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메리 스튜어트, 욕망의 불꽃을 잃어버리다
메리 스튜어트, 욕망의 불꽃을 잃어버리다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여왕의 비극적인 최후는 언제나 우리의 흥미를 끈다.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삶이 바로 그렇다. ‘비극의 여왕’으로 불리는 메리 스튜어트는 과연 어떤 여인이었을까?
1542년 12월 8일, 제임스 5세와 마리 드 기즈의 외동딸 메리가 태어났다. 바로 전 해, 제임스 5세의 장남과 차남이 연달아 요절하면서 이제 막 태어난 공주 메리는 그의 유일한 후계자가 되었다. 이미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병색이 짙었던 제임스 5세는 메리가 태어난 지 일주일도 채 지나기 전인 12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메리는 제임스 5세의 유일한 적통 후계자로서 태어나자마자 스코틀랜드의 왕관을 물려받게 되었다.
헨리 8세(Henry Ⅷ)
한편 제임스 5세와 동맹에 실패했던 잉글랜드의 헨리 8세는 스코틀랜드의 유일한 왕위 계승자인 메리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곧바로 스코틀랜드의 섭정을 맡고 있는 제임스 해밀턴과 그리니치 조약을 맺고 갓난아기인 메리와 자신의 유일한 적자 에드워드의 결혼을 추진했다. 조약에는 메리가 일찍 사망할 경우 스코틀랜드를 헨리 8세에게 양도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헨리 8세는 이 결혼을 통해 스코틀랜드 병합이라는 오랜 숙원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헨리 8세의 속셈을 눈치 챈 메리의 어머니 마리 드 기즈가 이를 반대하고 나섰지만 결국 1543년 7월 1일, 메리가 10살이 되면 그녀를 잉글랜드로 보내겠다는 조건으로 그리니치 조약에 서명하게 된다. 두 달 후인 1543년 9월 9일, 메리는 정식으로 대관식을 치르고 왕위에 올랐다.
1547년 1월, 헨리 9세가 세상을 떠나자 마리 드 기즈는 그리니치 조약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로 인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는 전쟁이 벌어졌고, 스코틀랜드는 대패하고 만다. 메리의 신변을 염려한 마리 드 기즈는 극비리에 고국 프랑스로 그녀를 보냈다. 스코틀랜드의 통치권을 노리며 메리를 눈여겨보고 있던 프랑스 왕실에서는 두 팔 벌려 그녀를 환영했다. 프랑스 국왕 앙리 2세는 스코틀랜드와 메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메리가 일찍 죽을 경우 스코틀랜드뿐 아니라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까지 프랑스 왕실에 양도한다는 비밀 조약을 체결했다. 5살의 메리는 프랑스에 도착한 이듬해, 자신보다 2살이 어린 세자 프랑수와 2세와 약혼하였다.
프랑수와 2세와 메리 스튜어트
세자 프랑수와 2세의 약혼녀로 지낸 10년 동안, 메리는 다양한 학문과 교양을 익히며 매력적인 여인으로 성장했다. 1558년, 16살이 된 메리는 프랑수와 2세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제 그녀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자 프랑스의 왕세자비였다. 이 무렵 잉글랜드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가 25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의 딸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하고 ‘서녀’의 신분으로 지내다가 이복남매인 에드워드 6세와 메리 1세가 후계자를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나자 마침내 잉글랜드의 여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메리의 시아버지인 앙리 2세는 “서녀인 엘리자베스에게는 계승권이 없으며 오히려 튜더 왕가의 혈통인 메리 스튜어트가 잉글랜드의 여왕으로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혈통으로 보면 메리는 헨리 7세의 적장녀인 마거릿 튜더의 친손녀였기 때문에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메리는 잉글랜드의 왕위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메리는 엘리자베스 1세의 즉위를 무시하며 메리 1세가 세상을 떠난 후 ‘프랑스의 왕세자비이자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여왕’이라는 서명을 사용했다. 이는 태어나자마자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된 메리와 간신히 잉글랜드의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의 길고 긴 불화의 시작이었다.
메리가 프랑스의 왕세자비기가 된 이듬해, 앙리 2세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왕세자였던 프랑수와 2세가 왕위를 계승하였고 메리는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 영광과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왔다. 메리를 대신하여 스코틀랜드에서 섭정을 하던 어머니 마리 드 기즈가 신교도의 반란을 진압하던 중 세상을 떠났고, 남편 프랑수와 2세는 불과 즉위 1년 만에 16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것이다. 메리가 일찍 사망할 경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을 프랑스에 양도한다는 서약은 무효가 되었다. 1560년, 스코틀랜드에 돌아온 메리는 대관식을 올린 지 19년 만에 마침내 왕위에 앉았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 中
당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의 영토 분쟁뿐만 아니라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충돌로 종교적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메리의 어머니인 마리 드 기즈가 개신교 반란을 진압하던 중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대대적인 갈등은 불가피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가 선택한 것은 탄압이 아닌 ‘관용’이었다. 메리는 귀족은 물론 백성들에게도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였다.
메리의 판단은 실로 지혜로웠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과 상관없이 그녀의 적들은 사방에 가득했다. 먼저, 그녀의 5촌 당고모이기도 한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였다. 그녀는 끊임없이 스코틀랜드의 개신교들을 지원하면서 메리에 대한 반발과 분란을 조장했다. 또 다른 적은, 이복오빠인 모레이 백작이었다. 종교문제에서 두 사람은 타협할 수 없었고 그가 메리가 헨리 스튜어트와 재혼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마지막으로 열렬한 개신교도로서 민중들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던 존 녹스는 메리가 가톨릭 미사를 보았다는 이유로 반기를 들고 공공연하게 그녀와 대립했다.
헨리 스튜어트(Henry stuart)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후 몇 년간, 여왕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하던 메리는 자신보다 3살 연하의 헨리 스튜어트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다. 헨리는 메리와 친척으로, 그 역시 튜더 왕가의 혈통으로 잉글랜드의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다. 모레이 백작은 노골적으로 이 결혼을 반대했으며, 튜더 왕가의 혈통을 지닌 메리와 헨리의 결합을 자신의 왕위에 대한 위협으로 본 엘리자베스 1세 또한 둘의 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메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측근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진행했다.
여왕의 남편이자 인생의 동반자로서 헨리는 최악의 남자였다. 정치를 해본 적도 없는 19살의 풋내기에 불과한 그는 처음 맛본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 날로 오만해졌다. 남편을 향한 애정은 이미 식어버렸으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메리는 임신 중이었다. 하지만 헨리는 임신한 아내를 방치하며 계속하여 권력에 대한 욕망만 드러냈다. 헨리와의 사랑을 선택한 이유로 측근과 신하를 모두 잃은 메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비서관 데이비드 리치오에게 의지였다. 그러자 개신교파 귀족들은 두 사람을 불륜으로 몰았고, 메리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헨리는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메리가 자신이 아닌 리치오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떠벌리고 다녔다.
영화 '골든 에이지' 中 메리 스튜어트 감금 생활 장면
개신교파의 귀족들은 헨리를 부추겨 리치오를 살해하고 메리를 유폐했다. 엄중한 감시 속에 유폐생활을 하던 메리는 귀족들의 협박을 견디다 못해 1살에 불과한 그녀와 헨리의 아들 제임스6세에게 양위를 하고 왕위에서 물러났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25살이었다. 그 후 메리는 정적 엘리자베스 1세가 군주로 있는 잉글랜드로 망명하였다. 메리는 복위를 원했으나 엘리자베스는 ‘편의’ 외의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다. 온갖 편의가 제공되었으나 자유만이 허용되지 않았던 감금생활은 장장 18년 동안 계속되었다.
영화 '골든 에이지' 中 엘리자베스 1세
1586년, 메리는 엘리자베스 1세를 노린 계획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메리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했으나 유죄 판결을 받았고 사형이 언도되었다. 1587년 2월 8일, 메리는 가톨릭을 상징하는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처형대에 올랐다. 그리고 36명의 잉글랜드 궁정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처형으로 생을 마쳤다. 그녀의 나이 45살이었다. 그로부터 25년 후, 엘리자베스 1세는 죽기 전 메리의 아들 제임스 6세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다. 이로써 제임스 6세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였다.
제임스 6세(後 제임스 1세, James Ⅰ)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메리 스튜어트는 태어난 순간부터 정치적 동맹과 정략적 결혼에 휘둘려야 했다. 그러나 메리 스튜어트는 최후의 승자이다. 그녀가 원한 것처럼, 그녀의 아들 제임스 6세가 어떠한 정치적 대립이나 반란 없이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합법적인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