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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토마스 빈터베르그

주연 :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콜린 퍼스, 레아 세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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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스크' 침몰 사건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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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8월 12일 러시아 해군 북방 함대 소속 오스카급 핵잠수함 '쿠르스크' 함이 노르웨이 바렌츠해에서 군사 훈련 중 침몰했다. 사고 당시 함에는 118명의 승조원이 타고 있었는데 오전 11시 29분 1차 폭발로 함장 등 주요 장교들이 몰살당해 지휘체계가 붕괴되었고, 2분 15초 뒤 2차 폭발로 선체는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108m 해저로 가라앉았다. 대부분의 승조원은 폭발과 함께 순직했지만 함 후미에는 23명의 생존자가 있었고, 그들은 구조를 기다렸으나 결국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이 사건이 더욱 충격적인 것은 러시아 정부의 태도 때문이었다.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사고가 나자 이를 은폐하기에 바빴고, 영국과 노르웨이의 지원 제의를 사고가 난 뒤 4일 뒤인 16일에 되어서야 받아들였다. 이들 구조대는 17일 노르웨이를 출발해 19일 현장에 도착했고, 20일에는 노르웨이 해군의 심해 잠수사가 탈출 해치에 도달했지만 이미 23명의 생존자가 있었던 9번 격실은 침수되어 모두 사망한 후였다.

[쿠르스크]는 이 비극을 담담하게 영화로 옮겨 놓았다. 영화 속 미하일 카레코프(마티아스 쇼에나에츠) 대위가 가족에게 죽기 전 메모를 남기는 장면, 러시아 해군이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밝혀내라고 재촉하는 유가족을 몰아내고, 승조원의 어머니가 러시아 정부의 구조 의지가 없음에 분노하며 항의하다가 군인들에게 둘러싸인 후 진정제를 맞고 기절해 끌려 나가는 장면 등은 영화적 창작이 아닌 실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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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영화를 마지막에 가서야 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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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6일 개봉 당시 [쿠르스크]는 내 기대작이었다. 하지만 나는 같은 날 개봉한 [미래의 미라이], [언더독], [왕이 될 아이]는 극장에서 봤으면서도 [쿠르스크]만큼은 차일피일 관람을 미루기만 했다. [쿠르스크]가 2차 판권 시장에 출시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한 달간 oksusu의 프리미엄 월정액 서비스에 가입을 해서 극장에서 놓친 영화들을 열심히 봤지만 [쿠르스크]는 역시나 계속 뒤로 밀렸다. 결국 프리미엄 월정액 서비스 만기일이 다가와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쿠르스크]를 봤다.

내가 [쿠르스크]를 기대하면서도 자꾸만 관람을 미룬 이유는 이 영화를 보면 가슴이 아프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한 명도 구조되지 못한 채 국가의 방관 아래 승조원 모두가 사망한 이 비극적인 사건은 나로 하여금 슬픔과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경고를 했다. 정녕 나는 이 슬픔과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쿠르스크]를 보니 내가 우려했던 것만큼 감정선을 마구 해집는 영화는 아니었다.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은 프랑스 툴롱에서 첫 촬영을 시작하기 전, “우리는 돌아가신 분들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그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그들을 배신하거나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항상 정직하고 공평한 시선으로 작업하자”라며 스탭, 배우, 그리고 군인들 앞에서 선언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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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사자와 남겨진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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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스크]는 두 개의 시선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먼저 사고로 9번 격실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는 미하일을 비롯한 23명의 승조원들의 시선이다. 그들은 구조에 대한 희망을 안고 기다렸지만, 열악한 러시아 해군의 장비 탓에 구조가 매번 실패하자 점점 절망의 늪에 빠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살고자 발버둥 치지는 않는다. 사실 이 장면은 영화적 상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생존자의 진술을 들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감독의 의도대로 얼마든지 감동적으로 가공될 수 있다. 그러나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은 그 누구보다 용감했던 그들의 마지막 죽음에 영화적 재미를 들이대지 않고 담담하게 잡아낸다.

두 번째 시선은 미하일의 아내 타냐(레이 세이두)로 대표되는 승조원들의 가족 시선이다. 그들은 처음 러시아 해군을 믿었다. 하지만 은폐하기에 급급한 그들의 모습에 분노한다. 해외의 구조 제의도 거부한 채 그들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기로 맹세한 사람들이라는 헛소리만 해대는 러시아 정부와 해군의 태도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이 역시도 영화적 재미를 위해 과장되지 않는다. 그저 아버지를 잃은 소년의 냉소에 찬 눈빛이 남겨진 가족의 심정을 담담하게 재현할 뿐이다.

이 거대한 비극을 이렇게 담담하게 그려내다니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뚝심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영화를 보며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분노에 가슴을 칠 것이라 예상했는데, [쿠르스크]는 그러한 감정의 과잉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영화가 국내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영화의 진정성만큼은 느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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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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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국가의 존재 이유이다. 우리가 국가라는 거대한 단체를 만들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이다. 하나보다 둘이 강하고, 둘보다는 열이 강하다. 그렇기에 인간은 단체를 만들어 자꾸만 뭉친다. 그래야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가의 안전망 안에 있고, 이를 위해 각종 세금을 낸다. 결국 국가는 우리 개개인의 안전을 위해 조직된 단체인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아니 지켜낼 의지가 없다면 국가는 존재의 이유가 없다. 우리가 세월호 사건에 분노한 이유는 충분히 지킬 수 있었는데 정부의 의지가 없어서 희생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쿠르스크'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러시아 정부가 23명의 생존자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이 사건은 23명의 생존자라는 기적의 결과를 만들었을 것이다.

자존심 때문에, 혹은 군사 기밀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 이유를 갖다 붙여도 인간의 생명보다 중요하지 않다. 가끔 권력을 움켜쥔 자들은 그러한 사실을 잊는다. 수천만, 수억의 국민들 중 단 몇 명이라도 그들이 국가의 존재 이유임을 우리가 그들에게 일깨워줘야 할 것이다. [쿠르스크]는 분명 담담한 영화였지만, 영화를 본 후 내 가슴에 차가운 울분이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게 만든 영화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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