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 신타로의 원작을 영화화한 은 그 이듬해에 만들어진 정교한 형식의 시대극 과 함께 시노다 마사히로가 쇼치쿠에서 만든 최고작으로 꼽을 만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무라키는 살인죄로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야쿠자이다. 다시 자신의 친숙한 ‘어둠의 세계’로 돌아온 그는 도박장에서 사에코라는 여자를 보게 되고 삶의 흥분감을 구하려 드는 그녀의 묘한 매력에 끌리게 된다. 시노다 자신은 이 뒤이어 유행의 물결을 탈 야쿠자영화의 모형이 되었다고 자신하지만 실은 이것은 진기(仁義)를 내세우고 액션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야쿠자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은 암흑 세계의 구조가 되는 의식(儀式), 흥분의 원천으로서의 마조히즘과 파멸충동 같은 문제를 엄격한 미의식이 담긴 형식 안에 담아내는 암울하게 아름다운 영화라고 봐야 한다. 스토리보다는 비주얼이 앞서고 니힐리즘적 색채가 강한 이 영화는 그걸 빌미로 9개월이나 개봉이 연기되기도 했다”

도쿄인가

삼년만이다

토할 것 같은 공기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이토록 많은 인간들이

어째서 이런 칸 안에 있는 것이지?

인간

묘한 짐승이구나

다들 무슨 생각으로 사는 것인가?

모두 죽은 것처럼 보인다

힘들게 살아있는 척을 하고 있을 뿐

이런 짐승 같은 놈들 중 하나를

죽이는 것에 무슨 대수라고 떠드는 것인가

그것 때문에 3년을

이곳은 내 구역이다

돌아오는 것에 주저하지는 않았다

묘한 일이다

누군가 죽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거기서도 분명

왜라는 건 없어

사는 건 지루해

사에코는 죽었다

사에코가 누구였는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사에코

죽었다는 걸 들어도 난 사에코를 갈망한다

‘마른 꽃’은 일본에서 제작된 1964년 영화이고 감독은 시노다 마사히로, 주연은 이케베 료, 카가 마리코가 맡았다.

이런 기본적인 정보만을 접한 다음에도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감독도 배우도 모두 생소했다. 물론, 제목도.

그 당시에는 꽤 흥행에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그게 사실인지 알아보진 않았고 뭔가 독특한 영화이고 인상적인 영화이기는 하지만 나른하고 허무적인 분위기 때문에 이런 영화가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지게 된다.

예전이었다면 좀 더 좋은 평가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이런 영화를 많이 좋아했으니까. 관심이 달라졌는지 생각이 변해서인지 이제는 이런 영화가 특별하게 생각하진 않게 됐다. 그냥 보고 적당하게 기억에 담을만한 것이 있는 생각해보고 금세 잊게 된다.

1964년 일본은 어떤 분위기여서 이런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찾았을까? 조금씩 패전의 상처는 지워져가고 재건과 부흥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시기였으리라 생각하고 반대로 그 번영에 뒤따르는 어둠이 슬그머니 눈에 들어오게 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니 이런 영화가 나왔어도 크게 이상할 것 없기도 할 것 같다.

확인해보니 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도 1963년 발표니 이런 영화가 나올만한 시기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마른 꽃’에서는 어쩐지 일본 영화라고 생각되기 보다는 유럽(더 솔직하게 말해서는 프랑스) 영화라는 느낌이 크다. 영화의 시작부터 냉소와 허무로 잔뜩 찌들은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하고 대화를 나누기 보다는 각자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은 대사들 또한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만든다.

그런 것들이 유럽식이라고 말하는 것도 올바르진 않겠지만 일본 영화에서 자주 접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아 꽤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쿄의 뒷골목을 두리번거리는 유럽 (예술)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이게 칭찬인지 비난인지 헷갈리지만 낯설면서도 어딘지 익숙하기도 한 묘한 영화였다.

그렇다고 그 영향력 아래에서만 있는 영화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나름대로의 개성과 독창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고 크라이테리온 Criterion 과 같은 곳에서 주목한 이유도 바로 그런 점 때문이었을 것 같다.

어떤 점에서는 영향을 받았음을 느끼지만 반대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기도 했으리라 생각되는 인상적인 영화였다.

조직을 위해서 상대 조직원을 살해한 다음 3년 만에 출소를 한 남성 무라키

삶에 대한 큰 의지 없어 보이고 냉소적이고 모든 것에 무덤덤하기만 하다.

마찬가지로 무표정한 얼굴로 도박에 빠져 있고 뭔가 자극적인 것을 찾고 있는 여성 사에코

신비스러움 가득한 그녀는 도박판에서 무모하게 큰돈을 걸고 따고 잃고 상관없이 더 큰 도박판을 찾을 뿐이다.

뭔가 자극 없이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두 남녀가 어쩌다 만나게 됐고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식으로 끌렸다가 인연이 다해 헤어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뭔가 대단한 영화라고 말할 수 없지만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호기심을 갖고 영화를 보게 되고 무덤덤하게 시작해서 무덤덤하게 마무리하는 끝맺음에, 그 싱겁기도 하고 건조하기도 한 결말에 색다름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뻣뻣하고 건조한 사랑이랄까? 그런 사랑이 가능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박판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긴장감을 보여주기도 하고

때때로 범죄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압박감도 만들어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두 남녀에 관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는 한 남성이 한 여성에 대한 호기심과 점점 커져가는 갈망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에 관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상대에게 관심은 가지만 그 관심에 빠져들려고 하지 않으려는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지만 그 알아감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어쩌다 만나게 된 인연 때문이라 그런가? 그 인연이 끊어지려 해도 집착하지 않으려고 하는

채워질 수 없는 허전함과 갈증으로 가득한 두 남녀에 관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단순히 두 남녀에게만 집중하는 영화로 꾸미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여러 방식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본인들은 은근슬쩍 뒤로 빠지고 누군가를 앞세우기만 하는 노인-보스들

더 큰 판돈의 도박판으로 향했을 때의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불길함과 긴장감

복수를 위한 갑작스러운 습격과 그 이후 형 동생 사이가 된 이들의 담담한 대화(들)

자신 있게 나서는 사람 없고 믿을 사람 없어 다시금 피의 보복을 직접 해야 하는 처지

그리고 보복이 이뤄지는 과정에서의 고요한 침묵과 실행 직후의 소란스러움

뒤늦게 알게 된 여성의 죽음과 겉보기에는 무덤덤한 반응 그리고 내면의 파장

색다른 영화고 볼만한 영화였다. 이런 영화도 있고 이런 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기도 하다는 감탄도 하게 된다. 굳이 비슷한 영화를 생각해보라면 한국 영화 ‘무뢰한’이 떠올려지기도 하지만 굳이 라는 말을 붙여야지만 비슷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건조함이 인상적인 영화다. 이런 영화를 좋아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꽤 볼만했다.

뭔가 독특한 영화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살짝 관심이 생길 것 같다.

참고 : 국내에서는 그리 알려지진 않은 영화인 것 같다. 온라인으로 검색해도 이 영화에 대한 글은 많지 않아 크게 유명하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