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열일곱살에 시집왔다. 이곳은 부자인 지주가 사는 곳이다. 그들이 캐서린(플로렌스 퓨)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가족의 명맥을 유지하게 만들어라. 현재 지주와 아들만 살고 있다. 둘 다 아주 나이가 많다. 여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캐서린은 이 곳에서 씨받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다른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오로지 아이를 낳아 대가 끊기지 않도록 해주면 된다.

당돌하게도 캐서린은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다. 믿고 의지할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혼자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곳이다. 어느 누고도 내 편을 들지 않는다. 밤이 되면 아이를 낳기 위한 행위를 할 뿐이다. 예의범절도 차려야 한다. 영화의 시대상은 모르겠지만 근대 정도가 아닐까한다. 여전히 식탁에서 갖춰야 할 예의범절이 있고 하인들은 충실히 일을 하며 주인을 보살핀다. 캐서린은 아직까지 혈기왕성하고 호기심이 많다.

무엇보다 여전히 청소년기에 해당한다. 반항기도 있다. 그렇다해도 그는 혼자 몸으로 이 곳에서 살아야한다. 충분히 무섭고 떨리고 어찌할 바를 몰라야 한다. 초반에 긴장한 얼굴이지만 그는 상대방을 볼 때 결국 친절한 눈빛이 아니다. 반항기 가득한 얼굴로 살짝 고개를 숙이고 도전적인 모습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이  상황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렇다해도 할 것은 없다.

카메라 워크도 특이하다. 분명히 시아버지와 캐서린이 함께 밥을 먹을 때 결코 평등한 위치가 아니다. 상석은 시아버지가 않아있고 측면에서 캐서린이 앉는다. 카메라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캐서린이 가운데 앉고 시아버지가 측면에 앉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보면서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감독은 즉시 제대로 된 화면을 보여주며 그렇지 않다고 알려준다.

캐서린은 결코 순정적이지 않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한다. 웃고 싶으면 웃기도 한다. 시아버지가 무엇이라 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한다. 우연히 하녀가 하인들에게 욕보이는 현장을 발견한다. 풀어주라고 한다. 그 중에 대표에게 '내 몸무게도 알 수 있냐'고 묻는다. 그러자 세바스찬은 캐서린을 들어보인다. 약간 능욕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상한 것은 그 이후 둘이 연결된다.

처음에는 캐서린이 세바스찬을 이용해서 무엇인가 계획하는 걸로 알았다. 세바스찬을 사랑하는 것처럼 꾸며 이 가문을 집어 삼키는 거 말이다. 시아버지도 남편도 다 한동안 오지 않았다. 이 틈을 타 세바스찬이 캐서린에게 와서 심심하지 않냐고 추근된다. 캐서린은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곧 자신이 더 적극적으로 세바스찬을 받아들인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남자는 하인인 세바스찬 밖에 없긴 하지만 이런 행동은 살짝 이해는 되지 않았다.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된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지만 열렬히 사랑한다. 이 사실은 다들 알게 된다.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반대되는 사람은 눈 깜짝하지 않고 제거한다. 캐서린이 한 행동은 생존인걸까, 사랑인걸까.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세바스찬. 세바스찬의 관심은 단순히 본능에 의한 남성의 행동으로 보였지만 캐서린은 그마저도 고마웠던 것일까.

내가 캐서린이라면 어떤 행동을 선택했을까. 그저 묵묵히 원하는대로 감내하며 따라야 했을까. 이런 점은 분명히 시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영화에서 나오는 하인이 안방마님에게 추근되는 것도 결국에는 시대에 따라 달랐을 것이다. 감히 언감생심 꿈도 못 꿀때가 있었고, 그런 걸 생각할 수도 있는 시대가 있다. 그런만큼 캐서린이 한 행동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을까. 여기서 캐서린은 과감하고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캐서린이 한 모든 행동은 결국에는 생존이었다.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모든 걸 해낸다. 무섭다는 느낌보다는 처절하다는 표현이 맞다. 캐서린 역할을 한 플로렌스 퓨의 연기도 기가 막히다. 미묘한 감정의 표현을 능숙하게 해낸다. 결국에 캐서린은 이 가문을 집어 삼켰는데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것도 꽤 궁금했다. 영화는 기껏해야 2~3개월을 보여주지만 그 이후에 더 긴 세월을 캐서린은 이곳에서 살아내야 한다.

핑크팬더의 결정적 한 장면 : 쇼파에서 정면을 바라보며 앉는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