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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정진영

주연 : 조진웅, 배수빈, 정해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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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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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극장에 다닌 보람이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회사와 집만 오고 가던 생활을 벗어나 '극장에서 다시, 봄' 캠페인 참여를 선언한지 정확히 12일째이다. 12일 동안 [침입자]를 시작으로 [사라진 시간]까지 여섯 편의 영화를 봤으니 이틀에 한 번꼴로 극장에 간 셈인데, 이제 [사라진 시간]을 마지막으로 6월 개봉작 중에서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는 다 봤다. 은근 뿌듯하다. [사라진 시간]이 6월의 극장 관람 마지막 영화가 된 이유는 영화에 대한 평가가 워낙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소재는 흥미로운데 영화가 열린 결말이라 혼란스럽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일단 재미있는 영화부터 보다 보니 [사라진 시간]이 계속 뒤로 밀렸다.

어찌 되었건 [사라진 시간]의 극장 상영이 마무리되기 전에 가까스로 챙겨 보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의 느낌은 역시나 혼란스러운 영화라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기승전결이 확실한 영화가 관객 입장에서는 편하다. 하지만 [사라진 시간]은 기승전까지만 있고 결이 없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면 '이게 뭐야?'라는 투덜거림이 자연스럽게 배출된다. 이건 거의 대부분의 열린 결말을 가진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잘 만든 열린 결말의 영화는 영화가 끝났을 때 '이게 뭐야?'라고 투덜거리다가도, 영화를 본 후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계속 생각나게 되고, 내 생각이 맞나? 싶어서 다른 사람의 글도 찾아보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사라진 시간]은 안타깝게도 그다지 잘 만든 열린 결말의 영화는 아니다.

그래도 정진영 감독이 기자 간담회에서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관객의 권리'라고 선언을 하였으니 [사라진 시간]에 대해서 내 마음대로 해석을 해보려 한다. 당연하지만 스포가 가득 담겨 있을 것이며 내 해석이 맞는다는 보장도 없다. 아니, 어쩌면 이 영화에 맞는 해석 따위는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뭐 나는 정진영 감독이 선언한 관객의 권리를 맘껏 행사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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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영의 이상한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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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간]은 시골 초등학교 선생인 김수혁(배수빈)과 윤이영(차수연)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한적한 시골로 내려온 수혁 부부. 그 이유는 이영에게 병이 있기 때문이다. 이영은 밤만 되면 날마다 다른 사람이 되는데, 어느 날은 수혁은 죽은 어머니가 되었다가, 어느 날은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전설적인 프로 레슬러 역도산이 되기도 한다. 그러한 사실을 마을 주민인 정해균(정해군)에게 들키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에 밤마다 이영은 집에 가두기로 결정한다.

처음엔 이영의 병이 다중인격인가 싶었는데, 이영이 앓고 있는 병은 다중인격과는 다르다. 이영이 빙의되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는 유명인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영의 빙의가 마구잡이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수혁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할 땐 수혁의 어머니로 빙의했고, 수혁이 '내 원래 꿈이 코미디언이었어.'라며 웃기지도 않은 코미디를 펼칠 땐 이주일로 빙의한다. 역도산으로 빙의한 날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암튼 확실한 것은 아무런 이유 없이 위험한 인물, 예를 들어서 연쇄살인마로 빙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유명인으로 빙의하는 병이 실제로 존재하기에 대해서는 깊게 따지고 들어가지 말자. 영화라는 것이 원래 말도 안 되는 소재를 마치 현실에 존재하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니까. 이영의 이상한 병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마을 주민들이 이영의 병에 불안감을 가진다면 굳이 이영만 2층에 감금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수혁은 이영의 병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감안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 마을 사람들이 불안해한다면 이영을 2층에 감금할 것이 아니라 집의 현관문을 밖으로 잠기게 설치하여 수혁 스스로 이영을 함께 격리되겠다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했어야 한다. 그런데 굳이 이영을 2층에 감금해 놓고 밤마다 이산가족 행세를 하는 것은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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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방화가 아닌 전기 누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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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혁이 스스로 이영과 2층에 감금되겠다고 결심한 날 하필 1층 거실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2층에 감금된 수혁과 이영은 대피하지 못한 채 죽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영화에서 수혁의 집에 화재가 나는 장면을 집 바깥에서 보여주는데, 거실 유리창에 비치는 화재 장면이 단순 전기 누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마치 누군가 1층 거실에서 플래시를 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엔 한 대의 플래시를 켜졌다가 나중엔 여러 대의 플래시가 켜지는 모습이다. 어린 시절 깜깜한 밤에 플래시를 가지고 유리창에 비추기 놀이를 많이 해봐서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처음엔 외지인인 수혁과 이상한 병까지 앓고 있는 이영을 경계한 마을 사람들이 일부러 수혁의 집에 방화를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 단순 전기 누전으로 결론 난다.

나는 이것이 이 영화의 미스터리를 설명할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이후 수혁의 집 방화 사건에 대한 진실은 더 이상 영화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려면 차라리 화재가 나는 장면을 보여주지 말던가, 아니면 진짜 전기 누전 장면처럼 보이게끔 처리를 하던가 했어야 했다. 중요한 단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영화 용어로 맥거핀이라고 한다. 그 유명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에서 처음 사용된 맥거핀은 이후 히치콕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수많은 감독들이 따라 했다. 어쩌면 정진영 감독도 히치콕의 후예임을 선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라진 시간]의 맥거핀은 또 있다. 영화 초반 해균의 아들인 진규(노강민)가 뭔가 중요한 곳을 놓고 갔다는 듯이 학교로 급히 달려와서 사물함에 넣는다. 그런데 그 사물함은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다. 수혁이 거기에 뭐가 들어있냐고 물어도 진규는 '내 프라이버시'라며 철벽 방어를 친다. 이후 카메라는 진규의 사물함을 클로즈업한다. 마치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이 중요한 단서라도 되는 듯이... 하지만 영화 후반부 박형구(조진웅)가 몰래 연 진규의 사물함에는 찢어진 가족사진이 들어 있을 뿐이다. 이 영화의 미스터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순간 허무감이 밀려왔다. 정진영 감독은 맥거핀을 너무 남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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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구의 '사라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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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는 역시 수혁의 집 화재 사망 사건의 담당 형사인 박형구가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자신의 인생은 사라져 버리고 수혁의 인생을 대신 살고 있다는 설정이다. [사라진 시간]은 형구가 자신에게 일어난 이 미스터리한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물론 열린 결말답게 형구가 알아낸 진실은 아무것도 없긴 하지만... 형구의 '사라진 시간'에도 몇 가지 단서가 있다. 마을 회관에서 잔뜩 술에 취한 형구는 화재 현장에 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라며 궁금해한다. 그때 현장에서 어떤 남녀의 웃음소리를 듣고 집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이미 죽은 수혁과 이영이 있었는데, 수혁은 이영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가며 '우리는 여기에서 행복했으니 그것으로 됐다'라며 마을 사람들을 용서한다는 식의 말을 하고 사라진다.

이 장면으로 유추해 보면 진실을 알고 싶은 형구가 수혁에게 빙의되어 수혁의 인생을 대신 살고 있다는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수혁에게 빙의된 형구의 삶은 화재사건으로 이미 죽은 수혁과 이영이 형구를 위해 만든 세상일 것이다. 이전의 세상에서 형구는 마을 사람들을 의심하고 그들을 거칠게 몰아붙인다. 하지만 수혁의 인생을 대신 살면서 결국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게 된다. 그것은 수혁이 그토록 원했던 삶이다. 이영의 이상한 병 때문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격리될 수밖에 없었던 수혁은 형구가 그랬던 것처럼 마을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석하기엔 한 가지 의심스러운 설정이 있다. 형구가 해균에게 자신은 이상한 병을 앓고 있으니 밤마다 자신을 2층에 감금시켜 달라고 했다는 것. 그렇다면 형구는 수혁과 이영의 삶을 반쯤 뒤섞은 삶을 살게 되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만약 그렇다면 형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밤마다 타인이 되었을 것이며, 어쩌면 형사 형구의 삶에 대한 기억은 그의 이상한 병에 의한 기억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해석은 영화 후반 초희(이선빈)가 형구에게 '자신은 밤마다 다른 사람이 되는 병에 걸렸다'라는 고백을 할 때 형구가 '나도 그거 알아요.'라며 맞장구치는 장면에서 신빙성을 얻는다. 형구가 초희의 병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형구 역시 같은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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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해석에 대한 최종 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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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시간]에서 가장 중요한 형구의 '사라진 시간'에 대한 내 개인적인 해석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 해석은 형구가 수혁과 이영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세상에 갇혀 있는 것이다. 그 세상에서 형구는 수혁이 되어 수혁의 인생을 살게 된다. 초희는 이영의 대역이다. 이영이 앓고 있는 이상한 병을 초희도 앓고 있고, 결국 형구와 초희는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형구는 수혁이 그랬던 것처럼 밤마다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초희의 이상한 병을 받아 들여야 하며, 어쩌면 해균에게 들켜 밤마다 2층에 감금될 것이다. 그러다가 전기 누전으로 집에 화재가 발생하고 형구와 초희는 서로 부둥켜안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진실이 알고 싶었던 형구는 수혁이 되어, 수혁과 이영에게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형구는 형사였던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두 번째 해석은 초등학교 선생인 형구는 밤마다 형사인 형구가 된다는 것이다. 해균이 밤마다 2층에 감금시킨 덕분에 형사 형구는 마을을 활보하며 말썽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감금된 2층에서 혼자 형사 형구의 삶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이 선생인지, 형사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형사인 형구의 아내 이름이 유명 연예인인 전지현이고, 두 아들의 이름이 유명 축구 선수인 박지성과 박주영이라는 것은 형사 형구의 삶이 상상 속에 만들어진 가상임을 드러내는 단서이다.

해균이 바람을 피운 경찰서장의 아내 박미경(신동미)이 형사 형구의 아내 전지현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 역시 형사 형구의 삶이 상상 속의 산물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아마도 형구는 우연히 해균의 경찰 서장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경찰이라는 공통분모로 박미경을 자신의 아내로 둔갑시킨다. 형사 형구의 두 아들인 지성과 주영이 영화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의 상상력에 거기까지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존재하지 않는 인물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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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풀리지 않는 전화번호가 적인 쪽지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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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라진 시간]에는 그럴듯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무엇이 정답일까? 그건 나도 모른다. 어쩌면 정진영 감독도 모르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두 가지 해석 중에서 조금 더 내 마음에 드는 해석을 고르라면 나는 첫 번째 해석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그 이유는 형사 형구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쪽지는 형사였던 형구가 집 앞 주차장에서 접촉 사고를 내고 상대 운전자에게 남기기 위해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은 것이다. 하지만 선생 형구의 세상에서 이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이다. 그것은 결국 형사 형구의 세상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것은 이 전화번호가 선생 형구의 세상에서는 초희가 2년 전 해지한 전화번호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초희의 농담대로 형구는 자신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초희라는 존재를 알게 되고, 그녀에게 접근하기 위해 시골 학교로 전근을 온 후, 초희가 강사로 있는 문화센터에 수강을 하며 초희를 스토킹했을지도 모른다. 초희와 만난 온천에 수혁과 이영이 들어온 것도 두 번째 해석을 뒷받침해 준다. 초희를 몰래 뒤쫓아 온천에 자주 갔던 형구는 수혁과 이영 커플의 보게 되고, 이를 통해 형사 형구의 세상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는 두 커플을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쓰다 보니 더 헷갈리기만 한다. 이것이 정진영 감독이 의도했던 것인지, 아니면 초보 시나리오 작가인 정진영 감독의 단순 실수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서로 상반된 두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라진 시간]은 열린 결말 영화로는 좋게 평가하면 새롭고, 나쁘게 평가하면 부실하다. 그래도 정진영 감독의 새로운 시도만큼은 박수를 쳐주고 싶다. 정리가 안되는 혼란을 부추기는 영화이지만 이 세상엔 이런 영화도 한 편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