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내 인생에 도전하다
미국에서 내 인생에 도전하다
어느 날 홈스테이 어머니가 방에 오셔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우리 집이 버턴(Burton)이라는 작은 마을로 이사 가게 되었어. 네가 함께 가게 된다면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는 다닐 수 없어. 거리가 멀어 집과 가까운 학교로 전학 가야 해. 프로그램 도중에 이사 가게 되어 정말 미안해. 네가 갑자기 학교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새로운 경험이라 생각하고 함께 가는 것이 어떻겠니? 집 주변의 학교도 좋아.”
이 말을 듣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많이 혼란스러웠다. 홈스테이 부모님을 따라 새로운 환경으로 전학 갈지, 주변의 다른 홈스테이를 찾아 지금의 학교를 계속 다닐지 결정해야 했다. 6개월 동안 힘들게 학교 시스템에 적응하고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이제 적응이 되어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즐기려 하는데 전학이라니. 나로선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 가족과 함께 하느냐, 새로운 홈스테이를 찾아 그대로 머물러 있느냐, 인생 최대의 결정을 해야 했다. 모험이었다.
결정이 힘든 가장 큰 요인은 친구를 다시 사귀는 일이었다. 당시 나의 영어 실력은 많이 부족했기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란 쉽지가 않았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실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생각을 하니 두렵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어간다 생각했다. 나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
이사한 집은 원래 살던 집보다 더 크고 좋았다. 동네와 학교는 조금 위험했지만, 반대로 학생들은 대부분 순수했다. 이사 온 마을의 학생들은 전에 다닌 학교의 학생들보다 착하고 좋았다. 덕분에 친구를 사귀기가 쉬웠다. 그 친구들에게 나는 아마 그들이 보는 첫 번째 외국인이었을 것이다. 전학을 오게 된 첫날, 나에게 말도 걸어주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학생들이 몇몇 있었다. 생각보다 친구를 사귀기가 쉬웠고,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모험은 성공적이었다.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치고 지난날을 돌아보니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힘들었던 일들이 나를 성장시켜줄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때는 그저 힘들었고, 집이 그리웠기에 하루하루 버텨내기 급급했다. 아픔의 시간이었다. 다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영어라곤 하나도 모르던 아이에게 한국인이 없는, 현지인들만 모여 사는 곳에서 적응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곳에서 내 자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알게 됐다. 한국에선 전혀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을 마주했다. 날이 갈수록 자신감과 자존감은 떨어졌다. 영어 실력 또한 빠르게 늘지 못해 더 힘들었다.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굉장히 슬프고도 아픈 일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인 자신이 자신을 믿지 못하고 용기를 주지 못하는 것만큼 슬프고도 힘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험으로 인해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중요하지만 놓쳐왔던 소중한 가치들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시절 내가 생각한 가장 소중한 가치는 사람이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고 또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어떤 곳이라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오후 2시 30분이면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났다. 축구부 훈련이 없는 날에는 오후 3시가 되면 집에 도착했다. 학교 친구들은 모두 멀리 떨어져 있어 따로 홈스테이 부모님이 차를 태워주지 않으면 만나서 놀 수가 없었다. 오후 3시부터 잘 때까지는 학교 숙제 외에 따로 할 것이 없어 매우 따분했다.
축구 시즌이 끝난 방과 후의 시간은 지루할 만큼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처음 몇 주 동안은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다.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TV를 본다거나, 책을 읽는 등의 학습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항상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SNS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그저 행복하고 자유로워 좋았다. 시간이 지나자 모든 것들이 싫증나기 시작했다. 시간을 너무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하며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지 고민하게 되었다.
고민 끝에 얻은 답은 첫 번째는 ‘논어’였다. 나는 논어 필사를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처음 논어 필사를 할 때는 논어의 구절들과 내 생각을 직접 노트에 적으며 필사했는데, 그때와 다른 방법으로 블로그에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논어 필사를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매일 하다 보니 필사 외에 다양한 생각들을 블로그에 남기게 되었다. 미국 유학을 통해 남긴 중요한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논어 필사’였다.
두 번째로 얻은 답은 ‘운동’이었다. 미국 유학 전 나의 몸은 심각할 정도로 마르고 힘이 없었다. 키 175cm에 49kg이었다. 평소 나는 내 마른 몸이 싫었다. 그래서 근육을 키우자고 마음먹었다. 미국의 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운동을 했고, 덩치가 컸다. 미국 친구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엄청난 자극이 되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고 석 달이 지나자 어깨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고 팔은 조금씩 두꺼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2017년 6월 방학을 맞아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 노력의 결실을 볼 수 있었다. 동대구역에 내려 마주한 첫 만남에서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몸이 왜 이렇게 좋아졌어? 멋지고 건강해보여!”
어머니의 그 말 한마디에 내 몸이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력의 달콤함을 맛보았다.
운동이든 무슨 일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나는 매일 밤 9시가 되면 팔굽혀펴기와 아령 운동을 했다. 6달 동안 하루도 빠진 적이 없었다. 운동하는 것을 즐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6개월 동안의 운동을 통해 느낀 점은 노력의 대가는 분명 있다는 것이다.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점점 빠르게 성장해 나간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자신감과 습관의 조합은 놀랍다. 운동 습관을 들이자 자신감이 붙었고, 한 번 할 때 확 해버리자는 의지까지 생겼다. 그 결과 6개월 만에 큰 변화를 경험했다.
블로그 논어 필사도 마찬가지였다. 필사 습관으로 자신감을 얻고, 블로그를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 블로그 논어 필사와 운동은, 나의 사고력과 자신감을 증진시켜준 중요한 경험이었다. 이 두 가지를 통해 낯설고 외로운 곳에서 몸과 마음 모두 강인해질 수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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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독서로 만난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3. 십대, 논어로 살아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