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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미션] - 그의 뒤늦은 깨달음과 나처럼 살지 말라는 진심 어린 충고
12  쭈니 2019.03.15 13:16:17
조회 56 댓글 0 신고

감독 :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 클린트 이스트우드, 타이사 파미가, 브래들리 쿠퍼

나이가 드니 그의 영화에 감동이 느껴지더라.

1993년 제6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을 맡은 서부극 [용서받지 못한 자]가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진 핵크만), 편집상을 수상했다. 1960년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무법자 3부작을 통해 마카로니웨스턴의 대표 배우로 인식되었고, 1970년대 [더티 해리] 시리즈를 통해 법위에 군림하는 폭력적인 형사로 인기를 얻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이기에 나는 [용서받지 못한 자]를 보기에 앞서 서부극의 액션 쾌감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는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은퇴한 무법자인 윌리엄 머니가 현상금을 벌기 위해 다시 무법자로 돌아가면서 느끼는 내면의 회한을 담은 상당히 사색적인 영화였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나는 [용서받지 못한 자]에 영화적 재미와 감동을 느끼지도, 그렇다고 윌리엄 머니를 이해하지도 못했다. 당연히 [용서받지 못한 자]는 내게 있어서 이 영화가 왜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내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에 감동을 느낀 것은 그로부터 12년이 지나 삼십 대로 접어든 후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용서받지 못한 자]에 이어 두 번째로 아카데미를 석권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겉보기엔 여자 복서 매기 피츠제럴드(힐러리 스웽크)의 인간 승리를 담은 복싱 영화처럼 보였지만, 영화를 천천히 뜯어보면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관객에게 설득하는 영화였다. 하필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봤던 날이 내가 가장 좋아했던 여배우 이은주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날이었기에 영화가 끝난 후 나는 한동안 자리에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야만 했다. 이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에 대한 내 인식은 바뀌었다.

[그랜 토리노]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내게 있어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중 최고는 2009년에 국내 개봉한 [그랜 토리노]이다. [그랜 토리노]는 꼬장꼬장한 백인 노인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웃집에 동양계 몽족 가족이 이사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아내의 죽음 후 외롭게 살아가던 월트는 낯선 이웃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고, 결국 그들을 지키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몽족 갱단을 찾아간다. 솔직히 나는 월트가 몽족 갱단을 박살 내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월트는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부를 뿐이라며 자신을 희생시킴으로써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낸다.

[라스트 미션]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뇌리를 스친 것은 [그랜 토리노]였다. [라스트 미션]의 얼 스톤(클린트 이스트우드)은 [그랜 토리노]의 월트처럼 꼬장꼬장한 백인 노인이고, 한국전 참전용사라는 설정까지 같다. 결국 나는 월트가 그러했듯 얼 역시 가족을 위한 마지막 임무를 통해 자기 자신을 희생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역시 내 예상은 빗나갔다. [라스트 미션]은 가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키는 얼의 부성애를 다룬 영화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랜 토리노]에서 느꼈던 묵직한 감동을 느낄 수 없었지만, 얼의 뒤늦은 깨달음만큼은 내게 깊은 울림을 안겨줬다.

이야기의 시작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예사업으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가던 얼. 하지만 그는 결코 좋은 남편, 아버지는 아니었다. 딸인 아이리스(앨리슨 이스트우드)의 결혼식마저 사업을 위해 불참을 할 정도로. 그렇게 12년이 흘러버린다. 인터넷으로 인하여 얼의 원예사업은 망하고 그의 농장은 압류된다. 남은 거라고는 트럭 한대뿐. 그는 이제 갈 곳이 없지만 가족은 그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때 얼에게 귀가 솔깃한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가족이 아닌 자신의 만족을 위해 그는 살이 왔다.

손녀의 지니(타이사 파미가)의 약혼 파티에서 얼은 쫓겨 난다. 아이리스는 '저 작자와 같이 있을 수 없다'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전처인 메리(다이앤 위스트)는 '이제 와서 왜 왔냐'라며 그를 밀어낸다. 지니는 '난 할아버지 편'이라며 그를 옹호하고 나서지만, 얼은 지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그때 한 작자가 얼에게 접근한다. 운전만 해주면 돈을 벌수 있다며... 지니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었던 얼은 이 수상쩍은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다.

얼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일이 불법적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는 자기합리화를 한다. 지니를 위해 어쩔 수 없다면서 말이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원예사업을 하며 가족을 돌보지 않았으면서도 메리에게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것뿐'이라고 뻔뻔스럽게 항변한다. 사실 그는 가족을 위해 일한 적이 없다. 메리와 아이리스는 얼의 돈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얼이 곁에 있어주길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얼은 그러한 가족의 바람을 외면하고,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사업에만 매달렸다.

마약 운반원을 맡았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지니가 원한 것은 할아버지의 축복뿐이다. 하지만 그는 지니의 결혼자금에 보태준다며 마약을 운반했고, 마약 운반 횟수가 늘어나면 날수록 낡은 트럭을 새로 바꾸고, 압류된 자신의 농장을 되고,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모임 장소를 되살리는 등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쓴다. 가족을 위해 일을 했다는 그의 위선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미화하지는 않는다. 그저 뒤늦은 깨달음을 쫓아갈 뿐...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라스트 미션]의 주인공인 얼은 악당이다. 그가 시카고에 운반한 마약은 역대 최대 수량이라고 하니 그가 미국 내 뿌리 깊은 마약 문제의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가 그다지 밉지는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얼을 미화한 것은 아니다. 그저 보수적이고, 깐깐한 백인 노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담담하게 연기할 뿐이다.

고속도로에서 도움이 필요한 흑인 가족을 위해 차를 세우고 기꺼이 도와주면서도 그들을 검둥이라 거침없이 부르고, 총을 든 마약 조직원 앞에서 '내가 한국 전쟁에도 참전했는데 이딴 걸 두려워할 줄 알아?'라며 위축되지 않고, 마약 조직의 보스인 라톤(앤디 가르시아)의 초청으로 멕시코에 방문해서 젊은 아가씨들과 맘껏 즐기는 등, 그는 그저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은 살 만큼 산 노인의 여유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그러한 얼의 여유는 역설적이게도 마약단속반인 콜린 베이츠(브래들리 쿠퍼)의 추적을 따돌리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하지만 노인의 여유가 그의 범죄의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누가 뭐라 했건 얼은 범죄자이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에 가서 좋은 남편, 아빠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붙잡는다. 90세를 앞둔 나이가 되어서야 깨닫게 된 가족의 소중함.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콜린에게 일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며, 나처럼 살지 말라고 충고하는 얼의 모습은 이 영화의 주제를 모두 함축하고 있다.

그의 '라스트 미션'은?

[라스트 미션]의 원제는 'The Mule'이다. Mule는 노새를 뜻하는 단어로 마약 운반책을 의미한다고 한다. 국내에선 '라스트 미션'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는데, 제목만 놓고 본다면 얼이 가족을 위해 마지막 마약 운반 임무에서 엄청난 모험을 하는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그런 장면은 없다. 얼이 콜린을 도와 마약 조직을 일망타진하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사면 받는 장면을 기대했지만, [라스트 미션]은 그러한 반전 없이 그냥 잔잔하게 영화를 이끌어가다가 조용히 끝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라스트 미션'이라는 제목이 정말 허황된 것은 아니다. 정해진 경로로, 정해진 시간 안에 마약을 운반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가족을 위해 경로를 이탈하고, 일주일 동안 지체한 얼의 선택은 그가 평생 동안 해내지 못한 '라스트 미션'이지 않을까? 가족을 위해 일을 잠시 미뤄두는 것,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만, 얼은 한 번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다. 이 '라스트 미션'을 통해 얼은 메리와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아이리스에게 용서를 받았으니, 그의 '라스트 미션'은 성공적이라 할만하다.

자신의 죄를 변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얼의 마지막 모습은 여운이 깊게 남는다.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해 온갖 거짓 변명으로 일관하는 자들의 모습이 뉴스를 통해 연일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얼은 모든 것을 실토하고 그 대가를 받아들인다. 다시 말하지만 얼은 마약을 운반한 악당이다. 그리고 가족에게 소홀했던 못된 남편, 나쁜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고, 그 대가를 달게 받으며 관객에게 진솔하게 충고한다. 부디 나처럼 살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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