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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 조용히 그리고 느리게 휴식을 맛보다.
12  쭈니 2018.03.12 14:37:29
조회 260 댓글 1 신고



감독 : 임순례

주연 : 김태리, 류준열, 진기주, 문소리

개봉 : 2018년 2월 28일

관람 : 2018년 3월 9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조용히 그리고 느리게...


매년 이맘 때는 제가 회사에서 1년중 가장 바쁠 때입니다. 3월말까지 회계결산을 해야하고, 폐기물 부담금 신고를 끝내야합니다. 3월말에 지급될 직원들의 퇴직금 및 연차수당을 계산해야하고, 4월 1일부터 적용될 연봉 재계약을 추진해야하며, 4월 둘째주에 할 재고조사 준비도 마쳐야합니다. 그래서 3월이 되면 밤에 잠을 설치기도합니다. 자려고 누우면 오늘 하지 못한 일들과 내일 해야할 일들이 제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루 하루를 몸과 마음이 쫓기며 보내다보면 가끔 여유롭고 천천히 살아도 되는 삶이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 은퇴 생활을 혼자 그려보기도합니다. 앞으로 15년 후, 제 나이 예순이 되면 웅이를 장가보내고 구피와 단둘이 서울 근교 작은 집에서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바쁘게 쫓기지 않을 노후 생활을 즐기고 싶습니다.

어쩌면 제가 불현듯 [리틀 포레스트]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한 것도 그러한 조용히 그리고 느리게 살아도 되는 삶이 그리웠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리틀 포레스트]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도 "이런 무자극 영화를 누가 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뇌는 점점 강한 자극을 원한다고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영화들은 점점 더 자극적이 되어갑니다. 그런데 [리틀 포레스트]는 우리의 뇌를 자극할만한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틀 포레스트]는 꾸준히 관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비록 개봉 첫 주엔 [궁합]에 밀려 주말 박스오피스 2위에 그쳤지만,  신작이 대거 개봉한 개봉 2주차에는 [궁합]을 밀어내고 신작 두편에 이어 3위 자리를 지켜내며 조용히 그리고 느리게 흥행세를 유지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러한 [리틀 포레스트]의 흥행을 보며 어쩌면 저처럼 느리게 사는 삶을 그리워하는 관객들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조용히 그리고 아주 느리게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몰래 고향 집으로 돌아온 혜원

그녀는 아무런 생각없이 마루 바닥에 벌렁 누워버린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편안해보여 부러웠다.



돌아가 쉴 곳이 있는 삶


[리틀 포레스트]는 서울 생활에 염증을 느낀 혜원(김태리)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으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혜원은 자신의 귀향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습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고모는 물론, 친한 친구들에게까지...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패배에 대한 창피함 때문일 것입니다.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혜원의 엄마(문소리)는 혜원을 고모에게 맡기고 집을 나가버립니다. 혜원은 엄마 없이도 혼자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서울의 대학에 합격했고, 밤낮으로 공부와 아르바이트에 매달리며 임용고시에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임용고시에 떨어졌고, 결국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혜원이 부러웠습니다. 그녀에겐 돌아가 잠시 쉴 수 있는 고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에 저는 명절과 방학이면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간다며 시골로 향하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제겐 고향이 서울이고, 시골집이라 부를만한 곳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혜원처럼 제 20대 시절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도 잠시 내려가 쉴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서울 하늘 아래에서 비릿한 패배감을 처절하게 느껴며 버텨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혜원은 다릅니다. 비록 엄마는 떠났지만, 그녀의 집은 고스란히 남아 있고, 자신을 챙겨주는 고모와 술한잔 함께 할 수 있는 고향 친구들이 있으니 최소한 그녀는 서울에서 패배감의 쓰디쓴 맛을 견딜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헤원은 아빠의 요양 때문에 고향집에 내려왔다고 회상합니다. 하지만 혜원의 아빠는 얼마 안지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혜원의 엄마는 혜원과 함께 그곳에 머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혜원의 엄마는 어린 혜원을 데리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혜원의 엄마는 혜원이 성인이 되며 수 많은 실패를 경험할 것을 알고 있었고, 그때마다 잠시 쉴 수 있는 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직 고등학교조차 졸업하지 않은 딸을 버려두고 집을 나간 혜원 엄마의 선택이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혜원에게 쉴 수 있는 고향집을 만들어준 그녀의 선택만큼은 탁월했음은 부인할 수가 없을 듯합니다.


사실 사정이 어떠하든 미성년자인 딸을 버려두고 가출한 혜원의 엄마를 이해할 수는 없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주는 것이니까.

하지만 혜원에게 쉴 수 있는 고향집을 만들어준 그녀의 선택만큼은 탁월했다.



배고파서 고향에 내려오다.


한 겨울, 고향집에 내려온 혜원은 가장 먼저 불을 지핍니다. 만약 서울이라면 겨울의 추위는 보일러 버튼 하나만으로 해결될테지만, 시골집에서 그러한 편리함을 원해선 안됩니다. 혜원이 직접 마른 나뭇가지를 구해 난로에 불을 지피고 나서야 집 안의 찬기가 조금 가실 뿐입니다. 그 다음으로 혜원이 한 일은 밥을 해 먹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비워둔 집이기에 냉장고에도, 찬장에도 남아있는 것은 몇 톨의 쌀 뿐입니다. 할 수 없이 혜원은 밭에서 꽁꽁 얼은 배추를 캐내 배춧국으로 주린 배를 채웁니다. 만약 서울이었다면 전화 한통으로 기름진 배달음식을 편안하게 받아 먹었을테지만, 그것 역시 시골집에선 바랄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시골 생활이라는 것은 도시 생활과 비교해서 불편합니다. 특히 저처럼 일평생을 도시에서만 산 사람이라면 작은 그 무엇도 직접 해야만하는 시골 생활을 적응하는 것은 생각처럼 낭만적인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습니다. 일단 제가 시골 생활을 부러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선한 공기 때문입니다. 아침마다 잿빛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저는 출근합니다. 공장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쉬지 않고 품어져 나오고, 미세 먼지 탓인지 주위는 희뿌옇게 보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가끔 맑고 청명한 하늘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그런데 혜원의 고향집에서는 그런 맑고 청명한 하늘을 매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부러운 것이 좋은 먹거리입니다. 물론 서울에서도 돈만 많다면 얼마든지 좋은 먹거리를 구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혜원의 서울생활처럼 인스턴트로 하루 하루를 보낼 때가 많습니다. 혜원은 친구 은숙(진기주)에게 배고파서 내려왔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합니다. 은숙은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서울에 사는 저는 혜원의 말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가끔 저도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떼우다보면 배는 거부룩해지지만 나도 모르게 "아, 배고파!"라는 푸념을 하기도합니다. 아마도 혜원의 심정이 그때의 저와 같았을 것입니다.


혜원은 끊임없이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마치 잘 먹기위해 고향집에 내려온 듯이...

시골에서는 조금만 부지런하다면 도시보다 훨씬 잘 먹을 수 있다.



혜원의 고향 살이


[리틀 포레스트]는 1시간 40분이라는 러닝타임거의 대부분을 혜원의 고향 살이에 투자합니다. 혜원은 고향집에서 겨울, 봄, 여름, 가을을 보냅니다. 친구 은숙과 재하(류준열)가 그녀의 집에 놀라와 외로움을 달래주고, 아무도 없는 무서운 밤에는 재하가 선물한 개, 오구가 그녀의 곁을 지켜줍니다. 가끔은 혜원의 고모가 혜원을 챙겨주기도합니다. 그렇기에 혜원에겐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물론 이 생활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혜원이 별다른 수입원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애추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고향살이가 1년이 되어가던 어느 겨울날 혜원은 불현듯 서울로 떠나버립니다.

하지만 그러한 혜원의 고향살이는 제가 은퇴후 살고 싶은 삶입니다. 돈을 벌기위해 뭔가 일을 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느긋하게 즐겨도 되는 삶. 가끔 술 한잔, 수다 한바구니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심심하지 않을만큼 해야할 일이 있는 삶. 젊은 혜원에겐 그러한 삶이 불가능하지만, 은퇴후 늙은 제겐 그렇게 살아도 별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은퇴 전까지 돈을 조금 모아놓아야할테지만...

어쩌면 [리틀 포레스트]는 혜원의 고향살이를 통해 바쁘게만 살고 있는 도시의 젊은 청춘들에겐 잠시동안의 휴식을, 저와 같이 노후의 삶을 꿈꾸는 중년층 관객에겐  바람직한 노후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영화가 아닐까엇을까요? 그렇기에 임순례 감독은 [리틀 포레스트]에 별다른 결론을 짓지 않습니다. 영화 후반 혜원과 고향집으로 돌아온 엄마의 화해가 그려질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러지도 않았고, 혜원과 재하의 사랑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우정과 사랑 사이의 그 어디쯤에 불과합니다. 잠시 서울로 올라간 혜원이 어떤 결심으로 다시 고향집에 내려왔는지도 불분명합니다. [리틀 포레스트]는 일반 상업영화가 가지고 있는 결론을 전혀 가지지 않은채 그저 관객에게 휴식만을 안겨준 영화였습니다.


노후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돈? 집? 물론 그런 것들이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술한잔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라 생각한다.



조용히 그리고 느리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리틀 포레스트]는 굉장히 느리고, 굉장히 조용한 영화입니다. 자극적인 장면이라고는 입속의 침샘을 자극하는 장면 뿐이고, 영화의 말 또한 딱히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이 영화가 굉장히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길게 느껴졌다는 것은 지루하고 재미없었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아닙니다. 긴 시간동안 푹 쉰 듯한 느낌, 그래서 영화가 끝난 후에는 "잘 쉬었다."라며 크게 기지개를 껴야할 것만 같았습니다.

잘 알려진 바대로 [리틀 포레스트]는 혜원 고향집의 사계절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걸쳐 4번의 크랭크인과 크랭크업을 거듭했다고 하네요. 그러한 제작진의 노력은 영화를 보는 제게도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겨울의 추움, 봄의 따사로움, 여름의 무더움, 가을의 상쾌함이 영화를 보는 제게도 생생하게 느껴졌고, 그 덕분에 저 역시 혜원의 고향집에서 4계절을 푹 쉰 듯한 기분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극장을 나섰습니다. 다른 때같으면 무엇인가에 쫓기듯 다음 일정을 위해 바쁘게 걸어갔을텐데, [리틀 포레스트]를 본 후에는 극장 밖 세상을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 옆에서 파는 붕어빵을 구입해서 천천히 한 입 깨물어 먹으며 거리를 거닐었습니다. 붕어빵 가게는 바쁘게 오갈때 보이지 않았던 곳입니다.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거리를 보니 이렇게 바쁘게 살았을땐 놓쳤던 수 많은 즐거움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여유로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영화와 분명 다르니까요. 또다시 저는 바쁘게 뭔가에 쫓기듯 살게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잠시동안이나마 마음속의 휴식을 준 [리틀 포레스트]의 고마움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조용히 그리고 느리게 살아가도 될테니까요.


그러고보니 임순례 감독은 [남쪽으로 튀어]에서도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한 남과는 조금 다른 삶을 영화화했었다.

[남쪽으로 튀어]가 굉장히 동적인 남다른 삶이라면

[리틀 포레스트]는 굉장히 정적인 남다른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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