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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 - 괜히 센티멘털한 날이라면 더욱 잘 어울리는 영화
13  쭈니 2020.03.06 14:59:10
조회 166 댓글 0 신고

감독 : 미셸 공드리

주연 :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왜 괜히 센티멘털한 날이 있잖아.

그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괜히 우울하고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점심 식사도 다른 날과 달리 든든하게 했지만 배가 부르다고 해서 내 쓸쓸한 마음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런 날은 퇴근 후 곧장 극장으로 달려가 신나는 영화 한 편 보면 풀린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기대작들이 모두 개봉을 미뤄 극장에 가더라도 더 이상 볼 영화가 없다. 다른 방법도 있다. 직장 동료들과 술 한 잔 찐하게 하며 공공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직장 상사 욕지거리를 시원하게 하고 나면 우울한 마음이 풀린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술 약속을 잡을 수도 없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라도 캔맥주 하나 마시면 어느 정도 기운이 나는데, 하필 지난 화요일 병원에서 통풍 확진을 받아 집에서의 음주는 금지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나 혼자 가족 몰래 생맥주를 마시러 갈 용기도 없다. 이걸 두고 사면초가라고 하는 건가 보다. 내 우울한 마음을 뭔가로 풀어야 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방법들이 모두 막혀 버렸다.

우울한 기분을 풀지 못해 짜증이 나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가 최후의 보루인 넷플릭스에 접속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영화가 2006년에 보았던 [이터널 선샤인]이다. 나도 안다. 이런 날은 신나는 영화를 봐야 하는데 [이터널 선샤인]은 분명 신나는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오늘처럼 센티멘털한 날에는 오히려 센티멘털한 영화를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내가 아는 한 센티멘털한 영화의 최고봉은 [이터널 선샤인]이다.

우연히 만난 그녀, 그런데 어딘지 낯설지가 않다.

[이터널 선샤인]은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을 맞이한 조엘(짐 캐리)이라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분명 평범한 아침이었는데 조금 이상하다. 전날 술을 마신 기억도 없는데 숙취가 느껴지고, 차는 누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문짝이 긁혀있다. 출근을 하려고 했는데 문득 해변가에 가야 한다는 강한 충동이 느껴졌다. 한 겨울의 해변가라니, 그것도 회사를 땡땡이치고... '나는 이렇게 충동적인 사람이 아닌데...'라고 생각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몸은 이미 회사 반대편 열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 겨울의 텅 빈 해변가. 그곳에서 그는 파란 머리를 한 이상한 여자와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낯선 여자 앞에서는 한마디 말도 못 하는 숙맥인 그였지만 이상하게 클레멘타인은 낯설지가 않다. 그리고 클레멘타인도 '우리 어드에서 보지 않았나요?'라며 그에게 다가온다. 그녀의 당돌함이 싫지 않다. 외롭기만 했던 그의 인생에서 새로운 로맨스가 시작될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느껴진다.

이렇게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첫 만남을 시작하는 장면에 이어 영화는 며칠 전의 과거로 옮겨진다. 사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연인 관계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로에게 상처만 입혔고, 결국 사랑은 미움으로 변했다. 그때 클레멘타인은 선별적인 기억만 지워주는 라쿠나사의 서비스를 이용해서 조엘의 기억을 지워버렸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엘 또한 홧김에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운다. 이렇게 기억을 지웠음에도 이 두 사람은 마치 처음처럼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기억을 지웠어도 사랑은 이루어진다.

2006년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내게 있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웠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운명적인 사랑이었다. 나는 그 사랑에 굉장해 보였다. 그들은 결국 이렇게 다시 사랑에 빠질 운명이었을 테니까. 당시의 나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었고, 지워진 기억을 극복하고 다시 사랑에 빠지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사랑은 내가 꿈꿨던 운명적인 사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1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보게 된 [이터널 선샤인]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사랑은 어쩌면 운명일지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다는 조엘의 간절한 소망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실제 조엘은 라쿠나사의 기술자들인 스탠(마크 러팔로)과 패트릭(일라이저 우드)이 클레멘타인에 대한 조엘의 기억을 지우려 하자 무의식 속에서 클레멘타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한 장면을 미셸 공드리 감독은 굉장히 몽환적으로 그려냈는데, 두 번째로 [이터널 선샤인]을 보게 되니 다시 만난 조엘과 클레멘타인보다는 클레멘타인을 기억에서 지우지 않으려는 조엘의 처절한 몸부림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17년 동안의 결혼 생활 동안 깨달은 진리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 운명처럼 완성되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사랑 또한 운명이 아닌, 클레멘타인을 잊지 않겠다는, 아무리 가슴 아파도 그녀와의 추억을 간직하겠다는 조엘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사랑이 끝나도 기억은 영원하다.

사람의 감정은 쉽게 지워지는 것이 아니다. 유부남인 닥터 하워드(톰 윌킨스)를 지웠지만 또다시 그에게 사랑을 느끼는 메리(커스틴 던스트)처럼, 조엘이 했던 방식으로 클레멘타인에게 접근하여 사랑을 얻었지만 결국 조엘에게 다시 클레멘타인을 빼앗기는 패트릭처럼, 우리의 감각은 사랑을 본능적으로 알아본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너를 사랑하겠다는 연인의 맹세가 거짓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사랑을 그렇게 알아보지만 그 사랑을 영원히 지킬 수 있느냐이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끊임없이 싸웠다. 내성적인 조엘을 클레멘타인은 너무 지루한 남자라고 생각했고, 제멋대로인 클레멘타인을 조엘은 헤픈 여자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고, 그 다름을 틀림이라 생각했으며, 그 틀림을 공격함으로써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그건 사랑이 식은 대부분의 연인, 부부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조차 껴안을 수 있어야 영원한 사랑이 가능할 텐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사랑이 해피엔딩일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들은 예전처럼 또다시 싸울 것이다. 어쩌면 서로에게 상처를 줄 것이고, 결국엔 이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서로의 기억을 지우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 끝나도 사랑했던 기억은 영원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사랑을 하다 상처를 받고 이별을 하면서도 다시 사랑하는 이유이다. 사랑의 기억조차 없다면 사랑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터널 선샤인]은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사랑을 통해 사랑과 기억에 대한 작은 깨달음을 관객에게 안겨주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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