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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이안

주연 : 윌 스미스,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클라이브 오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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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에 이은 이안 감독의 SF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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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감독의 이력은 참 독특하다. 나는 그의 영화를 1993년 국내 개봉한 [결혼 피로연]으로 처음 접했다. 대만에서 뉴욕으로 건너와 부동산 딜러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웨이퉁이 결혼을 종용하는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웨이웨이와 위장 결혼을 한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웨이퉁에게는 동성 애인 사이먼이 있다는 점이다. 결국 웨이퉁과 웨이웨이, 사이먼의 관계는 '결혼 피로연'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로 들통이 나고 만다. [결혼 피로연]은 동양과 서양의 결혼 문화의 차이를 유쾌하게 그려낸 영화로 대만 출신 미국 감독인 이안 감독에겐 최적화된 영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안 감독은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서부터 의외의 선택을 한다. 19세기 말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인 이 영화에서 이안 감독은 서양적 고전미가 물씬 풍기는 영상미를 선보였다. [아이스 스톰]에서는 미국 중산층의 위기를 그렸고, [라이드 위드 데블]에서는 서부극에 도전을 했다. 급기야 [브로크백 마운틴]에서는 거친 서부 사나이들의 애틋한 동성애를 담아내는 파격을 선보이며 제78회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안 감독의 이력에서 가장 독특한 영화는 2003년 국내 개봉한 [헐크]이다. 에릭 바나와 제니퍼 코넬리를 캐스팅한 [헐크]는 완벽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 간의 갈등이라는 동양적인 정서를 담아낸 영화였다. 아마도 마블 영화 중에서 가장 독특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헐크]는 흥행에 실패했고, 마블은 MCU를 위해 에드워드 노튼을 캐스팅한 [인크레더블 헐크]를 제작함으로써 이안 감독의 [헐크]를 지우려 했다. 결과적으로 [인크레더블 헐크] 또한 흥행에 실패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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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니 맨]은 어떤 결과를 안겨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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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의 실패 이후 이안 감독은 [색, 계], [라이프 오브 파이] 등 동양적 정서를 담은 영화 연출에 주력한다. 특히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이안 감독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안겨줌으로써 이안 감독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이안 감독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또다시 도전을 선택한다. 그것이 바로 [제미니 맨]이다. 최강의 암살 요원 헨리(윌 스미스)가 자신의 복제 인간에게 쫓기게 된다는 내용을 담은 [제미니 맨]은 겉보기엔 완벽한 할리우드 SF 액션 블록버스터로 보인다. [헐크]를 잇는 이안 감독의 블록버스터로의 두 번째 도전인 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미니 맨]의 북미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다. 개봉 첫 주 2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조커]와 애니메이션 [아담스 패밀리]에 밀려 3위에 올랐다. 반전이 없는 한 흥행 성적을 1억 달로 이상 올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순수 제작비만 1억3천8백만 달러로 알려져 있기에 [제미니 맨]의 실패는 더욱 뼈아파 보인다. 참고로 [헐크]의 개봉 첫 주 성적은 6천2백만 달러, 북미 최종 성적은 1억3천2백만 달러이다. [제미니 맨]은 [헐크]에도 한참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일요일 아들과 함께 [제미니 맨]을 봤다. 흥미로운 것은 [제미니 맨]을 보며 [헐크]가 자꾸만 떠올랐다. [헐크]에서 브루스 배너(에릭 바나)와 데이비드 배너(닉 놀테)의 부자간의 갈등은 브루스 배너의 이중 자아인 '헐크'에 의해 표출된다. [제미니 맨] 역시 마찬가지이다. 겉보기엔 복제 인간과의 전투를 다룬 SF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이안 감독은 [헐크]에 이어 [제미니 맨]에서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외형 속에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동양적 정서를 담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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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스미스로 완성된 전형적인 최강의 특수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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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니 맨]에서 헨리는 전형적인 최강의 특수 요원이다. 그는 달려는 기차에 타고 있는 타깃을 기차 밖에서도 정확하게 맞힐 수 있는 저격수로서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은퇴를 선언한다. 지금까지 국가를 위해 타깃을 죽여 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웠던 것이다. 그는 이제 특수 요원으로서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보통의 평범한 인생을 살고자 한다.

대부분의 이런 유의 영화에서 주인공의 은퇴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은밀하게 '제미니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기던 클레이(클라이브 오웬)는 헨리가 '제미니 프로젝트'에 대해서 뭔가 낌새를 눈치챘다고 생각하고 그를 제거하려 한다. 물론 순순히 당할 헨리가 아니다. 집을 포위한 수십 명의 특수요원들을 제거하고 빠져나온 헨리는 은퇴 요원 감시 임무를 맡고 있는 대니(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까지 구해서 도망자의 길을 나선다.

뻔해도 너무 뻔하다. 최강의 특수 요원의 은퇴, 조직의 배신, 게다가 낸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든 마당에 적일지도 모를 여성까지 구해 남녀 비율을 맞추는 탁월한 쇼맨십까지... 여기에 배런(베네딕 웡)이라는 조력자까지 끌어들이며 헨리는 클레이가 감추고 있는 '제미니 프로젝트'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쯤 되면 '제이슨 본 시리즈'의 아류작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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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의 등장, 그리고 주저하는 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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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헨리가 클레이의 음모를 밝혀내고 누명에서 벗어나 행복한 은퇴 생활을 즐기게 된다면 개성 없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액션 영화 중 한 편으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이안 감독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다. 클레이는 헨리를 제거하기 위해 주니어라는 이름의 킬러를 투입한다. 주니어는 고아 출신으로 클레이에겐 아들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니어의 모습이 헨리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그렇다. 주니어는 헨리의 복제 인간이다.

이때부터 [제미니 맨]은 기존의 영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선회한다. 주니어의 모습을 확인한 헨리는 그를 죽이는 것을 주저한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잔인한 상황에서 헨리는 주니어에게 뭔가 특별한 감정을 느낀 것이다. 그것은 주니어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눈치챈 대니는 주니어와 헨리의 DNA를 분석하여 두 사람이 동일 인물임을 밝혀낸다. 이제 헨리는 주니어를 제거하고 클레이의 음모를 밝히기 보다는 클레이에게 속고 있는 주니어를 구해내는 임무에 몰두한다.

사실 복제 인간이 특별한 소재인 것은 아니다. 1996년 7월 세계 최초로 포유동물 복제에 성공한 이후 복제 인간이라는 소재는 할리우드 SF 영화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설명한 영화는 지금까지 없었다. 헨리는 주니어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그가 자신처럼 인간 병기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럼으로써 [제미니 맨]은 전형적인 액션 영화의 틀에서 한참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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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너의 30년 후 모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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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미니 맨]을 아들과 함께 보는데 약간 주저했었다. 총격씬이 난무하고 살인을 별일 아닌 것처럼 저지르는 액션 영화를 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아들과 함께 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총격씬이 난무하고 살인을 별일 아닌 것처럼 저지르는 영화는 맞지만, 결국엔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헨리는 주니어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너의 30년 후 모습이야." 이 말에 주니어는 질색을 하지만 헨리는 "왜 이 정도면 꽃 중년이잖아."라며 항변을 한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이 너무 정겨워 보였다. 그리고 나도 영화가 끝난 후 아들에게 똑같이 이야기해줬다. "아들, 너의 30년 후의 모습이 바로 나란다." 그 말에 아들은 영화 속 주니어가 그랬던 것처럼 절망에 빠진다. 덕분에 헨리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내가 어때서?'라며 아들과 유쾌하게 티격태격할 수 있었다.

며칠 전 봤던 [북클럽]에서 다이앤(다이안 키튼)은 딸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은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그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모범을 보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실수를 아들이 반복하지 않도록 조언을 해줄 수는 있다. 평생 인간 병기로 살아온 헨리는 주니어만큼은 평범한 인생을 살도록 이끌어 준다. 나 역시 아들이 나와는 다르게 하고 싶은 것을 직업으로 삼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것이 [제미니 맨]을 통해 이안 감독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