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day

마이 마니아

대중문화 마니아 리스트
이 세상 모든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영화를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닌,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
마니아 칼럼(대중문화) 즐겨찾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 이 모든 것은 결국 목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13  쭈니 2020.08.07 14:31:35
조회 304 댓글 0 신고

감독 : 홍원찬

주연 : 황정민, 이정재, 박정민

나에겐 확실한 목적이 있었다.

지난 월요일, 아내가 조금 늦게 퇴근한다고 연락이 왔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나는 최대한 빨리 퇴근하여 저녁밥 해놓고, 부슬부슬 내리는 장맛비에 어울리는 깻잎전도 만들어 놓고 아내를 기다렸다. 퇴근한 아내는 당연히 '웬일이야?'라며 깜짝 놀랐다. 그날 저녁 밥상은 내가 한 밥과 내가 만든 깻잎전으로 우리 가족의 배를 채웠다. 사실 내가 이런 행동을 한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개봉을 앞두고 있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아내와 함께 보기 위해서이다. 잔인한 영화를 싫어하는 아내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기피했지만 이미 내가 해준 밥과 깻잎전을 이미 먹은 후라 내 간절한 부탁을 완곡하게 거부하지는 못했다. 나의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내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혼자가 아닌 굳이 아내와 함께 보려 했던 이유는 메가박스의 오리지널 티켓 2세트를 모두 받기 위해서였다. 혼자 보면 1세트만 받을 테니까. 그리고 메가박스 20주년 기념 오리지널 골든티켓도 탐이 났다. 아내와 함께 본다면 오리지널 골든티켓을 두 개나 획득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해서 나의 치밀한 계획 아래 지난 1월 23일 [남산의 부장들]을 본 이후 무려 6개월하고 14일 만에 아내와의 극장 데이트가 성사되었다.

사람의 행동에는 목적이 뒤따른다. 그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하느냐에 따라서 행동에도 차이가 생긴다. 물론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러한 목적 없는 행동은 대부분 애초에 원했던 방향이 아닌 예상하지 못한 삐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인남(황정민)과 레이(이정재)가 그러하다. 인남에게는 확실한 목적이 있다. 그렇기에 그의 행동은 명확하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준비까지도 되어 있다. 레이에게도 죽은 형의 복수라는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인남을 쫓으며 그의 목적은 희미해졌고, 그저 인남을 죽여야 한다는 본능만 남아 버린다. 이렇게 목적이 있는 인남과 목적이 없는 레이의 대결. 그 결과는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목적 없는 삶을 살던 인남에게 주어진 마지막 목적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잔인한 일본 야쿠자 두목을 암살하는 인남의 청부살인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마지막 청부살인을 끝낸 인남은 모든 것을 정리하고 파나마에서 평화롭게 일생을 보낼 계획이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한국에서 연락이 온다. 태국에서 끔찍하게 살해된 영주(최희서)에 대한 소식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영주에게는 아홉 살 된 딸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인남의 8년 전 과거로 돌아간다. 국정원에서 암살 업무를 하던 특수 요원 인남은 정권이 바뀌고 정부로부터 버림을 받자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을 떠난다. 그때 인남에게 버림을 받은 영주는 이미 인남의 아기를 가진 이후였다. 영주의 시체 앞에서 인남은 생사조차 모르는 딸을 위해 파나마가 아닌 태국으로 향한다.

처음 인남의 모습은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것이었다. 그에겐 수년간의 청부살인으로 많은 돈을 모았지만 그 돈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인생의 목표 따위는 없었다. 그가 파나마를 선택한 이유도 술집 벽에 걸려있던 바닷가 사진 한 장이 전부이다. 만약 이때 레이가 인남을 찾아왔다면 어쩌면 인남과 레이의 승부는 싱겁게 끝났을지도 모른다. 레이에겐 복수라는 목적이 있었고, 인남에겐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인남에겐 목적이 생겼다. 처음엔 딸의 시신이라도 찾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태국에서 영주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일당들을 잡고 보니 딸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그의 목적은 더욱 강해졌다. 딸을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 이 간절한 목적은 인남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인남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많다. 아동 장기 매매를 일삼는 태국 갱단이 있고, 갱단을 보호하는 현지 경찰이 있으며, 인남을 쫓는 레이도 있다. 하지만 인남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딸을 구하겠다는 목적 하나뿐이다.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 따위도 어찌 되던 상관없다.

점점 목적이 희미해지는 레이

인남은 목적이 점점 구체화되면서 강해지는 캐릭터라면 인남에 맞서는 레이는 목적이 점점 희미해지는 캐릭터이다.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인남이 암살한 야쿠자 두목의 장례식장이다. 한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형의 장례식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참가한 레이는 형의 복수를 다짐한다. 하지만 여기에 의문이 든다. 정말 레이가 원했던 것은 형의 복수였을까? 내가 보기엔 형의 복수는 명분에 불과했던 것 같다. 인간 백정이라 불리는 레이는 그저 살인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인남의 행적을 뒤쫓으며 그와 관련된 이들을 형의 죽음과 상관이 있든 없든 잔인하게 죽여버리는 레이의 모습은 이를 증명한다.

나중에 태국 갱단의 보스가 '왜 그토록 그를 죽이고 싶어 하냐?'라고 물었을 때, 레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젠 그 이유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레이는 인남을 뒤쫓으며 그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누구든지 상관하지 않고 몰살시켜 버린다. 태국 경찰, 태국 갱단 등 그들에 대한 공격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저 살인을 저지르는 그 행위에 도취된 듯이 보인다. (실제로 레이는 자신이 살인을 즐긴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쫓기는 와중에 지켜야 할 사람이 있는 인남과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살인을 즐기기 위해 인남을 뒤쫓는 레이. 얼핏 보면 레이가 훨씬 유리해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도 레이는 인남보다 한발 앞서 그의 계획을 가로막으며 우위를 점한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결국 인남의 승리이다. 살인 외에 별다른 목적 없이 인남을 뒤쫓은 레이가 딸의 안전이라는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인남을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 둘의 무시무시했던 추격전은 막을 내린다. 인남을 목적을 이루었고, 레이는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이 둘의 차이는 결국 목적이 있느냐, 없느냐에서 갈렸던 것이다.

[신세계]보다 [아저씨]에 더 가깝다.

황정민과 이정재가 주연을 맡았다는 점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한국 느와르의 걸작 [신세계]와 비교가 되곤 한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신세계]가 아닌 [아저씨]와 비교가 되어야 함이 마땅해 보인다. 어린 소녀를 구하기 위한 한 남자의 혈투라는 주요 소재가 그러하고, 어린 소녀가 처한 위기가 장기 밀매라는 끔찍한 범죄라는 점도 그러하다. 홍원찬 감독은 [아저씨]의 요소 위에 레이라는 잔인한 추격자를 추가함으로써 [아저씨]보다 더 흥미진진한 전개를 완성해냈다.

물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레이라는 캐릭터 덕분에 [아저씨]의 전개보다 흥미진진해졌다고 해서 영화가 [아저씨]보다 재미있어진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와 [아저씨]를 비교한다면 나는 아주 당연히 [아저씨]의 손을 들어줄 것이다. 원빈의 압도적 매력(원빈을 내세워 놓고 제목을 '아저씨'라 지은 이정범 감독의 도발)과 '멋있다'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액션 미장센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와 비교가 불가할 정도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레이라는 잔인한 추격자를 추가한 것 외에는 모든 면에서 [아저씨]보다 뒤떨어진다.

게다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총격씬이다. 영화에서 인남은 수많은 태국 갱단과 마주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 갱단은 칼로 무장해 있다. 인남이 권총으로 무장했음을 감안한다면 왜 태국 갱단은 총이 아닌 칼을 들고 인남과 맞섰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그렇다고 해서 태국 갱단에게 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레이가 태국 갱단을 습격해서 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하는 장면이 나왔을 정도이다. 영화 속 총격전은 시원스러운 굉음을 나에게 안겨줬지만 [아저씨]와 같은 액션 미장센을 기대했던 내겐 아쉬운 결과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꼭 15세 관람가로 스스로를 낮추어야만 했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또 다른 아쉬움은 15세 관람가이다. 물론 이해는 된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보다 15세 관람가 등급이 흥행에 훨씬 유리하다. 게다가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극장가가 극도로 위축된 비상사태가 아니던가. 약 138억 원의 제작비에 3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야 손익분기점이 넘는 대작 영화로서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유지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액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배를 갈라 죽이는 것을 즐기는 레이의 잔인함은 영화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태국에서의 액션도 뭔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잔인한 액션을 건너 뛴다. 모르고 봤다면 가위질을 심하게 당한 청소년 관람불가 액션 영화인 줄 알았을 뻔했다. 어쩌면 총격씬이 많은 것도 칼보다는 덜 잔인하게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이다.

확실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신세계], [아저씨]와 같은 한국 느와르, 액션 영화의 걸작으로 추켜 세우기엔 부족함이 많다. 하지만 1시간 48분이라는 적당한 러닝타임 동안 재미있게 즐기기에는 무리가 없다. 잔인한 영화는 보기 싫다며 영화가 시작되면 잠을 자겠다고 선언했던 아내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보고 나서 '재밌네'라고 짧은 감상평을 남겼을 정도이다. 15세 관람가로 수위가 조절된 것이 아내가 이 영화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요소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박정민의 깜짝 출연도 영화의 재미 요소이다. [강철비 2 : 정상회담]에서도 밝혔듯이 전혀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들이 내 개인적 취향이다. 그렇기에 잔인함과 끔찍함만 넘쳐나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박정민의 깜짝 등장이 나는 유쾌했다. 그가 이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고, 태국에서 인남의 조력자 정도로 출연할 줄 알았는데 설마 그런 파격적인 역할일 줄이야... 그동안 코로나19로 움츠렸던 마음을 활짝 열고 화끈하게 즐길 액션 영화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 

 

 

 

0 첫번째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페이스북 로그인
꾸미기
행운의 다이아몬드~ 클릭하시면 포인트 5점을 드려요~
마니아 혜택/신청
Copyright ⓒ EZHLD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