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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 고전의 고풍스러운 향취가 느껴지는 완벽한 영화
13  쭈니 2020.02.18 17:12:58
조회 221 댓글 2 신고

감독 : 그레타 거윅

주연 : 시얼샤 로넌, 엠마 왓슨, 플로렌스 퓨

고풍스러운 향취에 흠뻑 빠지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은 아씨들]은 작품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의상상을 수상하였다. 솔직히 [레이디 버드]를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배우 출신 그레타 거윅 감독이 [작은 아씨들]을 연출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또?'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작은 아씨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드라마를 많이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1995년 개봉했던 질리언 암스트롱 감독,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작은 아씨들]이 내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었기에 [작은 아씨들]이 익숙하게 느껴졌고, 그러한 익숙함은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을 보기도 전에 식상하게 받아들이는 악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은 아씨들]을 보러 갈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레타 거윅의 감독 데뷔작이자 시얼샤 로넌과 호흡을 맞추었던 2018년 개봉작 [레이디 버드]를 재미있게 봤고, [작은 아씨들]의 예고편과 스틸 사진이 고풍적이며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늦겨울 추위가 몰아닥친 지난 월요일, 그 추위를 뚫고 [작은 아씨들]을 보기 위해 혼자 길을 나섰다.

일단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작은 아씨들]은 애초에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기대감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준 영화였다. [레이디 버드]에서도 느꼈지만 그레타 거윅의 연출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또래 여배우 중 독보적인 연기력을 갖춘 시얼샤 로넌의 연기는 역시나 대단했다. 거기에 우리의 영원한 헤르미온느 엠마 왓슨도 반가웠으며, [작은 아씨들]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후보에 오른 신성 플로렌스 퓨의 연기도 매력적이었다. 오랜만에 고전의 고풍스러운 향취에 흠뻑 빠진 느낌의 영화였다.

작가의 꿈을 안고 뉴욕에 온 조의 현재와 과거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장편 소설 <작은 아씨들>이 발표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2년 전인 1868년이다. 당시만 해도 여성의 사회적 참여는 흔치 않았다. 마치 가문 네 자매의 대고모(메릴 스트립)의 말대로 당시 여성에게 있어서 성공적인 인생이란 돈 많은 남성과 만나 결혼해서 편안하게 사는 것 뿐이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메그(엠마 왓슨), 조(시얼샤 로넌), 베스(엘리자 스캔런), 에이미(플로렌스 퓨)는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는 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에 온 조는 자신의 소설을 신문사에 파는 등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긴 하지만 생활을 위해 자신의 의지와는 다른 자극적인 소설을 쓰며 편집자의 구미에 맞춘다. 그러한 그녀의 소설을 읽은 프리드리히(루이 가렐)는 그녀의 소설이 그리 좋은 글 같지는 않다는 혹독한 비평을 하며 조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다. 그러던 중 베스가 많이 아프다는 연락을 받게 되고 뉴욕을 떠나 집으로 향한다.

[작은 아씨들]은 조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서 보여주는데, 조의 현재는 차가운 블루톤의 화면으로, 과거는 따뜻한 레드톤으로 그려냄으로써 조의 현재와 과거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에 왔지만 뉴욕에서 조의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 비해 자매들과 함께 지냈던 과거는 비록 가난했지만 하루하루가 즐거웠고, 사랑과 웃음이 넘쳤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화면의 톤만으로도 조의 현재 상황과 과거의 즐거웠던 회상을 표현하는 기발함으로 이 방대한 원작을 효과적으로 2시간 15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담아낸다.

여자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이야기가 뭐가 재미있어?

사실 내용만 놓고 본다면 [작은 아씨들]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내용을 풀어 놓으면 그저 마치 가문의 네 자매가 웃고 떠드는 성장담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가슴 아픈 사랑도 없고, 은밀한 음모와 잔인한 배신이 난무하지도 않는다. 그냥 말 그대로 네 자매의 성장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번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이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이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한 말이라고 한다.)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은 아씨들]이 딱 여기에 해당한다.

조는 신문 편집자의 입맛에 맞는 소설이 아닌, 베스의 충고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신문사에 보낸다. 처음에 편집자는 그녀의 글을 퇴짜놓지만 자신의 어린 자식들이 이 글을 읽고 좋아하는 것을 본 후 신문에 싣기로 결심한다. 예전의 그녀는 편집자의 굴욕적인 제안을 그냥 수용했었다. 다른 작가들은 평균 25~30달러의 원고료를 받지만 그녀는 고작 20달러의 원고료에 만족해야 했고, 편집자의 취향대로 글이 잘려 나가도 그냥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당당하게 자신이 받아야 할 대가를 요구하고 협상을 벌인다. 그런 조의 변화는 진정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글을 쓴 것에 대한 자부심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변화된 조의 성장을 보는 나 역시도 영화에 흠뻑 빠져 버렸다. 150여 년 전의 여자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이야기가 뭐가 재미있냐고? 그런데 재미있다. 맏딸답게 사려 깊은 메그와 독립심이 강한 조, 착한 베스와 막내답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당돌함을 가진 에이미까지... 그녀들의 삶에 끼어든 우수에 찬 반항아 로리 로렌스(티모시 살라메)의 이야기는 사실 별거 없는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할만한 끌림이 있다. 이것이 고전의 힘이며, 그레타 거윅 감독의 연출력의 힘이다.

시얼샤 로넌와 티모시 살라메의 연기만으로도 돈이 아깝지 않다.

내가 시얼샤 로넌이라는 배우를 처음 발견한 것은 2008년 조 라이트 감독의 [어톤먼트]에서이다. 이 영화는 지금까지도 내게 가장 가슴 아픈 로맨스 영화로 기억되는데, 1935년을 배경으로 영국의 부유한 집안의 딸인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와 집사의 아들이자 명문 의대생 로비(제임스 맥어보이)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로비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전쟁터로 끌려가게 되는데, 로비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범인은 세실리아의 동생이자 로비를 남몰래 짝사랑하던 브라오니(시얼샤 로넌)였다. [어톤먼트]를 보며 세실리아와 로비의 사랑을 갈라 놓은 브라오니가 어찌나 밉던지... 그만큼 시얼샤 로넌의 연기가 뛰어났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후 시얼샤 로넌은 [러블리 본즈], [한나], [호스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폭넓은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나에게 다시 한번 시얼샤 로넌의 매력을 각인시켜준 영화는 2016년에 개봉한 [브루클린]이다. 이 영화 속 에일리스는 [작은 아씨들]의 조와 캐릭터 성격이 비슷하다. 아일랜드에 남아 가족을 부양하는 것과 미국에서 을 이루는 것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녀는 작고 연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 누구보다도 강한 내면의 힘을 보여줬다. 그러니 어찌 시얼샤 로넌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센스 앤 센서빌리티], [주드]의 젊은 시절 케이트 윈슬렛을 연상시키는 플로렌스 퓨의 연기도 인상적이었지만 나는 그녀와 더불어 로리를 연기한 티모시 살라메의 연기가 가장 눈에 띄었다. 반항심과 애정결핍의 경향을 보이는 로리는 조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을 당한 후 상처를 입고 방황을 한다. 하지만 그는 대고모의 가르침을 받으며 돈 많은 남성과 사랑 없는 결혼을 하려는 에이미에게 두 번째 청혼을 하고 결국 결혼에 이른다. 언제나 조에 밀릴 수밖에 없었던 에이미. 평생 사랑했던 로리에게마저 언니의 대체품 취급을 받는 것에 분노하지만 내가 에이미였어도 로리의 청혼을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매력적이고, 사랑은 자존심을 허락하지 않는 법이니까.

모든 것이 완벽했던 영화

[작은 아씨들]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조의 현재와 과거 회상을 오가는 이야기는 상당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고, 기대했던 아름다운 화면과 고풍적인 매력도 넘칠 정도로 가득했다. 화면 하나하나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을 정도였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대단했는데, 고리타분해 보이는 고전을 읽으라는 학교 숙제 때문에 억지로 책을 펼쳤다가 오히려 책의 감동에 빠져 고전의 놀라움을 경험하는 어린 학생의 심정이 [작은 아씨들]을 보는 나의 심정과 같을 것이다.

조에게 청혼을 거절당하는 로리의 상처 입은 분노, 사랑하는 조에게 청혼을 받지만 자신이 언니의 대체품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무너지는 에이미의 눈물, 베스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로리와 결혼을 결심하지만 이미 로리와 에이미가 약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의 내색할 수 없는 당혹스러움. 이 영화의 극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들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영화를 보는 내 가슴속을 조용히 흔들어 놓았다.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루이자 메이 올콧의 원작 소설을 사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내가 읽어야 할 책들이 두 권이나 쌓여 있어서 당장 책을 구매하지는 않겠지만 150여 년 전에 쓰인 소설이 너무나도 간절하게 사고 싶어지는 이유는 역시나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이 그만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진정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영화 중에서 [기생충]을 제외하고 가장 좋았던 영화를 꼽으라면 나는 [작은 아씨들]은 주저 없이 선택할 것이다. (아직 [1917]과 [포드 V 페라리]를 보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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