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레베카 즐로토브스키
주연 : 나탈리 포트만, 릴리 로즈 멜로디 뎁, 엠마뉴엘 샐린저

영화를 볼 때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그 영화에 대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특히 수많은 국제 영화에 출품작, 수상작이라는 화려한 훈장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경우에는 자괴감까지 들기도 한다. '아직 내 내공이 부족하구나.'라는...
[플래니테리엄]이 정확히 그러했다. 내가 좋아하는 나탈리 포트만이 주연을 맡았고, 베니스 국제영화제, 토론토 국제영화제, 런던 국제 영화제 등 수많은 국제 영화제에 초청된 프랑스 영화이다. 아름다운 영매 자매가 영화의 소재인 만큼 영화 자체도 흥미로워 보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분명 아름다운 영매 자매가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프랑스에서 겪게 되는 사건이 영화의 주요 내용인데,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중구난방으로 진행되어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뭐가 뭔지 이해하는데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플래니테리엄]에 대한 내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이후 영화의 내용이 마지막 부분까지 자세히 기술된다.)
1. 미국의 영매 자매 로라(나탈리 포트만)와 케이트(릴리 로즈 멜로디 뎁)가 프랑스에서 공연 중 영화 제작자 앙드레(엠마뉴엘 샐린저)의 눈에 띄어 영화 제작 제안을 받는다.
2. 로라는 영매를 소재로 한 앙드레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며 영화배우로서의 꿈을 키워 나가지만, 케이트와 앙드레는 점점 심령현상에 심취하여 로라와 갈등을 빚는다.
3. 케이트와의 심령현상에 과하게 심취한 앙드레는 대표이사직에서 쫓겨나고, 세계 2차대전이 발발하자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간다.
4. 케이트는 백혈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고, 로라는 옛 동료의 도움으로 영화계에 복귀한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이해할만하다. 특수효과 없이 심령현상을 영화에 담고 싶다는 앙드레의 고집은 할리우드 영화의 발전과 달리 쇠약해져만 가는 프랑스 영화계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른다. 분명 영화는 프랑스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발명가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의 영화를 만들었고, 프랑스의 마술사 조르주 멜리에스가 최초의 극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미국은 영화 산업의 중심이 되었다. 미국은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꾸준히 새로운 영화 기술을 개발해냈는데, 유성영화, 칼라영화가 처음 등장한 것은 모두 할리우드에서였다. 할리우드의 약진 속에 프랑스 영화계는 지루한 예술영화로 치부되며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특수효과를 이용해서 심령현상을 담아내자는 스태프의 제안을 거부하는 앙드레의 고집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한 프랑스 영화에 대한 꾸짖음이 아니었을까?
케이트와의 교령회에 집착하는 앙드레의 심리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이라고 억지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앙드레가 특별히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을지도... 만약 내가 앙드레와 같은 심령현상을 경험했다면 겁이 나서 오히려 케이트와의 교령회를 거부하고 도망갔을 테지만, 앙드레는 나와는 180도로 다른 사람이었나 보다.  

 

 

이렇게 영화의 중반까지는 억지 이해가 통했다. 하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내 억지 이해는 와르르 무너졌다. 갑자기 앙드레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면서부터이다.
분명 [플래니테리엄]이 1930년대 세계 2차대전 발발 직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그러한 설정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굉장히 뜬금없다. 영화에서는 전쟁 분위기가 그다지 물씬 풍기지도 않고, 영화 촬영 현장에서 앙드레에 대한 반감이 간간이 표출될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앙드레는 체포되고, 그가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갔다는 사실이 짧게 언급한다.
케이트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뜬금없다. 케이트는 자신의 영매 능력이 유령들과 만날 운명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영매 자매, 심령현상에 집착하는 프랑스 영화 제작자, 홀로코스트, 영매 능력자의 필연적인 죽음 등등 [플래니테리엄]은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늘어놓다가 그냥 영화를 끝내버린다. [플래니테리엄]은 수작인데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확실한 것은 앞으로  레베카 즐로토브스키 감독의 영화를 피해야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