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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 이지은의 각기 다른 네 개의 모습
12  쭈니 2019.04.22 14:48:35
조회 80 댓글 0 신고

단편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러닝타임이 10분에서 30분에 불과한 단편 영화로는 캐릭터의 세심한 완성, 스토리의 꼼꼼한 전개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옴니버스 영화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냥 그것이 내 영화 취향이다.

하지만 [페르소나]는 궁금했다. [페르소나]는 극장 개봉작이 아닌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단편 영화 모음이다. 한가지 특이한 것이 있다면 옴니버스 영화의 경우 대개 한가지 소재를 가지고 여러 감독이 연출하는데 반에, [페르소나]는 가수 아이유로 잘 알려진 이지은을 매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페르소나'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페르소나'의 사전적 의미는 '가면'을 나타내는 그리스 어원에서 비롯되었으며, 흔히 '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이라는 심리 용어로 통용된다. 영화에서는 감독이 자신의 영화 세계를 대변할 수 있는 특정한 배우를 일컫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페르소나]를 연출한 네 명의 감독은 이지은에게 그 어떤 가면을 쓴 인격이 보였고, 어떤 영화 세계를 대변시켰을까?

TRACK #1 러브세트 : 섹시하지만 미성숙 소녀

감독 : 이경미

주연 : 이지은, 배두나, 김태훈

이경미 감독은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안면홍조증에 걸린 비호감 고등학교 교사 양미숙(공효진)을 내세운 연출 데뷔작 [미쓰 홍당무]가 그러했고, 정치 스릴러를 표방했으면서 국회 입성을 노리는 야심가 김종찬(김주혁)보다는 갑자기 사라진 딸의 행방을 찾아 나선 김종찬의 아내 김연홍(손예진)에 포커스를 맞춘 [비밀은 없다]도 그러했다. 그래서일까? [러브세트]에서도 아빠(김태훈)를 사이에 둔 딸 아이유(이지은)과 연인 두나(배두나)의 캐릭터가 돋보인다.

두나가 아빠와 결혼을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아이유는 남자 친구에게 두나를 꼬시라는 도발적인 부탁을 한다. 아이유의 질투를 눈치챈 두나는 아이유에게 테니스 경기를 제안한다. 아이유가 이기면 두나는 아빠와 헤어지고, 아이유가 지면 아이유가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이후 영화는 두 여자의 불꽃 튀는 승부를 잡아낸다. 두 남자는 그저 두 여자의 승부를 바라보는 관객에 불과하다.

두 여자의 테니스 승부를 통해 이경미 감독은 이지은의 어떤 면을 부각시키고 싶었을까? 일단 이경미 감독은 이지은의 섹시함을 강조한다. 자두를 도발적으로 먹는 이지은의 입술, 짧은 테니스복 사이에 드러난 허벅지, 그리고 땀에 젖은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낸다. 그런데 이런 섹시함과는 달리 아이유는 아빠의 사랑을 방해하는 미성숙한 소녀의 심리를 드러낸다. 아마도 이경미 감독은 이지은에게 외적인 섹시함과 내적인 순수함을 동시에 본 것은 아닐까?

TRACK #2 썩지 않게 아주 오래 : 팜므파탈

감독 : 임필성

주연 : 이지은, 박해수

임필성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초기에는 공포 영화 [남극 일기], [헨젤과 그레텔]을, 가장 최근에는 정우성, 이솜 주연의 격정 멜로 [마담 뺑덕]을 연출했다. [썩지 않게 아주 오래]는 딱 중간에 있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우(박해수)의 목이 잘리는 장면, 정우가 자신의 몸에서 심장을 꺼내는 엽기적인 장면들은 공포 영화감독의 장기가 발휘되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정우의 사랑을 비웃는 은(이지은)의 모습은 [마담 뺑덕]의 덕이(이솜)만큼 치명적이다.

정우는 신비한 분위기를 지닌 은의 매력에 빠져있다. 하지만 은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며칠 동안 여행을 다녀오는 등 정우를 불안하게 만든다. 오랜만에 나타난 은은 남자 친구들과 외딴섬에 가서 서핑을 즐겼다고 이야기를 하고, 정우와 만나는 동안 지루하다는 듯 핸드폰만 응시하더니, 중간엔 회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나가서 다른 남자와 키스를 한다. 이러한 은의 태도에 화를 내는 정우. 결국 정우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심장을 꺼내 은에게 바친다.

[러브세트]와는 달리 [썩지 않게 아주 오래]에서의 이지은의 모습은 파격적이라 할만하다. 섹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순수했던 [러브세트]의 아이유와는 달리 [썩지 않게 아주 오래]의 은은 섹시하고, 도발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정우의 마음을 가지고 논다. 은의 매력 앞에 정우는 심장을 내어주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팜므파탈이라고나 할까. 임필성 감독의 눈에 이지은은 그렇게 비추어졌나보다.

TRACK #3 키스가 죄 : 당돌한 말괄량이

감독 : 전고은

주연 : 이지은, 심달기, 이성욱

전고은 감독은 저예산 독립 영화에서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전설적인 독립 영화라 할 수 있는 [족구왕]이 그녀가 제작, 기획을 맡은 영화였고, 이후 [돌연변이], [범죄의 여왕], [굿바이 싱글]을 통해 각색가로서의 명성을 쌓아 올렸다. 그런 전고은 감독이 첫 메가폰을 잡은 영화는 [소공녀]이다. 집은 없지만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한 모금의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3년 차 프로 가사도우미 미소(이솜)의 일상을 잡아낸 [소공녀]는 사랑스러운 현대판 '소공녀'의 도시 하루살이를 잡아낸 독특한 저예산 독립 영화이다. 그리고 [키스가 죄]도 [소공녀]만큼이나 독특하다.

한나(이지은)는 베프 해복(심달기)이 연락도 없이 등교를 하지 않자 그녀를 찾아 해복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해복의 아버지 정근(이성욱)은 한나를 내쫓고, 수상한 기색을 느낀 한나는 정근이 출근하자 정근의 집에 잠입, 정근에게 머리카락이 마구 잘려 있는 해복과 만난다. 해복은 한나에게 전날 밤 몰래 바닷가에 갔다가 모르는 남자와 키스를 했다고 고백하고, 한나는 해복을 이렇게 만든 정근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러브세트], [썩지 않게 아주 오래]와는 달리 [키스가 죄]의 분위기는 발랄하다. 이 영화에서 이지은은 당돌한 시골 아이로 등장해서 친구의 복수를 위해 귀여운 방법을 동원한다. 마치 [나 홀로 집에]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나와 해복의 복수를 실패로 돌아가고, 그 여파로 산림청 산불관리를 하던 정근의 집은 홀라당 불에 타버린다. 아마도 4월 5일 공개 예정이던 [페르소나]가 강원도 산불로 인해 국가재난상태가 선포되자 4월 11일로 공개 일정을 뒤로 미룬 이유도 [키스가 죄] 때문이었을 것이다. 암튼 여성적인 매력을 내세웠던 앞의 두 영화와는 달리 전고은 감독은 말괄량이 소녀의 이미지를 이지은에게 발굴해냈다.

TRACK #4 밤을 걷다 : 스타 이지은

감독 : 김종관

주연 : 이지은, 정준원

윤계상, 정유미 주연의 [조금만 더 가까이], 한예리 주연의 [최악의 하루], 정유미, 한예리, 정은채, 임수정 주연의 [더 테이블]이 김종관 감독이 연출한 영화이다. 이들 영화의 특징은 영화 속 캐릭터들을 가만히 바라만 본다는 점이다.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영화는 그들을 쫓아가서 그들의 하루, 몇 시간을 관찰할 뿐이다. [밤을 걷다]도 그렇다. K(정준원)와 그의 여자친구 지은(이지은)이 함께 밤거리를 걷는 것이 영화의 전부이다.

K는 지은을 만나 밤길을 걷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은은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지은은 K에게 이건 꿈이고, 깨어나면 넌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비록 꿈이지만 K는 지은에게 왜 죽어야만 했는지 묻는다. 지은은 외로웠다고 말한다. K가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K를 제외한 모두가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것 같아 외로웠다고... 지은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K에게 지은은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말하며 이별을 고한다.

[밤을 걷다]는 흑백의 아름다운 화면 속에서 남녀가 옛일을 회상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영화의 전부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바로 지금 이지은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라 생각한다. 톱스타 이지은. 하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안티팬도 늘어나고, 그 속에서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이미 수많은 톱스타들이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던가. 앞선 세 편의 단편 영화에서 감춰진 이지은의 이미지를 드러냈던 것과는 달리, 김종관 감독은 바로 지금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이지은의 모습을 묵묵히 잡아낸다.

[페르소나]를 보며 느낀 점은... 역시 나는 단편 영화 취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솔직히 [페르소나]는 내게 재미가 없었다. 너무 짧은 이야기 속에 단편적인 이지은의 이미지를 잡아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재미있는 스토리가 함께 하는 장편 영화가 더 좋다.

비록 [페르소나]가 재미없긴 했지만 그래도 인상적이긴 했다. 이지은이라는 한 명의 배우를 통해 네 명의 감독이 서로 다른 이미지를 투영하는 방식이 독특했다. 섹시하기도 하고, 아직 어린애 같기도 하다가, 말괄량이의 모습을 보였고, 마지막엔 톱스타의 외로움을 담담하게 잡아낸 이 영화는 조금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이지은의, 이지은에 의한, 이지은을 위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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