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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피터 패럴리

주연 : 비고 모텐슨, 마허샬라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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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패럴리 감독이 이런 영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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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시간으로 지난 1월 6일 개최된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작품상은 [보헤미안 랩소디]가, 뮤지컬, 코미디 부문 작품상은 [그린 북]이 차지했다. [그린 북]은 뮤지컬, 코미디 부문 작품상 외에도 마허샬라 알리가 남우조연상을, 닉 발레롱가가 각본상을 수상하며 오는 2월 24일 개최 예정인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전망을 밝게 했다. 이러한 골든 글로브 시상식 결과에 따라 해마다 이맘때면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및 수상작들을 열심히 챙겨 보는 내게 [그린 북]은 필수 관람 영화가 되었다.

[그린 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는 한가지 뜻밖의 사실을 알아냈다. [그린 북]의 감독이 피터 패럴리라는 사실이다. 처음엔 동명이인인가 싶었다. 2014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노예 12년]의 감독 스티브 맥퀸이 [빠삐용], [타워링]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배우 스티브 맥퀸과 동명이인인 것처럼 말이다. (한동안 네이버 영화 페이지에서 [노예 12년]의 감독 스티브 맥퀸을 클릭하면 배우 스티브 맥퀸의 필모그래피로 넘어갔었다.) 하지만 동명이인이 아니더라. 피터 패럴리 감독은 내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내가 [그린 북]의 감독으로 피터 패럴리라는 이름에 당황했던 이유는 그의 필모그래피 때문이다. 피터 패럴리 감독은 동생인 바비 패럴리와 함께 화장실 코미디 전문 감독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인 [덤 앤 더머], [킹 핀],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등의 영화가 모두 화장실 코미디 장르의 영화들이며, 그의 최근 작품 또한 화장실 코미디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덤 앤 더머]의 속편, [덤 앤 더머 투]이다. 그런 그가 1960년대 인종차별에 대한 영화를 연출했다는 것이 내겐 굉장히 뜻밖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그린 북]에 대한 내 관심은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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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의 시선으로 그린 흑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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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북]의 내용은 간단하다. 1962년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의 토니 발레룽가(비고 모텐슨)는 천재 피아니스트인 흑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에게 8주간 고용된다. 돈 셜리는 인종 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로 공연 투어를 예정하고 있기에, 토니 발레롱가의 임무는 돈 셜리가 별문제 없이 공연할 수 있도록 운전기사 겸 보디가드로 고용된 것이다. 그러면서 피부색에서부터 살아온 방식 등 모든 것이 서로 달랐던 토니 발레롱가와 돈 셜리는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일단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그린 북]이 어디까지가 백인의 시선으로 그린 흑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영화는 철저하게 토니 발레롱가의 시선으로 진행되고, 각본을 쓴 것은 토니 발레롱가의 아들인 닉 발레롱가이다. 닉 발레롱가는 아버지가 남긴 녹음테이프와 편지 등을 근거로 시나리오를 집필했다고 한다. 게다가 피터 패럴리 감독은 백인 위주의 캐릭터로 구성된 화장실 코미디를 주로 연출하던 백인 감독이다. 그러니 이 영화가 백인의 시선으로 그려져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린 북]에 그려진 토니 발레롱가는 1960년대 평범한 백인 이민자이다. 그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동네에 살고 있고, 집 안에 흑인이 들어오는 것을 꺼려 한다. 흑인이 물을 마신 컵을 부엌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가 일하는 클럽이 내부 수리로 2달간 문을 닫자 돈을 벌기 위해 돈 셜리의 운전기사로 취직한다. 단순한 운전기사가 아닌 집사의 역할까지 원하는 돈 셜리에게 "난 그딴 일은 안 한다."라며 단호하게 거부하는 토니 발레롱가의 모습은 그의 캐릭터를 잘 설명해준다. 하지만 토니 발레롱가는 돈 셜리와의 여정을 통해 조금씩 변해간다. 그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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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발레롱가는 어떻게 변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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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셜리와의 여정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돈 셜리의 가방을 차 트렁크에 넣지 않고 버티는 토니 발레롱가의 모습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차 안에서 쉴 새 없이 떠벌리며, 제발 조용히 해달라는 돈 셜리의 말을 무시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상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판매용 행운의 돌을 슬쩍 해놓고 버려져 있는 것을 주운 것뿐이라며 뻔뻔스럽게 주장하고, 돈 셜리와 우아하게 만찬에 참석하느니 흑인 운전기사들과 주차장에서 쭈그려앉아 도박하는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런 그에게 돈 셜리는 "다른 흑인 운전기사들은 만찬장에 들어오는 것을 선택할 수 없었지만, 당신은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라고 비난한다.

확실히 토니 발레롱가에게 교양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그도 돈 셜리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감명을 받는다. 그 순간 토니 발레롱가에게 돈 셜리는 인종을 떠나 천재 피아니스트 그 자체였던 것이다. 토니 발레롱가는 인종 차별이 극심한 남부 투어 공연을 스스로 자청한 돈 셜리의 의도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지만, 진심을 다해 그를 보호하려 애쓴다. 그러면서 돈 셜리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 현장을 목격하며 자신도 점차 변해 가는 것이다.

분명 토니 발레롱가는 교양이라고는 없는 하류 인생에 불과하다. 하지만 돈 셜리를 초청한 남부의 상류층 사람들은 과연 토니 발레롱가보다 더 나은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돈 셜리의 능력을 칭송하면서도 그가 자신의 집 화장실을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돈 셜리를 크리스마스 공연에 초청한 호텔 지배인은 돈 셜리에게 창고 같은 대기실을 주며, 호텔 식당에서 연주는 할 수 있지만, 식사는 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온갖 교양 있는 척 꾸미고 있지만 토니 발레롱가보다도 못한 그들의 이중적 모습은 [그린 북]이 풍자한 미국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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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셜리가 짊어진 무거운 책임감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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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돈 셜리가 굳이 남부 투어 공연을 고집한 이유는 자신의 연주를 통해 남부의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토니 발레롱가가 돈 셜리를 통해 조금씩 변했듯이 말이다. 돈 셜리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당시 법무장관인 로버트 케네디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 후 "케네디 형제가 미국을 변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 고작 나는 유치장에서 꺼내달라는 청탁이나 하고 있다."라며 자책한다. 이 장면에서 케네디 형제처럼 자신도 미국 남부에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을 변화시키겠다는 돈 셜리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남부의 인종 차별론자들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돈 셜리는 술집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 자정을 넘겨 거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의 불시 검문을 당해야 하며, 양복점에서는 돈 셜리에게 양복을 팔지 않는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차별을 당하면서도 돈 셜리는 꾹 참아낸다. "어떻게 이런 것들을 참을 수 있냐?'라고 묻는 토니 발레롱가에게 그는 "폭력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라며 의연하게 대처한다.

토니 발레롱가의 눈에 비친 돈 셜리는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린 외로운 천재의 모습이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차별을 당하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이 감당해야 할 고행이라며 감내한다. 그렇기에 돈 셜리가 처음으로 차별에 당당하게 맞서는 호텔 식당에서의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토니 발레롱가가 돈 셜리에 의해 조금씩 변했듯이, 돈 셜리도 토니 발레롱가에 의해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조금은 내려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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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다. 하지만 울림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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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종 차별에 대한 영화라고 한다면 나에겐 한가지 선입견이 있다. 그것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차별을 당하는 주인공의 역경을 보여주고, 그 역경을 이겨내는 인간승리로 막을 내리는 스토리 전개이다. 정확히 [노예 12년]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린 북]은 다르다. 돈 셜리가 미국 남부 투어를 떠나는 장면에서 그가 당하게 될 역경이 걱정되었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그를 기다리는 것은 그다지 큰 역경은 아니다. 물론 그는 온갖 차별을 경험하지만 다른 인종 차별 영화와 비교한다면 오히려 잔잔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 대신 [그린 북]은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는 돈 셜리와 토니 발레롱가의 우정을 조용히 보여준다. 교양이라고는 없던 토니 발레롱가는 돈 셜리를 통해 최소한적인 교양을 배우고,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려 있던 돈 셜리는 토니 발레롱가를 통해 조금이나마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며 안식을 취한다. 그러한 두 사람의 우정은 내게 깊은 울림을 안겨줬다.

영화의 제목인 '그린 북'은 1936년부터 1966년까지 출간된 흑인 전용 여행 가이드북이라고 한다. '그린 북'에는 흑인 여행자들이 이용 가능한 숙박 시설, 레스토랑, 주유소 등의 정보가 들어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그린 북'의 존재 자체가 인종 차별을 허용하는 난센스이지만, 어찌 되었건 불과 50년 전에는 버젓이 미국 사회에서 정식으로 발행된 책자이다. [그린 북]은 미국의 인종차별이라는 난센스를 돈 셜리와 토니 발레롱가의 우정이라는 키워드로 가볍지만, 한편으로 묵직하게 그려낸 영화이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니 비록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는 [바이스]의 크리스찬 베일에게 뮤지컬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빼앗겼지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만큼은 비고 모텐슨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그의 수상을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