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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림 : 업라이징] - 개성을 버린 것이 아쉽지만, 즐길 준비는 이미 되어 있다.
12  쭈니 2018.03.27 18:44:17
조회 262 댓글 1 신고



감독 : 스티븐 S. 드나이트

주연 : 존 보예가, 스콧 이스트우드, 케일리 스패니, 경첨

개봉 : 2018년 3월 21일

관람 : 2018년 3월 25일

등급 : 15세 관람가



거대 로봇에 대한 로망, 이번에도 통할까?


남자들에겐 거의 대부분 거대 로봇에 대한 로망이 있나봅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 '로보트 태권 V'등 거대 로봇 만화에 열광했었고, 커서도 '건담', '에반게리온' 등 거대 로봇에 대한 로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중입니다. 웅이의 경우는 거대 로봇보다는 '아이언맨'에 더 심취해 있지만, [트랜스포머]가 개봉할땐 저보다 먼저 영화를 기대하며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러나 저와 웅이를 이어주던 거대 로봇 영화 [트랜스포머]는 시리즈가 거듭되며 이야기가 점점 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애초에 이야기의 매력으로 보는 영화가 아닌, 거대 로봇에 대한 로망으로 보는 영화라고는 하지만 2017년 개봉한 [트랜스포머 : 최후의 기사]는 '트랜스포머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시작이라는 거창한 수식어에 맞지 않게 복잡하고, 엉성했으며, 어설펐습니다.

이렇게 [트랜스포머]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위기의 상황에서 새로운 희망이 등장하였습니다. 바로 [퍼시픽 림]입니다. [퍼시픽 림]은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에 의해 2013년 첫 선을 보였습니다. 일단 로봇의 크기는 [트랜스포머]에 비해 거대해졌습니다. 게다가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 특유의 개성이 덧붙여져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로 [트랜스포머]와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여기에 거대 로봇과 외계에서 온 거대 괴수의 대결이라는 새로운 볼거리가 완성되었고, 이야기의 구조와 캐릭터의 완성도도 [트랜스포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습니다. 하지만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에 대한 호불호로 인하여 흥행성적은 기대했던 것만큼 나오지 않아 속편 기획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다 중국 자본을 끌여들여 드디어 2018년 [퍼시픽 림]의 두번째 이야기인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이 개봉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의 개봉에 앞서 기대감과 더불어 불안감도 컸습니다. 길예르모 델 토로가 제작자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로마 시대 검투사 이야기를 그려낸 미드 [스파르타쿠스]의 스티븐 S. 드나이트가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대놓고 길예르모 델 토로의 개성을 지우겠다는 선언인데, [퍼시픽 림]만의 개성을 지우고나면 과연 뭐가 남을 것인지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하는 제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습니다.


거대 로봇의 이유불문 대활약은 [트랜스포머]만으로 충분하다.

부디 [퍼시픽 림]은 [트랜스포머]와 차별화된 볼거리를 내세워

거대 로봇 영화의 다양성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나는 아버지와 다르다.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은 지구와 외계를 연결하는 태평양 연안 포탈에서 등장한 외계 괴수 카이주의 습격과 카이주를 물리치기 위해 제작된 거대 로봇 예거에 대한 설명으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간은 10년을 건너뛰어 새로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제이크(존 보예가)가 "난 아버지와 다르다."라고 선언하며 분위기를 전환합니다. 제이크는 [퍼시픽 림]에서 카이주를 막기 위해 결성된 범태평양연합방위군의 대장인 스탁커 펜데코스트(이드리스 엘바)의 아들로 그는 포탈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었습니다. 하지만 제이크는 자신은 아버지와 다르다라고 선언함으로써 아버지와는 달리 희생의 길을 가지 않을 것임을 드러냅니다.

분명 [퍼시픽 림]은 희생에 대한 영화입니다. 포탈을 통해 카이주는 끊임없이 인류를 공격하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예거는 단 네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신나간 정치인들은 돈이 많이 드는 예거 제작보다는 돈이 적게 되는 방어벽 제작이 카이주를 막는데 더 효율적이라는 헛소리를 공공연하게 떠들어댑니다. 이제 인류에겐 네대의 예거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렇기에 롤리 베켓(찰리 허냄)을 비롯한 예거 조종사들은 죽음을 예감하며 마지막 전투에 나섭니다. 그들 자신에겐 희망이 없지만, 그들의 죽음으로 인류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마지막 소망을 가슴에 안은채... 그렇게 그들은 스스로를 희생하고 인류를 구한 것입니다.

사실 [퍼시픽 림]에 [트랜스포머]식 쾌감이 부족한 것은 바로 이러한 희생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동적 희생은 흥행 부진으로 이어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5년만에 제작된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은 전편의 그림자를 지우고 영화를 밝게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결과 "난 아버지와 다르다"라고 선언하는 제이크라는 캐릭터가 탄생한 것입니다. 제이크는 [퍼시픽 림]의 롤리 베켓처럼 반항기 가득한 캐릭터이지만, 예거 조종을 거부하고 반항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롤리 베켓과는 달리 제이크의 반항은 별다른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제이크의 캐릭터는 가볍기만합니다.


얼핏 제이크는 전편의 롤리 베켓처럼 반항기가 가득한 캐릭터처럼 보인다.

하지만  [퍼시픽 림]은 롤리 베켓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했고,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은 제이크의 반항에 대한 이유 따위는 건너뛴다.

그렇기에 제이크는 롤리 베켓과는 달리 가벼운 캐릭터로 머문다.



캐릭터 설명 따윈 건너뛴다.


영화 초반 제이크는 대책없이 술마시고 즐기며 인생을 낭비합니다. 그는 돈이 부족하면 폐기된 예거의 부속품을 훔쳐 파는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에게 [퍼시픽 림]의 주인공과 같은 희생을 바라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언제 또다시 포탈이 열리고 카이주가 인류를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제이크는 그런 것 따위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저 하루 하루를 놀고 먹으며 즐길 수 있으면 그만입니다. 그런 그가 범태평양연합방위군에 재입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폐기된 예거 부속품을 훔치다 걸려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티븐 S. 드나이트 감독은 될 수 있으면 캐릭터 설명에 러닝타임을 소모하지 않겠다는 다짐한 듯합니다. 그 결과 제이크는 별 이유없이 반항하다가, 갑자기 영웅심에 들떠서 카이주와 맞서 싸우는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가 됩니다. 제이크의 파트너인 네이트(스콧 이스트우드)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의 캐릭터 설명이 아예 생략된 것은 물론, 제이크와 네이트의 관계가 틀어진 이유조차도 영화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두 명이서 함께 뇌파를 연결해야하는 예거의 구조상 파트너간의 유대는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이러한 캐릭터 생략은 영화를 더욱 단순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나마 카이주에 의해 가족을 잃은 아마라(케일리 스패니)가 왜 그토록 예거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설명이 간단하게나마 이뤄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이 기존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유 역시 캐릭터 설명을 건너뛸 수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전편에서 카이주에게 가족을 잃은 후 스탁커에게 입양되어 롤리 베켓과 함께 집시 데인저를 타고 대활약을 펼쳤던 마코(키쿠치 린코)는 [퍼시픽 림 : 업라이징]에서는 제이크의 누나로 반항하는 그를 보듬어주고, 마지막엔 제이크의 영웅심이 깨어나게합니다. 전편에서 최고의 괴짜 콤비였던 헤르만 고틀리브(번 고먼) 박사와 뉴턴 가이슬러(찰리 데이) 박사 역시 [퍼시픽 림 : 업라이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는데, 전편에서 워낙 캐릭터 설명이 잘 된 덕분에 [퍼시픽 림 : 업라아징]에서는 따로 캐릭터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퍼시픽 림]을 본 나와 웅이는 그나마 이 영화의 캐릭터 생략에 적응했지만

[퍼시픽 림]을 보지 않은 구피는 영화 속 모든 캐릭터들이 생뚱맞게 느껴졌을 것이다.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은 전편을 보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지만

최소한 기존 캐릭터의 이해를 위해서라도 [퍼시픽 림]을 보는 편이 낫다.



이거 중국영화야?


영화가 끝나고 구피가 제게 했던 첫마디는 "이거 중국영화야?"라는 질문입니다. 분명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은 미국영화이지만, 구피의 질문대로 마치 중국영화로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우선 예거 제작에 돈을 대고 있는 샤오 그룹은 중국을 본거지로 두고 있고 거대기업이고, 샤오 그룹의 총수 리웬 샤오(경첨)는 범태평양연합방위군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입니다. 그녀는 조종사가 두명이나 필요한 예거보다는 무인조종 로봇으로 범태평양연합방위군을 바꾸려합니다. 그렇기에 처음에 리웬 샤오는 마치 악당처럼 행동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엔 제이크와 아마라를 도와 카이주를 처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영웅으로 변모합니다.

카이주가 다시 등장하는 곳은 동중국해이고, 카이주가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향한 곳은 일본의 후지산입니다. 그로인하여 일본 거리는 카이주와 예거의 전쟁터가 되어 쑥대밭이 됩니다. 미국영화라고는 하지만 미국을 배경으로한 장면은 거의 없고, 이렇게 중국을 중심으로한 아시아 중심으로 영화가 이루어집니다. 사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애초에 [퍼시픽 림]이 북미보다 중국시장 흥행이 더 좋았기 때문입니다. [퍼시픽 림]의 북미 흥행성적은 1억1백만 달러, 중국 흥행성적은 1억1천1백만 달러입니다. 미국영화이지만 중국성적이 북미성적보다 1천만 달러 더 벌어들였습니다.

[퍼시픽 림 : 업라이징]도 마찬가지입니다.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은 북미에서 개봉 첫주 2천8백만 달러로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지만 순수제작비가 1억5천만 달러임을 감안한다면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미 6천5백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북미와 비교해서 2.3배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중국시장이 아니었다면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은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았겠죠. 세계 경제에 이어 영화 시장마저 미국을 압도하고 있는 중국의 위력이 조금 씁쓸하게 느껴졌지만 그 덕분에 [퍼시픽 림] 시리즈를 계속 볼 수 있다면 뭐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필 카이주와 에거의 마지막 대결 무대가 일본인 것은

일본 거리를 박살내어야 중국관객이 쾌감이 느끼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난 상관없다.

단지 너무 중국자본 들어간 어색한 티내지 말고, 영화만 제대로 만들어준다면...



3편은 만들어지겠지?


전체적으로 볼때 저는 [퍼시픽 림 : 업라이징]보다는 전편인 [퍼시픽 림]이 더 좋았습니다. 스토리도 전편이 더 탄탄했고, 캐릭터 구축도 잘 되어 있었으며, 희생이라는 주제도 여운이 남았습니다. 그에 비해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은 너무 가벼운 오락성에 집중한 듯이 보입니다. 어떤 분이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을 본 후 [트랜스포머]가 생각난다는 한줄 평을 써 놓았는데,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을 일선에서 물러나게한 이유는 역시 [퍼시픽 림]만의 어둡고 음침한 개성을 버리기 위한 조치였나봅니다. 그 대신 [트랜스포머]처럼 밝은 영웅담이 되었으니 [퍼시픽 림]에서 [트랜스포머]를 발견하는 것은 결코 어색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3편을 예고하며 끝나는 마지막 장면은 좋았습니다. 더이상 카이주가 침략하기는 덜덜 떨며 기다리지 않고, 직접 포탈을 이용해서 외계 행성으로 처들어 가겠다는 제이크의 당찬 한마디는 [퍼시픽 림] 시리즈가 앞으로 가야할 방향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마도 3편에선 좀 더 영화의 규모가 커질 것이고, 스토리는 단순해 질 것이며, 캐릭터는 더욱 쾌활해질 것입니다. 더이상 당하는 입장이 아닌 당당하게 처들어가는 입장이 되었기에 영화는 영웅담으로 가득 채워지겠죠. 이러한 [퍼시픽 림]시리즈의 방향이 아쉽지 않냐고요? 네, 아쉽습니다. 하지만 [트랜스포머] 시리즈처럼 머리를 비우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거대 로봇 영화 한편이 더 만들어지는 것이니 만큼 저는 이미 즐길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습니다.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의 변화가 아쉬우면서도 즐길 수 있는 것은 역시 거대 로봇에 대한 로망 때문일 것입니다. 스토리가 점점 산으로 가는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아쉬워 하면서도 어김없이 극장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퍼시픽 림] 시리즈의 변화는 아쉽지만, 극장으로 달려가는 제 발걸음을 막지는 못하니, 거대 로봇에 대한 로망의 위력은 과연 어마어마한가봅니다.


솔직히 실망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길예르모 델 토로의 개성이 그리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라도 [퍼시픽 림] 시리즈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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