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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 - 나이만 들었지, 결코 성년이 되지 못한 어른들에게...
12  쭈니 2019.04.13 09:17:08
조회 65 댓글 0 신고

감독 : 김윤석

주연 : 김혜준, 박세진, 염정아, 김소진, 김윤석

영화의 주제가 공감이 되었다.

솔직히 [미성년]을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번 주의 내 기대작은 [헬보이]와 [바이스]였고, 시간이 된다면 [파이브 피트]가 보고 싶었을 뿐이다. [미성년]은 배우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이긴 하지만 굳이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다. 사실 나는 '미성년'이라는 제목 때문에 김윤석이 고등학생인 딸의 친구와 불륜의 관계에 빠지는 그런 영화인줄 알았다. 어른과 미성년자의 사랑...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든, 아니면 불륜이든, 내 입장에서는 불편하긴 마찬가지이기에 일찌감치 [미성년]은 내 기대작 리스트에서 빠진 것이다.

그런데 그건 내 오해였다. [미성년]의 개봉이 다가오며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된 나는 이 영화가 어른과 미성년자의 사랑이라는 불편한 소재의 영화가 아닌,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어른들과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성년이 된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미성년]은 내 관심을 확 끌어당겼다. 왜냐하면 그런 [미성년]의 주제가 너무나도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를 기준으로 어른과 아이로 나눈다. 하지만 과연 나이가 들었다고 어른이 되는 걸까? 우리의 주변을 보면 나잇값을 못하는 어른들이 굉장히 많다.

몇 년 전 늦은 저녁 지하철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한 할아버지가 지하철에 올라타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다짜고짜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어떤 아저씨에게 손찌검을 날렸다. 젊은데 지하철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연히 손찌검을 당한 아저씨는 할아버지에게 강력하게 항의를 했고, 주변 사람들은 할아버지에게 달려드는 아저씨를 말렸다. 하지만 가해자인 할아버지는 아저씨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한 광경을 앞에서 지켜본 나는 나이가 지긋하게 든 할아버지가 어른이 아닌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비단 그 할아버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나 역시도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수도 없이 많이 했을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미성년]이라는 제목이 내겐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대원과 미희의 불륜이 가져온 폭풍 같은 사건

[미성년]은 가정이 있는 대원(김윤석)과 식당 주인 미희(김소진)의 불륜 관계를 바닥에 깔아 놓고 영화를 시작한다. 이미 대원과 미희의 불륜은 상당 부분 진행이 되어서 미희는 임신을 했고 배가 불러오고 있으며, 대원의 아내인 영주(염정아) 역시 남편의 불륜을 눈치챈 상황이다. 만약 [미성년]이 평범한 불륜 소재 영화라면 불륜 당사자인 대원과 미희, 그리고 영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미성년]은 그러한 평범함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아빠인 대원의 불륜을 몰래 훔쳐보는 여고생인 주리(김혜준)의 시선이다. 주리는 어떻게든 아빠의 불륜을 덮어서 없던 일로 만들고 싶다. 왜 아니겠는가? 아빠의 불륜이 밝혀지면 엄마와의 이혼은 뻔한 결과가 될 것이고, 부모의 이혼은 이제 대학 입시라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앞둔 주리에겐 커다란 재앙과도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희의 딸일 윤아(박세진)은 대원과 미희의 불륜이 몰래 덮어질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섰음을 안다. 미희는 임신을 했고, 두 사람 사이에서 애가 태어난다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그렇기에 윤아는 차라리 대원과 미희의 불륜을 영주에게 알리는 길을 선택한다. 대원이 영주와 이혼하고 미희와 결혼하든, 아니면 미희를 버리고 가정을 선택하든, 빨리 결론을 내서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던 것이다.

대원과 미희의 불륜에 대해 주리와 윤아의 대처 방식은 서로 다르다. 주리는 덮으려 하고, 윤아는 까발리려 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영화 초반 주리와 윤아는 대립을 하게 된다. 불륜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는 장면은 영주와 미희가 아닌 주리와 윤아에게서 발생한다. 하지만 미희가 예정일보다 빨리 아기를 낳으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어른답지 못한 '미성년' 어른들

미희가 아기를 낳는다. 아들이다. 그리고 그 현장에는 영주가 있었다. 이제 대원의 불륜은 더 이상 돌이킬 수가 없다. 그렇다면 불륜 사건의 당사자인 대원은 어떻게 이 상황을 수습할까?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영주와 이혼하고 미희와 새 출발을 하거나, 미희를 버리고 어떻게든 영주에게 용서를 빌거나, 하지만 대원의 선택은 이도 저도 아닌 도망치기이다. 미희의 입원 소식에 병원을 찾은 대원은 주리가 병원에 있는 것을 알고 서둘러 도망친다. 주리가 아무리 '아빠'라며 애타게 불러도 그는 우스꽝스럽게 도망치기 바쁘다. 집에 와서도 영주에게 변명만 한다. 도대체 자신이 저지른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 건지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다.

미희는 또 어떤가?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응석만 부린다. 윤아에게 '널 19살에 낳았고, 널 낳는 순간부터 내 인생은 없었다.'라며 울분을 터트리고, 윤아가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며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린다. 얼핏 보면 윤아가 엄마 같고, 미희가 딸 같다. 병원에서 자신에게 조언(혹은 참견)을 하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냐'라며 싸우자고 대든다. 주리가 '아줌마가 왜 화내냐'라며 어처구니없어 하는 상황이 이해된다.

영화를 보며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특히 대원의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봐온 가장 찌질한 성인 남자 캐릭터였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속 남자 캐릭터보다 더 찌질하다.) 김윤석이 대원 역을 다른 배우에게 미안해서 맡기지 못하고 자신이 직접 연기했다는 인터뷰가 이해가 되었다. 미희는 또 어떤가? 그녀는 마치 어리광만 부리는 사춘기 소녀 같다. 윤아를 낳음과 동시에 나이 드는 것을 멈춘 것만 같다. 그런데 [미성년]에서 거의 모든 성인 캐릭터들이 그렇다. 윤아의 아빠(이희준)는 도박에 빠져 찜질방 생활을 하는 인간 말종이고, 주리의 담임 선생(김희원)도 어른답지 않다. 영주만이 그래도 어른답게 행동하는 듯하지만, 그녀 역시 주리 앞에서 강한 척 연기를 하고 있는 것뿐이다. [미성년]은 제목 그대로 어른답지 못한 '미성년' 어른들의 총 집합체라 할만하다.

못난이는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이후 스포 포함)

대원은 도망치기 바쁘고, 미희와 영주는 자기 앞가림만으로도 벅차다. 그러한 상황에서 미희가 낳은 미숙아(태명 못난이)는 인큐베이터 안에 버려진채 남겨진다. 누가 뭐래도 대원과 미희의 불륜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못난이이다. 못난이라고 그러한 상황에서 태어나고 싶었을까? 대원과 미희는 책임지지도 못할 아기를 낳았고, 미희를 찾아간 영주 역시 어느 정도는 못난이가 미숙아로 태어나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 모두가 못난이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하지만 [미성년]의 어른 캐릭터들은 그 누구도 못난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결국 못난이를 챙기는 것은 주리와 윤아이다. 대원과 미희의 불륜 처리 방식을 놓고 영화 초반부터 대립을 했으며 격한 싸움까지 벌였던 두 사람은 못난이의 출생과 더불어 화해를 하고 못난이를 위해 힘을 합친다. 윤아는 못난이를 키우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을 세우고, 주리는 차라리 입양을 보내는 것이 낫지 않냐는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주리와 윤아가 이렇게 못난이를 위해 고민하고 애를 쓰는 상황에서 대원은 도망치고, 미희는 외면하고, 영주는 모르는척할 뿐이다. [미성년]을 보며 대원, 미희가 아닌, 주리와 윤아야말로 진짜 어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못난이의 죽음에 대처하는 주리의 당찬 행보는 더욱 눈길을 끈다. 반장을 맡을 정도로 우등생인 그녀는 못난이의 장례를 위해 시험을 포기한다. '너희 그러다간 후회한다.'라는 담임의 말에 냉소에 찬 표정으로 '거짓말'이라고 답변하는 주리의 모습을 보며 같은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 동생이 죽었는데, 시험 따위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주리도, 윤아도 그렇게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의 세상에서 아이답지 않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주리와 윤아가 영원히 못난이를 기억하는 방식

정작 못난이의 부모인 대원과 미희는 못난이의 죽음에 대해 관심도 없거나 애써 외면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리와 윤아는 자신들의 방식으로 못난이를 보내준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 여러 영아 시체가 한꺼번에 화장되지만 못난이만큼은 주리와 윤아가 지켜보는 가운데 화장 절차가 진행된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주리와 윤아는 대원과 미희가 사랑을 키운, 그렇기에 못난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폐장한 놀이공원에서 못난이의 유골과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 주리와 윤아 나름의 못난이를 위한 추모 행사인 셈이다.

문제는 주리와 윤아가 못난이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방식이다. 우등생인 주리는 암기과목에 약하다. 그녀는 아마도 꼭 외워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 부분만 찢어서 삼켜버렸을 것이다. 실제로 그러면 영원히 기억할 수 있다고 믿는 수험생이 많다. 주리는 그러한 자신의 공부 방식을 인용한다. 그리고 못난이의 유골을 초콜릿, 딸기 우유에 넣어 윤아와 함께 마신다. 그것이 주리와 윤아가 영원히 못난이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어찌 보면 엽기적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주리와 윤아가 아직은 '미성년'임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비록 주리와 윤아는 영화 속 다른 어른들보다 훨씬 성숙한 태도로 대원과 미희의 불륜에 맞서지만 그녀들 역시 아직은 '미성년'인 셈이다.

[미성년]은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김윤석은 첫 영화 연출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련했고, 주리와 윤아를 연기한 신인급 김혜준과 박세진의 연기도 수준급이었다. 단지 대원이 바닷가 시골마을에서 강도를 당하는 장면은 조금 어색했다. 그런 일을 당하면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경찰서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찌질한 대원이 받는 천벌(?)이라는 어색한 의미를 제외하고는 그 장면이 굳이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그것만 제외한다면 [미성년]은 나 역시 영화 속의 '미성년' 같은 어른은 아닌지 뒤돌아보게 만드는 의미심장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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