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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미이케 다카시

주연 : 사쿠라이 쇼, 히로세 스즈, 후쿠시 소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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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관람을 최대한 자제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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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우리나라에 수출 규제를 하면서 전국적으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도 당연히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참여했는데, 그다지 소비형 인간이 아니다 보니 막상 참여하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라. 기껏 해봐야 일본 맥주 안마시기 정도... 고심 끝에 광복절이 있는 8월까지 만이라도 일본 영화를 안 보겠다고 결심했다. [옷코는 초등학생 사장님!], [라플라스의 마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등의 영화가 대상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라플라스의 마녀]는 5월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려고 했을 정도로 내겐 기대작이었다. 원작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이고, 19세기 프랑스의 천재 수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가 제창한 '라플라스의 악마' 가설을 소재로 했다는 점도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도 내게 가장 무서운 영화로 기억되는 [오디션]을 연출한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영화라는 것도 [라플라스의 마녀]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지난 8월 oksusu에서 프리미어 콘텐츠로 풀려서 프리미어 회원인 나는 무료로 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꾹 참았다. 나와의 약속이니까... 9월이 되어서도 당장 [라플라스의 마녀]를 볼 수는 없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수출 규제를 더욱 강화했고, 그럴수록 일본에 대한 내 반감도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 이즈 백]이라는 암울한 영화를 보고 나니 기분 전환이 필요했고, [라플라스의 마녀]는 내 기분 전환을 위한 최적의 선택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솔직히 이 영화는 내 기분 전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영화 자체가 너무나도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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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악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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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라스의 마녀]에서는 영화의 소재가 된 '라플라스의 악마' 가설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특정한 순간에 모든 물질의 역학적 상태와 에너지를 알 수가 있고 그 모든 데이터를 분석 가능한 능력과 지성을 갖췄다면 그 지성의 소유자에게 불확실한 것은 모두 사라지고 그 사람 눈에는 미래 역시 과거를 보듯 훤히 보일 것이다. 따라서 미래에 어떤 상태가 될지 완벽히 예지할 수 있다.'

조금 어렵다면 영화 속의 키이메이 대학병원 뇌신경외과 우하라 젠타로(릴리 프랭키)박사가 화학자인 아오에 슈스케(사쿠라이 쇼) 교수에게 설명하는 것을 참조하면 된다. 타로 박사는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 주사위의 어느 숫자가 나올 것인지 정확하게 예측하는 아마카스 켄토(후쿠시 소우타)의 영상을 보여준다. 그는 어떻게 주사위의 숫자를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일까?

'켄토가 주사위 눈을 맞히는 건 손을 떠난 직후예요. 손에 들고 있는 동안은 어떤 숫자가 나올지 몰라요. 손을 떠난 순간 주사위에 작용하는 힘은 중력, 거의 무시해도 되는 공기 저항, 또한 책상에 떨어지는 낙하 각도, 관성 모멘트, 책상과의 반발 계수, 마찰력, 그런 것들에 영향받으며 주사위는 구르다가 멈추죠. 이 일련의 물리 현상에 예측 불가한 요소는 전무해요. 따라서 손을 떠난 순간 주사위 눈은 결정돼 있죠.' 젠타로 박사의 설명에 의하면 주사위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주사위에 가해진 물리 현상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면 주사위의 숫자를 맞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이러한 '라플라스의 악마' 가설을 통해 흥미진진한 스릴러 영화를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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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온천 휴양지에서 벌어진 황화수소 중독 사망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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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유명 온천 휴양지에서 영화 제작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사인은 황화수소 중독. 문제는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탁 트인 곳이라 황화수소 중독의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문제는 얼마 뒤 또 다른 온천 휴양지에서 무명의 영화배우가 황화수소 중독으로 사망하는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나카오카 유지(타마키 히로시) 형사는 보험금을 노린 영화 제작자의 부인의 범행으로 의심하지만 슈스케 입장에서는 그녀가 황화수소를 이용해서 어떻게 두 사람을 살인했는지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바로 그때 슈스케 앞에 우하라 마도카(히로세 스즈)라는 의문의 소녀가 나타난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를 찾아야 한다며 슈스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마도카를 쫓는 의문의 집단으로부터 슈스케는 켄토와 마도카가 뇌 수술을 통해 '라플라스의 악마' 능력을 갖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마도카는 여성이기에 스스로 '라플라스의 마녀'라고 자신을 칭한다.) 결국 켄토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기류를 읽고 황화수소가 움직임을 예측하여 두 사람을 살해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켄토는 그런 살인 행각을 벌인 것인가? [라플라스의 마녀]는 8년 전 켄토에게 일어난 비극과 그로 인한 켄토의 복수를 통해 스릴러 영화의 재미를 획득한다. 하지만 흥미진진하게 시작했던 영화는 중반부부터 조금씩 기운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후반부 진범이 드러나며 급속도로 영화적 재미를 잃어간다. 진범이 켄토 앞에 말도 안 되는 궤변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장면에서는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영화란 자고로 끝을 잘 맺어야 하는데, [라플라스의 마녀]는 용두사미라는 말리 어울리는 그런 아쉬운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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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이 매력적인 소재를 이렇게 끝내야만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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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원작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읽어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은 이렇게 허술하지 않았다. 게다가 <라플라스의 마녀>는 히가시노 게이고 데뷔 30주년 기념 대작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소설이지 않은가. 특히 천재적인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를 내세운 '갈릴레오'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라플라스의 마녀>도 가설이긴 하지만 물리학 이론을 소재로 하고 있어서 어쩌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특기가 가장 잘 묻어나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는 맥이 탁하고 풀린다. 탁 트인 곳에서의 황화수소 중독 사망사건이라는 설명이 되지 않는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의기양양하게 시작되지만 마도카의 등장과 젠타로 박사의 친절한 설명으로 모든 의문은 빠르게 해결된다.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가 등장하긴 형사로서의 감이라며 억지 주장만 하다가 어영부영 사라지고, 주인공인 슈스케 역시 별다른 활약 없이 그냥 얼굴만 내비친다.

그래도 '라플라스의 악마' 능력을 가지게 된 켄토에게 마지막까지 기대를 걸며 영화를 봤지만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켄토의 마지막 복수에서 맥이 확 풀려버린다. 원작 소설을 2시간 남짓 영화로 압축하면서 벌어진 문제인 건지, 원작 자체가 이따위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원작 소설을 읽고 싶은 생각도 사라져 버렸다.) 확실한 것은 [라플라스의 마녀]로는 기분 전환이 전혀 안되었다는 사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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