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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딜릴리] - 어쩌면 우리에게도 딜릴리와 오렐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12  쭈니 2019.11.25 15:39:04
조회 77 댓글 0 신고

감독 : 미셸 오슬로

더빙 : 프루넬 샤를-암브롱, 엔조 라티토

프랑스 애니메이션, 이번에도 성공이다.

요즘 극장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의 열풍이 한창 진행 중이다. 우리 가족 역시 지난 일요일 아침에 [겨울왕국 2]를 보고 왔다. 북적이지 않고 한산하게 보고 싶다는 욕심에 8시 50분 조조 시간대로 예매를 했지만 이미 극장 안은 [겨울왕국 2]를 보러 온 관객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 우리 가족을 사로잡은 애니메이션은 [겨울왕국 2]가 아니었다. 토요일 저녁에 집에서 본 프랑스 애니메이션 [파리의 딜릴리]이다.

내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디즈니의 [인어공주]부터 였기 때문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내 사랑은 각별하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독특한 그림체와 주제가 돋보이는 프랑스 애니메이션을 즐긴다. 작년 추석 연휴에 본 클레이 애니메이션 [내 이름은 꾸제트], 지난 2월에 본 실뱅 쇼메 감독의 [벨빌의 세 쌍둥이] 등, 1년에 고작 한 두 편에 불과하지만 프랑스 애니메이션은 내게 언제나 만족감을 안겨줬었다.

[파리의 딜릴리]도 마찬가지이다. [파리의 딜릴리]는 풍요로운 예술의 전성기인 벨 에포크 시대의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평화로운 이 도시에 갑자기 어린 여자아이들만 납치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카나키에서 온 어린 소녀 딜릴리(프루넬 샤를-암브롱)와 배달부 소년 오렐(엔조 라티토)가 파리 예술인들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정교한 배경, 단순한 캐릭터

아마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파리의 딜릴리]의 스틸 사진만 봐도 거부감이 밀려올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파리의 딜릴리]의 캐릭터 디자인은 단순해도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딜릴리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키가 작은 3등신 여자아이이다. 그에 비해 딜릴리와 함께 사건 해결에 나서는 오렐은 과할 정도로 하얀 피부에 삐쩍 마른 소년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속 매력적인 주인공들과 비교한다면 딜릴리와 오렐은 평범하기만 하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은 영화 속 파리 전경은 탄성이 나올 만큼 정교하다. 알고 보니 사진 기법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는 다시 말해 파리의 실제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후 그 위에 3D 작업을 해서 영화 속의 배경으로 이용한 것이다. 이 작업은 굉장히 효율적이었는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처럼 수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활용할 수 없었던 [파리의 딜릴리] 입장에서는 최대한 적은 비용으로 가장 아름다운 배경을 만들어낸 셈이다.

이렇게 사진 기법으로 완성된 정교한 배경과 평범해도 너무 평범한 단순한 캐릭터는 [파리의 딜릴리]를 보는 내게 색다른 감흥을 안겨줬다. 배경과 캐릭터가 너무 이질적이어서 서로 다른 애니메이션이 하나로 합쳐진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한 독특함은 저예산 프랑스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했던 번득이는 아이디어일 것이다.

치밀함이 부족한 딜릴리와 오렐의 모험

솔직히 냉정하게 따진다면 딜릴리와 오렐의 모험은 당위성이 부족하다. 딜릴리와 오렐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절친이 되더니 갑자기 파리의 여아 납치 사건을 함께 파헤쳐 보자고 의기투합한다. 그리고는 파리의 시내의 유명인들을 찾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여아 납치 사건의 배후 조직인 마스터맨 조직을 일망타진하며 여자아이들을 구하기까지 한다.

[파리의 딜릴리]는 파리의 여아 납치 사건을 파헤친다는 스릴러적 설정을 지니고 있고, 마스터맨이라는 조직의 음모를 저지하는 첩보 영화와 같은 전개를 지닌다. 스릴러와 첩보, 이들 장르는 치밀함을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데 [파리의 딜릴리]에는 그런 치밀함이 부족하다.

하지만 굳이 이 영화에 치밀함을 기대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파리의 딜릴리]가 가지고 있는 미덕은 장르적 치밀함이 아닌 예술의 전성기인 벨 에포크 시대에 대한 향수와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경고이기 때문이다. 마스터맨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있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 남성 중심적 보수 세력이다. 미셸 오슬로 감독은 마스터맨의 음모에 맞선 딜릴리, 오렐의 모험을 통해 요즘의 우리들에게도 강력한 메시지를 남긴다.

네발이를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잘못된 생각이다.

여성이 더 이상 남성에게 종속되지 않고 교육을 통해 주체적인 존재로 발돋음했던 벨 에포크 시대. 퀴리 부인, 카미유 클로델 등 시대를 앞서나간 여성들은 문화 예술적으로 많은 공헌을 했다. 하지만 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그들이 조직한 것이 마스터맨이다. 마스터맨은 남성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여성을 만들기 위해 어린 여아 아이들을 납치하여 어릴 때부터 복종의 교육을 시킨다.

맞다. 너무 과장된 이야기이다. 마스터맨에게 납치된 여자아이들은 두발이 아닌 네발로 기어 다닐 것을 강요당한다. 다시 말해 인간이 아닌 짐승 취급을 받는 것이다. 영화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이다. 아무리 정신 나간 남성 우월주의자라고 할지라도 그런 짓을 할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을 테니까.

분명 과장된 설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 이어진 사회적 인식으로 인하여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겨야만 하는 여성에 대한 우리들의 잘못된 생각들에 대한 따끔한 지적이기도 하다. '여자는 이래야 돼.'라는 수많은 족쇄들. 어쩌면 우리도 이 잘못된 인식을 깨기 위해 딜릴리와 오렐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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