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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 - 난 마법이 조금은 남아 있었으면 좋겠구나. 너희 안에...
13  쭈니 2020.06.23 17:13:33
조회 212 댓글 0 신고

감독 : 댄 스캔론

더빙 : 톰 홀랜드, 크리스 프랫

정말 오랫동안 참고 기다렸다.

1995년 12월, 국내에 [토이 스토리]가 개봉한 이래 나는 픽사 애니메이션만큼은 항상 극장에서 챙겨 봤다. 픽사 애니메이션은 분명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셀 애니메이션이 지배하던 시절, 3D 애니메이션으로 대세를 바꾼 놀라운 기술력과 웃음과 감동까지 골고루 갖춘 영화적 재미까지... 지금까지 픽사 애니메이션 중에서 내게 실망을 안겨준 영화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정이 그러하기에 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인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의 개봉만을 나는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3월 초 개봉 예정이었던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의 개봉이 코로나19 때문에 무기한 연기되었고, 그 사이에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의 불법 동영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유혹을 느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의 개봉은 멀게만 느껴졌고, 막상 개봉을 한다고 해도 '극장은 코로나19에 위험하다'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아내에게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겠다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코로나19를 원망하며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의 극장 관람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영화는 포기해도 픽사 애니메이션만큼은 포기하지 못하겠더라. 무려 25년이다. 픽사 애니메이션은 내게 언제나 한결같은 재미와 감동을 안겨줬고,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아들과 함께 픽사 애니메이션의 재미를 나누는 것이 나의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게다가 메가박스 MX관에서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을 관람하면 오리지널 티켓과 더불어 픽사 스페셜 클립북도 준다고 하니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만큼은 극장에서 보고 싶었다. 지난 6월 15일 [침입자]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간 것도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을 극장에서 보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침입자]를 보고 나서 '내가 극장에 가보니 방역이 철저해서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더라'는 것을 끊임없이 아내에게 어필했으니... 그리고 지난 일요일 오전, 드디어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을 아들과 함께 극장에서 볼 수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에서 형과 동생의 이야기로...

내가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에 조금 강박적이라고 할 만큼 과한 기대를 했던 이유는 이 영화의 내용이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법이 사라진 세상에 살고 있는 엘프 형제 발리(크리스 프랫)와 이안(톰 홀랜드)은 취향과 성격 모두 정반대이다. 이안은 소심한 성격의 모범생 스타일이지만 발리는 마법 덕후이며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괴짜 말썽쟁이이다. 그런 그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래도 발리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조금이라도 있지만, 이안은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발리와 이안에게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이안의 열여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어머니인 로렐(줄리아 루이스 드레이퍼스)이 아버지가 죽기 전에 남긴 특별한 생일 선물을 건넨 것이다. 그것은 바로 마법의 지팡이와 피닉스 젬이다. 마법의 지팡이에 피닉스 젬을 넣어 부활 주문을 외우면 단 하루 동안 죽은 아버지와 만날 수 있는 것. 문제는 계획대로 아버지를 소환하긴 했지만 아직 마법이 서툰 이안의 실수로 하반신만 소환된 것이다. 아버지를 완전히 소환하려면 피닉스 젬이 더 필요하다. 발리와 이안은 피닉스 젬을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에 나선다.

2012년 국내 개봉했던 [메리다와 마법의 숲]이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라면,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은 대략적인 내용만 봐도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가 있다. 내가 이 영화를 아들과 함께 보기 위해 아내의 온갖 잔소리를 참고 견딘 이유이다. 그런데 막상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형과 동생의 이야기로 바뀐다. 아버지를 완전히 소환하기 위해 함께 모험을 떠나는 발리와 이안의 모험은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묵묵히 아버지의 역할을 하며 이안의 곁을 지켜준 발리에 대한 이야기로 변환된다. 영화 후반부, 발리를 한심하게만 생각했던 이안이 그제서야 형이 자신에게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장면은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명장면이다.

어려운 마법 대신 편한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

피닉스 젬을 구하기 위해 발리와 이안은 전설 속의 괴물인 만티코어(옥타비아 스펜서)를 찾아 나선다. 만티코어의 집에는 피닉스 젬이 숨겨진 위치가 담긴 지도가 있는 것. 하지만 무시무시한 괴물인 줄 알았던 만티코어는 지금은 음식점을 운영하며 과거의 모험 따위는 모두 잊은 상태이다. 발리는 만티코어의 숨겨진 야성미를 깨우지만 그로 인하여 오히려 식당은 물론 지도마저 홀라당 불에 타 버린다. 이제 발리와 이안은 직감만으로 피닉스 젬을 찾아야 한다. 시간은 별로 없다.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이 만들어낸 세상은 우리가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보아온 판타지 세상과 비슷하면서도 살짝 비튼다. 주인공인 발리와 이안 형제는 엘프이고, 거리에는 유니콘이 쓰레기통을 뒤진다. 작은 요정들은 자신의 날개로 날기보다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폭주족이고, 켄타우로스 또한 네 발로 달리기는커녕 걷는 것조차 귀찮아하며 자동차에 의존한다. 야성을 잃은 식당 주인 만티코어까지... 영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판타지의 신비한 존재들을 모두 소환한다. 물론 그들의 모습은 기존의 판타지 영화와는 전혀 딴판이지만...

그런데 그러한 그들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영화는 마법과 신비한 존재들을 내세우지만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에서 마법을 잊고 편리한 과학 기술에 기대에 살고 있는 캐릭터들은 현대 사회의 우리를 풍자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나는 동네 공터에서 동네 친구들, 형들과 야구를 하곤 했다. 비록 타고난 몸치이기 때문에 주전은 하지 못하고 언제나 벤치 신세였지만 그래도 시간만 나면 동네 공터로 달려가 함께 야구를 할 사람들을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떠한가? 한참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 그 누구도 뛰어놀지 않는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스마트폰 화면에만 집중한다. 마법을 잊어버린 세상. 그건 바로 기술력의 발달로 더 이상 뛰어놀 필요가 없어진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쉬운 길과 어려운 길

피닉스 젬을 찾기 위해 까마귀 봉우리로 가야 한다. 이안은 까마귀 봉우리로 가는 빠르고 쉬운 고속도로를 택하려 하지만 발리는 퀘스트를 하려면 위험한 길로 가야 한다고 우긴다. 처음엔 이안의 선택대로 고속도로를 택하지만 오히려 폭주족 요정 때문에 위험에 처한다. 이후 발리의 선택을 존중하여 위험한 비포장도로를 선택하는데, 그 길 위에서 피닉스 젬이 숨겨진 곳은 까마귀 봉우리가 아닌 까마귀 석상이 가리키는 곳이라는 새로운 단서를 얻게 된다. 게임 마니아인 발리의 말도 안 되는 선택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이 장면은 우리가 사는 동안 해야 하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연히 사람들은 쉽고 빠른 길을 선택하려 한다. 누구라도 어렵고 오래 걸리는 길을 선택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쉽고 빠른 길을 선택하기 위해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변명을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분명 조금 더 어렵고,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길이 있지만 이미 쉽고 빠른 길에 들어선 이상 뒤돌아 나가는 것은 선택지에서 빠진다. 이안은 아버지를 빨리 만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 위해 빠른 고속도로를 선택한다. 하지만 나중엔 발리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어렵고 오래 걸리는 비포장길에 들어선다. 이안은 빠른 길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뒤돌아 나가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한 것이다.

이렇듯 피닉스 젬을 찾아 나선 발리와 이안의 모험에서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은 이안의 성장에 주목한다. 자신의 생일 파티에 친구들을 초대하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의 이안은 발리와의 모험을 통해 용기를 발휘하고, 끝에 가서는 그동안 아버지 대신 자신을 살뜰하게 챙긴 발리의 진심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모든 것을 발리에게 양보하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강박마저 이겨 낸다. 영화에서 캐릭터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 또한 이안의 성장을 통해 나에게 훈훈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난 마법이 조금은 남아 있으면 좋겠구나. 너희 안에...

영화가 끝나고 오랜만에 아들과 단둘이 대화를 나누었다. 요즘 시험공부를 한다며 아들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기회조차 없었는데 (아내는 내가 있으면 아들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한다.) 이렇게 아들과 함께 영화를 보면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아들과 나의 시간이 되어서 참 좋다. 어느새 나보다 훌쩍 커버린 아들. 예전처럼 "아빠, 놀아줘."라며 매달리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함께 영화 보라 가자고 조르면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주는 고마운 아들이다. 아마도 영화 속 세상처럼 아들 또한 나이가 들수록 마음속 마법(동심)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대학을 가고, 사회에 나가면 이젠 나와 영화를 볼 시간마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마음속 마법을 잃어 갔으니까...

아들은 "아빠도 영화에서처럼 하반신만 있어야 하는데..."라며 놀린다. 말 많은 나에 대한 아들의 불만 표현이다. 하지만 나는 아들을 향한 나의 말을 멈출 수가 없다.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폼을 떠나면 이렇게 아들과 수다를 떠는 것조차 추억이 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하반신만 있느니 차라리 상반신만 있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을 보지 못한 아내는 경악했다. 이것 또한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을 공유한 아들과 나만의 추억이리라.

아쉬운 것은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 이후 아들과 함께 볼만한 영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8월 초에는 아들의 기말고사가 다가올 텐데, 그러면 또다시 아들은 시험공부 모드에 돌입하며 나는 아들 곁에서 격리되겠지. 어차피 나는 아들의 공부에 방해만 되는 존재이니까. 그렇기에 더욱더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이 내겐 소중했다.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극장에서 본 영화이며, 어쩌면 한동안은 아들과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가 될 테니까 말이다. 마법이 가득한 세상에 대한 그리움은 그렇기에 아들보다는 내 마음속에 더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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