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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호소다 마모루

더빙 : 카미시라이시 모카, 쿠로키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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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키우며 가장 당혹스러웠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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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나는 갑자기 아빠가 되었다. 마음의 준비 없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당시에는 내가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을 정도이다. 하지만 아들이 처음 나를 보며 웃어주는 순간,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잠든 순간, 내게 아빠라고 처음 불러준 순간 등을 겪으며 나는 조금씩 아빠가 되어갔다. 아빠가 되어간다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한 세상이 조금씩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 후에도 나를 중심으로 한 생활이 쉽게 바뀌지 않아 아내와 참 많이도 싸웠는데, 아빠가 되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가족 위주로 내 생활이 바뀌고 말았다.

그렇게 갑자기 아빠가 되었지만, 나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아들은 내게 있어서 최고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취미를 공유하며 때론 친구처럼 항상 내 곁에 있어 줬고, 그 덕분에 나는 친구들, 회사 동료들과 만나서 술 마시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런 최고의 아들에게 나는 딱 한 번 당혹함을 느낀 적이 있다. 그것은 아들이 동생을 결사반대했던 순간이다.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은 동생이 생기는 것은 싫다며 확실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는데, 그 이유는 동생이 자신의 장난감을 전부 망가뜨릴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래놓고 아들은 내 피겨들을 전부 망가뜨렸었다.)

아들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부부의 둘째 계획은 무산되었다. 하지만 나는 가끔 걱정이 된다. 형제 없이 자란 아들이 외롭지는 않을까? 험한 세상에서 혼자 힘들지는 않을까? 그런데 동생이 생기는 것을 싫어하는 남자아이의 마음은 우리 집만의 문제는 아닌가 보다. 프랑스의 가족 코미디인 2010년 국내 개봉작 [꼬마 니콜라], 2017년에 개봉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보스 베이비]도 비슷한 소재를 가지고 있으며, 이번에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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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2019년 첫 픽(pick)은 이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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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아내가 [미래의 미라이]를 보겠다고 선언한 이유도 아들을 키우며 나와 같은 당혹감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보지 않을뿐더러, 주말 아침에는 직장 다니느라 부족한 잠을 몰아서 자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미래의 미라이] 개봉 소식을 듣더니 토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수고를 감수하면서도 나와 아들의 극장 나들이에 따라나섰다. [미래의 미라이]는 아내가 2019년에 극장에서 본 첫 영화이기도 하다.

[미래의 미라이]는 4살 소년 쿤(카미시라이시 모카)의 이야기이다. 쿤은 엄마, 아빠, 그리고 사랑스러운 강아지 윳코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인생에 일생일대의 위기가 닥쳐 온다. 한동안 집을 비웠던 엄마가 동생 미라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갓 태어난 미라이를 보며 쿤은 동생과 잘 지내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쿤의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엄마, 아빠의 사랑이 미라이에게 집중되자 쿤의 질투심은 폭발, 미라이를 못살게 굴었고, 그러면서 엄마, 아빠에게 혼나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솔직히 쿤의 마음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래도 혼자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쿤의 입장에서는 미라이에게 그 사랑을 빼앗긴 기분이 들 것이다. 물론 엄마, 아빠의 마음 또한 이해가 된다. 4살인 쿤보다 이제 갓 태어난 미라이에게 신경이 더 쓰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미라이에게 못되게 구는 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어머니, 아버지가 나보다 여동생을 더 귀여워한다고 속상했던 적이 있지 않은가? 결국 쿤의 질투는 가족이 형성되며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한 과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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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이야기를 판타지로 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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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이에 대한 질투 폭발, 그것은 비단 쿤에게만 벌어진 일은 아닐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형제, 자매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러한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이런 평범한 이야기에 판타지적 설정을 꺼내든다. 쿤은 인간으로 변신한 강아지 윳코에게 자신도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가 쿤이 태어나며 사랑을 빼앗겼다는 경험담을 듣게 되고, 미래에서 온 동생 미라이(쿠로키 하루)와 만나게 되며, 스스로 과거와 미래로 시간을 여행을 하기도 한다.

미래에서 온 미라이와 함께 히나인형(여자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인형으로 3월 3일이 지나도 정리를 안 하면 하루에 1년씩 여자아이의 결혼이 늦어진다는 풍습이 있다)을 아빠 몰래 정리하고, 60여 년 전 과거로 가서 증조할아버지에게 두려움을 극복하는 법을 배우며,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과거의 엄마와 만나 엄마 또한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미래에 갔다가 미아가 되는 장면인데, 미아가 된 아이의 두려움을 마치 공포 영화처럼 표현한 것이 눈에 띈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쿤이 겪는 판타지의 공간이다. 쿤의 아빠가 건축가인 덕분에 쿤의 집 구조는 특이하다. 쿤의 집은 3개로 분리되어 있는데, 가장 꼭대기는 엄마, 아빠의 공간이고, 가운데는 정원이며, 맨 아래는 쿤과 미라이의 놀이방이다. 쿤의 시간 여행은 정원에서 주로 이루어지는데, 이 독특한 집의 구조 때문에 과거와 미래의 시간 여행이라는 판타지적 경험이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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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영화는 항상 이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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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미라이]를 보고 나서 '역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영화답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영화를 처음 만난 것은 2007년 개봉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였다. 2007년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초속 5cm], [파프리카]와 더불어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꼭 보고 싶었지만, 치열한 예매 경쟁 끝에 밀려서 결국 [파프리카]만 볼 수 있었고, 나중에 [초속 5cm]와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개봉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개봉 소식을 듣고 개봉 첫날 아침 일찍 극장으로 달려가며 설레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후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영화는 2015년 개봉한 [괴물의 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극장에서 봤다. 2009년에 개봉한 [썸머 워즈], 2012년에 개봉한 [늑대아이], 그리고 [미래의 미라이]까지... 개인적으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최고 영화는 [늑대아이]라고 생각한다. 늑대인간과 사랑에 빠져 '늑대아이'를 홀로 키워야만 했던 하나의 모성애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나와 아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었다.

사실 이것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특기이다. 그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판타지적 설정으로 풀어내는 재주가 남다르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단편소설을 모티브로 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경우는 첫사랑의 애틋한 감정을 타임리프라는 판타지적 소재로 이야기한 영화이고, [썸머 워즈]는 현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사이버 가상 세계에서 맹활약하는 소년의 이야기이며, [늑대아이] 또한 남과는 다른 아이들을 홀로 키워야 하는 미혼모의 아픔을 늑대인간이라는 판타지적 소재로 비유한 영화이다. [미래의 미라이] 또한 다르지 않다. 이렇게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영화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판타지적 이야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감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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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최고 영화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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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미래의 미라이]는 개인적으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최고 영화는 아니었다. 그러기엔 [늑대아이]의 감동이 너무 엄청났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두근거림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미래의 미라이]를 보고 나니 마치 내 가족의 이야기인 것만 같아서 영화를 보는 중에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유쾌하게 웃음 지었다.

영화에서 쿤의 엄마는 붕어빵을 먹으며 "음~ 이런 게 행복이지."라고 만족감을 표현한다. 정확히 [미래의 미라이]를 보기 전날 아내가 붕어빵이 먹고 싶다고 해서 나는 20분이나 걸어서 붕어빵을 2천 원어치(8개)를 사 왔다. 이미 저녁식사를 배부르게 한 아내는 붕어빵을 무려 3개나 먹어치우며 "배불러"를 연발했었다. 그러한 전날의 기억이 있기에 쿤의 엄마가 붕어빵을 먹는 장면에서 나는 아내를 쳐다봤고, 아내 또한 나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미래에서 온 미라이가 쿤의 간지럼을 태우는 벌 놀이는 나도 아들과 자주 했던 놀이이다. 내가 간지럼을 태울 때마다 온 집안을 가득 메우는 아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요즘은 나보다 아들의 힘이 더 세서 함부로 간지럼을 태우다 가는 간지러움에 몸부림치는 아들에게 발길질을 당할 위험이 있다. 하루에 1년씩 결혼이 늦어진다는 히나인형에 대한 일본의 풍습은 영화가 끝난 후 튀밥 흘리기 놀이로 발전했는데, 아내가 튀밥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한 알마다 아들의 결혼이 1년씩 늦어진다고 하자 아들은 바짝 긴장하며 엄마가 튀밥을 바닥에 흘리지 않도록 단속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혼이 하고 싶긴 한가 보다. 비록 [미래의 미라이]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최고 영화는 아니지만, 내 일상과 깊숙이 연관된 듯한 공감능력이 대단한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