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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팀 밀러

주연 : 맥켄지 데이비스, 아놀드 슈왈제네거, 린다 해밀턴, 나탈리아 레이즈, 가브리엘 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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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새록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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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 2일, 당시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중이었던 나는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을 보기 위해 벅찬 기대를 안고 종로 3가 서울극장으로 향했다.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의 국내 개봉일은 7월 6일, 결국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무려 한 달가량 기다려야 했고, 인터넷 예매라는 것이 없던 시절, 극장에서 줄을 서서 예매에 성공한 후 환희에 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영화를 본 후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다. 이는 당시 영화를 보고나면 꼼꼼하게 적어놓았던 나의 영화 일기에 잘 드러난다.

제작비가 자그마치 약 800억 원이 들었다는 화제의 영화. 최고의 근육질 배우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제임스 카메론 감독. 그리고 몇 해 전에 대히트를 한 [터미네이터]의 속편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처음부터 죽이고 부수면서 시작되는 이 영화는 단순한 폭력 영화가 아닌 인간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예고의 영화로 특수효과까지 훌륭해 지금 전 세계에서 대 히트 중. 특히 로버트 패트릭이 맡은 T-1000의 다재다능하게 변하는 모습은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낼만하다. 빌딩 하나를 엉망으로 만들고 수십 대의 자동차와 대형 트럭, 헬기까지 아까운 것 없이 부숴버리는 장면은 관객들의 비난과 부러움을 살만했다. 지금까지 할리우드의 흥행을 장식했던 소규모 제작비의 애정, 코미디 물을 모두 잠재워 버린 대규모 액션 대작.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의 흥행 성공 이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흥행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애타게 기다렸던 3편에 대한 소식을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빠진 상황에서 12년 만인 2003년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이 만들어졌지만 기대 이하였고, 2009년 [터미네이터 : 미래 전쟁의 시작], 2015년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까지 '터미네이터'의 영광을 잇는데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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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론의 선언으로 기대치가 무한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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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더 이상 가만있지 않았다. 자신에게 명성을 안겨준 '터미네이터'가 이렇게 세계관이 꼬이고 꼬여서 망가져만 가는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나 보다. 그는 '아바타' 시리즈를 네 편 동시에 만드는 바쁜 일정 가운데에도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 제작에 참여했고, 이 영화만이 [터미네이터]와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을 잇는 정식 3편임을 만천하에 선언했다.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이 개봉한지 무려 28년 만의 일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어찌 기대하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고등학교 3학년에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을 봤던 나는 이제는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데리고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를 보러 갔다. 28년이라는 세월은 이렇게나 엄청난 것이다. 극장으로 가는 길, '터미네이터'에 대해 알 리가 없는 아들에게 [터미네이터]와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이야기해줬고, 이 영화의 의의에 대해서도 장황하게 설명해줬다. 사실 아들에게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를 보여 주기 전 [터미네이터]와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을 먼저 보여줬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요즘 고등학생은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과는 달리 엄청나게 바쁘기에 복습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한다.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을 잇는 정통 3편답게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는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가 정신병원에 갇혀 '심판의 날'이 올 것이라 울부짖는 2편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사라 코너의 선언대로 그녀는 '심판의 날'을 막아냈다. 하지만 결코 아들인 존 코너(에드워드 펄롱)의 죽음은 막지 못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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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미래, 하지만 변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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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코너의 활약으로 1997년 8월 29일 일어날 예정이었던 '심판의 날'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고, 인공지능 컴퓨터 스카이넷은 개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류의 미래는 바뀐 것일까?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다. 사라 코너의 푸념대로 인간의 어리석음은 또 다른 인공지능 컴퓨터를 만들어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리전은 제2의 스카이넷이 되어 또다시 인간과의 전쟁을 벌인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리전은 인간 반항군 지도자인 대니 라모스(나탈리아 레이즈)를 제거하기 위해 '터미네이터' Rev-9(가브리엘 루나)를 과거로 보내고, 인간 저항군 또한 대니 라모스를 지키기 위해 강화 인간 그레이스(맥켄지 데이비스)를 과거로 보낸다. 마치 [터미네이터]에서 스카이넷이 사라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T-800(아놀드 슈왈제네거)을 과거로 보내고, 인간 저항군은 사라 코너를 지키기 위해 카일 리스(마이클 빈)를 보낸 것과 비슷한 전개이다.

새롭게 등장한 Rev-9이 액체 금속형 '터미네이터'라는 점은 명백히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을 떠오르게 한다.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에서 스카이넷이 존 코너를 제거하기 위해 보낸 T-1000(로버트 패트릭)은 당시로는 획기적인 액체 금속형 '터미네이터'로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의 흥행 성공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 바 있다. 그리고 T-800이 인간에 의해 재프로그래밍되어 존 코너를 지키는 인간 저항군의 아군이 되었다는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의 설정은 존 코너 암살에 성공한 T-800이 스스로 인간화되어 대니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는 내용으로 살짝 변주되었다. 결국 미래는 바뀌었지만 인공지능 컴퓨터와의 전쟁은 변한 것이 없듯이, 28년 만에 나온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는 1, 2편에 비해 바뀐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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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것 없음의 장점과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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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는 [터미네이터]와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을 그대로 계승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보여준다. 문제는 그것이 장점과 단점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먼저 장점부터 이야기하자면... 나와 같은 올드팬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한다. 특히 Rev-9에게 쫓기는 그레이스와 대니 앞에 사라 코너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에선 짜릿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제임스 카메론이 직접 린다 해밀턴을 설득했다고 하는데 과연 제임스 카메론이 정성 들여 린다 해밀턴을 캐스팅한 이유가 충분했다.

[터미네이터]와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을 본지 워낙 오래되어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영화 장면 장면마다 왠지 낯익은 장면들이 튀어나오는 것은 28년을 기다려온 팬에 대한 서비스처럼 느껴졌다. 특히 액체 금속형 '터미네이터' Rev-9은 T-1000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는데 2015년 개봉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서 이병헌이 T-1000으로 등장했을 만큼 인기가 있는 캐릭터이기에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에서 굳이 다시금 액체 금속형 '터미네이터'를 꺼내든 것은 올드팬을 위해서 탁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있다. 일단 새롭지가 않다.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존 코너를 죽이고 새로운 인류의 희망으로 멕시코계 여성 대니 라모스를 내세우며 새로움을 추구했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전개가 전편을 그대로 따르다 보니 2시간 8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조금 지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Rev-9는 쫓아오고, 대니 일행을 도망가고, 새로운 설정 없이 그러한 단순한 전개가 2시간 넘도록 이어진다. 아무리 액션 장면이 엄청나다고 해도 새로움이 없다는 것은 내게 허전함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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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치를 채우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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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에 대한 내 전체적인 평가는 기대에는 못 미친다는 것이다. 영화에 대한 평가도 제임스 카메론이 손을 뗀 다른 '터미네이터' 영화들보다는 완성도가 뛰어나지만 [터미네이터],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보다는 떨어진다는 평이 많다. 나도 그러한 평에 동감한다. 28년 만에 만들어진 정식 3편이니만큼 기대가 컸는데,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는 그 기대를 채우기엔 약간 모자라다.

영화의 전개가 너무 전 편을 답습해서 새로움이 없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주인공인 대니 라모스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굳이 존 코너를 죽이고 새롭게 등장하는 주인공인 만큼 존 코너를 뛰어넘는 매력이 필수적이어야 했는데, 내가 보기엔 인류의 구원자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미국인에서 멕시코인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였다. Rev-9과의 최후의 혈전에서도 별 작전 없이 도망치기 싫다며 그냥 끝장을 보겠다는 그녀의 선언은 인공지능 컴퓨터 리전에 맞서는 인간 저항군 지도자로 자질이 부족해 보이기까지 했다.

근육질로 뒤덮인 위협적인 '터미네이터' T-800의 노년이 된 모습도 안쓰러웠다. T-800이 누구인가? [터미네이터]에서 관객의 두려움을 쥐어짰던 악당이었고,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에서는 액체 금속형 '터미네이터' T-1000의 무시무시한 위력 앞에서 꿋꿋하게 존 코너를 지킨 든든한 아군이었다. T-800 자체가 영화 '터미네이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그가 이젠 백발의 노년이 되어 인간성마저 갖게 되었다니 내가 알던 T-800이 아닌 것 같아 이질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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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의 간극이 이렇게도 컸던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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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는 28년이라는 세월의 무게감을 더욱 크게 느낀 영화가 되었다. 하긴 당연하다.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을 보던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이제 고등학생 아들을 둔 중년이 되어 있으니까. 그러한 세월의 무게감은 전 편의 주역들에게도 해당된다. 만약 존 코너를 연기한 꽃미남 배우 에드워드 펄롱이 28년의 세월 동안 그렇게 망가지지 않았다면 굳이 대니 라모스를 내세우는 모험이 필요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존 코너의 흔적을 지우려다 보니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의 설정 자체가 약간씩 어긋난 것이 아닌가 싶다.

28년이라는 세월은 에드워드 펄롱뿐만 아니라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린다 해밀턴도 늙게 만들었다. 특히 노년이 된 T-800의 모습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CG를 통해 T-800의 모습을 젊은 예전의 모습으로 구현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는 그냥 자연스럽게 세월의 흔적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을 택하였다. 모르겠다.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좋았을 관객도 있겠지만 나는 기계가 세월이 지나며 늙는다는 설정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만약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가 28년이 아닌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 이후 4년 정도 흐른 뒤에 개봉했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존 코너를 지우고 대니 라모스를 내세웠을까? 그때도 T-800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늙는다는 설정이 있었을까? 모든 것을 세월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확실한 것은 1991년 8월 2일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을 보며 느꼈던 경이로움을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에서는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터미네이터 2 : 심판의 날]에서 T-800은 "I'll be back"이라는 유명한 명대사를 남겼다. 그 약속이 좀 더 빨리 이루어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