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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조일형

주연 : 유아인, 박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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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비 세상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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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여름에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이래 대한민국은 좀비 열풍에 휩싸였다. [부산행] 이후 내가 본 좀비 영화는 [부산행]의 프리퀄로 알려진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서울역]을 비롯하여 [창궐], [기묘한 가족] 그리고 할리우드 좀비 영화인 [좀비랜드 : 더블 탭], [데드 돈 다이]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킹덤 시즌 1]과 [킹덤 시즌 2]까지... 공포 영화를 극도로 싫어하는 내 입장에서는 좀비 영화만큼은 내 심약한 영화적 취향을 비껴가고 있는 셈입니다.

영화를 볼 때 영화 속 주인공과 감정이입을 하면서 영화에 몰입하는 습관이 있다 보니 최근 들어서 종종 '영화에서처럼 좀비 세상이 도래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아마도 나는 내 집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집에 저장된 식수와 식량인데 그래서 가끔 대형 마트에 가면 좀비로 인하여 대형 마트에 고립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신선식품부터 먹고 유통기한이 긴 가공식품은 나중에 먹어야겠지? 아내에겐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우리 집은 버리고 곧장 처갓집으로 가야 한다고 말을 해놨다. 복도식 아파트인데다가 3층인 우리 집은 좀비에 취약하지만, 계단식 아파트인데다가 9층인 처갓집은 좀비로부터 비교적 안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진지한 고민에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어넘기지만, 코로나19라는 영화 같은 바이러스가 창궐한 요즘 시대에 좀비 바이러스라고 창궐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살아있다]가 개봉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침체된 극장가에 [#살아있다]는 오랜만에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고 있다고 한다. 한국 공포 영화의 대세가 된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다가 코로나19로 인하여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요즘 시대를 적절하게 반영한 영화의 내용이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낸 것이리라. 나 역시 목요일 저녁 혼자 [#살아있다]를 보고 왔다. 6월 이후 다섯 번째 극장 나들이였는데, 평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꽤 많았다. 영화는 그런대로 재미있었지만 중후반부에 가서는 아쉬운 설정도 몇 가지 눈에 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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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나 보니 세상은 좀비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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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주인공은 오준우(유아인)라는 평범한 20대 청년이다. 하루 종일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이 일상인 듯 보이는 준우는 오늘도 느지막이 일어나 가족들 모두가 출근하고 없는 집에서 게임을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게임 채팅창에 수상한 대화가 오고 가고, TV를 켠 준우는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하여 사람들이 극단적인 공격성을 띠고 있으며 심지어 식인까지 한다는 뉴스를 보게 된다. 굳이 뉴스로 이 믿기 힘든 현실을 확인할 필요는 없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아파트 바깥 풍경만 봐도 아비규환의 상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사람이란 원래 그렇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면 이게 현실인지, 아니면 꿈인지 분간을 하지 못하고 멍한 상태가 된다. 준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이 믿기 힘든 상황에서 어이없게도 아파트 현관문을 열게 되고 그로 인하여 이미 감염된 옆집 청년이 집에 들어오는 불상사를 겪게 된다. 다행히 구사일생으로 좀비가 된 옆집 청년을 아파트 현관문 밖으로 밀어낼 수 있었지만 이 치명적인 실수 이후 준우는 절대로 현관문을 열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냉장고로 현관문을 차단시킨 준우. 문제는 식량과 식수이다. 집에 격리된 지 수십일이 경과되자 이제 남아 있는 것은 준우의 아버지가 소중히 수집한 고급 양주뿐. 이렇게 준우의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진다.

결국 술에 취해 아파트 현관 밖으로 나간 준우는 단번에 술이 확 깰만한 무시무시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가까스로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제 준우에게 남은 선택은 단 세 가지뿐이다. 굶어 죽거나, 좀비에 물려 죽거나, 아니면 자살하거나... 이미 가족들도 좀비에게 희생되었음을 알게 된 준우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때 준우의 아파트에 한줄기 빛이 들어온다. 건너편 아파트에서 준우처럼 처절한 생존기를 겪고 있는 김유빈(박신혜)이 보낸 신호이다. 혼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좀 더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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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일 때보다 둘일 때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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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족이 유행인 요즘이다. 혼자 살고,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신다. 혼자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사람은 태초부터 혼자 살수 없게 만들어진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가 편해도 결국 중요한 무엇인가는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한다. 준우가 깨달은 것은 바로 하나일 때보다 둘일 때 힘이 생긴다는 세상의 이치이다. 영화에서 좀비 세상이 도래하기 전 준우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아마도 준우는 대학 졸업 후 혼자 자기 방에 처박혀 온라인 게임에만 빠져있었을 것이다. 잔소리만 늘어놓는 가족이 귀찮고, 집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회 활동을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세상은 오로지 집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는 것. 그것이 준우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가족도 사라지고, 밖으로 나갈 일도 없어진 좀비 세상에서 준우는 극도의 외로움에 빠진다. 인터넷, 문자, 전화가 끊겨버려 더 이상 대화를 할 상대조차 없어진 상황. 그러한 상황에서 과연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한 외로움이 결국 준우의 극단적인 선택의 이유가 된다. 그리고 그때 나타난 유빈은 준우에게 유일한 희망이 된다. 더 이상 외롭지 않다. 둘이 힘을 합친다면 이 말도 안 되는 세상에서도 어떻게든 살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준우와 유빈은 서로에게 힘이 된다.

코로나19의 시대는 혼자이어야 하는 세상이다.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혼자 밥을 먹어야 하고, 모임을 피해야 하며, 사람이 많은 곳은 가급적 가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점점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점차 사회적 거리두기의 고충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나홀로족이 유행이었던 요즘 세상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코로나 블루 현상에 시달린다는 사람들. 아마도 코로나19가 정식으로 종식되고 나면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하나보다 둘일 때 행복한 일상을 만끽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살아있다]는 정말로 시기적절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영화들이 코로나19 때문에 흥행에 지장을 받고 있을 때 [#살아있다]는 코로나19 시대를 반영한 영화라는 이점을 발휘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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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와 유빈이 8층으로 향하며 영화는 억지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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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준우와 유빈이 만난 그 이후이다. 만약 현실이라면 이 두 사람은 각자의 공간에서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 외에 특별히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영화다. 준우와 유빈이 안전한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면 영화가 재미 없어지지 않을까? 결국 준우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좀비로 변한 옆집에 몰래 침입하기로 한다. 여기까지는 말이 된다.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 먹을 것을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위험은 도사리고 있지만 위험을 불사할 까닭은 충분하다. 그리고 준우는 등산을 좋아하는 옆집에서 무전기를 손에 넣음으로써 유빈과 눈빛 교환이 아닌 진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유빈은 자신의 아파트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준우가 있는 건너편 아파트의 8층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다른 층에는 좀비가 득실거리지만 8층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좀비가 없다는 이유이다. 자! 여기에서부터 억지 설정이 시작된다. 준우와 유빈이 집에만 있으면 영화가 재미없으니 둘을 집 밖으로 내보낼 핑계가 필요하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 핑계라는 것이 고작 8층에 좀비가 없기 때문이란다. 좀비가 계단을 오르지 못한다면 8층이 안전하지만 [#살아있다]의 좀비는 인간이었을 때의 능력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어떤 좀비는 밧줄을 타고 유빈의 베란다 창문까지 기어 올라가지 않았던가. 그런 좀비에 맞서 준우와 유빈이 8층에 간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금 당장은 8층에 좀비가 없어도 준우와 유빈을 쫓아 8층까지 몰려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8층에 어떤 비밀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좀비를 퇴치할 수 있는 무언가가 8층에 있기 때문에 8층에는 좀비가 없고, 8층이 안전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조일형 감독이 8층에 숨겨 놓은 것은 그저 비밀을 간직한 중년 남자일 뿐이다. 이 중년 남자의 비밀도 억지스럽고, 준우와 유빈이 중년 남자의 집에 가자 몰래 들었던 좀비가 사라진 것도 말이 안 된다. 8층에 가기 위해 수많은 좀비들과 맞서는 유빈과 준우는 [부산행]의 마동석보다 뛰어난 액션 능력을 발휘하지만 그러한 억지는 어차피 영화이니까 넘어가 줄 수도 있다. 하지만 8층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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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준우와 유빈은 처음부터 옥상으로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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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층에서 벌어지는 억지스러운 소동 이후 준우와 유빈은 구조대가 헬기로 생존자를 구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옥상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진작에 그랬어야 했다. 8층이라는 말도 안 되는 피난처로 한바탕 영화를 억지스럽게 만든 이후 그제서야 옥상으로 향하는 것은 그저 영화의 러닝타임을 늘리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러닝타임을 늘릴 필요가 있었다면 차라리 영화 초반 좀비가 창궐하기 전, 준우와 유빈의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캐릭터를 좀 더 다듬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

아파트 옥상으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다. 당연히 좀비가 몰려온다.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간 이후에도 옥상 문을 부수고 좀비의 공격이 시작된다. 이 장면은 충분히 스릴이 있었고,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알맞았지만 아파트 옥상에서 좀비가 몰려오는 장면 이후는 너무 뻔히 눈에 보여 아쉽기도 했다. 뭐 특별한 반전을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때쯤 구조 헬기가 나타나겠지?라는 예상이 그래도 영화 속에 재현되니 김이 빠지기도 했다.

[#살아있다]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코로나19 시대를 반영한 참 시기적절한 영화이다. 그리고 중반까지 영화는 꽤 괜찮았다. 하지만 좀비 영화는 이래야 한다는 감독의 욕심 때문인지 중후반부터 영화가 억지스러워지더니 마지막 장면에서는 대충 마무리되는 듯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속 편을 위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살아있다]의 뒷맛이 그리 깔끔하지는 않다. 그래도 영화 중반, 화장실을 가기 위해 일어서 내 쪽으로 다가오는 관객을 보며 흠칫 놀랄 정도로 영화는 좀비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장미로 인하여 더위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를 보고 나니 더욱 서늘함이 느꼈다. 사람들이 여름에 공포 영화를 보는 이유도 이러한 서늘함 때문이겠지? 뭐 확실한 것은 [#살아있다]가 내게 서늘함을 안겨주긴 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