. 폴이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 블라디미르 남작과 황제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아라키스로 총 공격을 해올 것이며, 조금은 싱겁게 끝난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하코넨 가문의 전쟁은 폴이 꾼 예지몽대로 거대한 종교 전쟁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라는 챠니의 한마디와 함께 영화가 끝이 나는데, 그 순간 어서 빨리 그다음 이야기가 보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느꼈다.

[듄]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화면이 너무 흐릿했다는 것이다. 메가박스 일반관에서 영화를 봤는데, 일반관에서는 [듄]의 거대함을 미처 잡아내지 못하더라. 특히 모래 벌레의 그 거대한 위용이 드러나는 장면은 흐릿한 화면 때문에 제대로 된 스펙터클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아직 [듄]을 보지 않았지만 앞으로 볼 계획이 있다면 일반관이 아닌 특별관에서 영화를 관람하기를 추천하고 싶다. (지금 심각하게 CGV IMAX관에서 [듄]을 다시 볼까 고민 중이다.)

지금 내가 고민하는 또 다른 것은 원작 소설 구매에 대한 것이다.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듄 전 6권 세트>의 정가가 무려 12만 원. 섣부르게 도전했다가는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값비싼 책장 장식품이 될 수도 있기에 조심스럽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리 드니 빌뇌브 감독이 뛰어난 감독이라고 할지라도 이 방대한 원작을 제대로 영화 속에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고 있는 중이다. 20년 전 [반지의 제왕 : 반지 원정대]를 본 후 곧바로 J.R.R. 톨킨의 원작 소설 <반지의 제왕 전 6권 세트>를 사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듄]은 20년 만에 나에게 지적 호기심을 다시 불러일으킨 영화인 셈이다. 그런데 원작 소설을 사려면 내 용돈으로는 턱도 없고... 아무래도 내 생일까지 기다렸다가 생일 선물로 아내에게 요구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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